일상적 인사로 ‘바쁘시죠’라는 말이 자리를 잡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시간 관리를 위한 다양한 세미나가 등장하며 사람들 마다 자신에게 편리한 시간관리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흔히 다이어리라고 말하는 수첩을 사용하는 시간관리,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간관리가 자기관리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헬라어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뜻을 알아 보아야한다.
‘크로노스’ - 흐른다는 개념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개념의 단어이다.
‘카이로스’ - 기회 또는 예정된 때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위의 성경말씀에서 ‘세월’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카이로스이다. 그러기에 영어성경(NIV)에서는 이 부분을 ‘모든 기회를 극대화하라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라고 해석하였다.
결국 ‘세월을 아끼라’는 의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회의 포착과 최대한의 활용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사명’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알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정확히 이해할 때 만이 기회를 분별하여 그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존재이유와 목적이 분명할 때 삶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카이로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헬라어에는 '시간'에 대한 3가지 중요한 용어가 있다. '매우 긴 시간, 영원한 시간'을 뜻하는 아이온 속에 크로노스가 있고, 크리노스 속에 카이로스가 있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는 부분적으로 동의어로 사용되는데, 특히 '일정적인(calendrical) 의미로 인생의 시간의 한정된 지속에 대한 진술'이 있는 곳에서 이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시간의 기간 period of time'을 나타내는 반면, 카이로스는 자주 '결정적인 순간이나 시간(때), 종말론적으로 찬 때'을 가리키며, 따라서 '위기의 시간(때), 적합한 시간(때), 좋은 기회'라는 의미도 지닌다.
카이로스는 인간의 카이로스와 하나님의 카이로스로 양분되는데, 인간이 인간을 본위(本位)로 한 자리에서 인간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하여 마련되는 인간의 카이로스로는 세속사(世俗史) 곧 인간의 일반 역사가 형성되고, 하나님이 하나닙의 계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카이로스'로는 구속사(救贖史) 곧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歷史)가 이루어진다. 끝없이 흘러내려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役事) 하나 하나의 합(合)이 '구속사'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경우 카이로스의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다(행 l:7).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예수님은 전적으로‘하나님의 카이로스’에의해서만 사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의 일체는 곧‘구속사’였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에 의한 삶과 인간의 카이로스에 의한 삶의 대조를 요 7:6-8이 잘 보여주고 있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카이로스) 는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거니와 너희(예수의 형제) 때(카이로스)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카이로스)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 하노라.”
여기서 '너희 때'란, 아직 결정적인 신앙이 없이 세상에서 자기 본위로 살고 있는 '예수님의 형제들의 때'인데, 이는 곧‘인간의 카이로스를 말씀하신다. '나의 때'란 하나님이 정하여 주시는데서 만이 행하게 되는 '예수님의 때'인데, 이는 곧 '하나님의 카이로스’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형제들을 향하여 인간 본위로 사는 너희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때는, 너희들의 뜻에 의하여 항상 열려 있으나 하나님 본위로만 사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야 하는 때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기독교인이란, 하나님의 카이로스로만 이어지는 삶을 지향(指向)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되어져야 한다. 카이로스는 구원사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져오시는 "심판의 때"와 "마지막"의 개념을 표현하는 확립된 용어이다.
신약성경에서 카이로스는 때때로 '운명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시점'(참조, 막 1:15), 예를들면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의 카이로스를 인정하지 아니했다(눅 19:44; 참조: 막 12:56; 마 16:3-4).
예수님의 카이로스는 그의 죽음의 때(time)이다(마 26:18). 이 용어는 귀신을 제어하는 메시야적 권능의 시작(마 8:29), 신자들에 대한 박해(벧전 4:17), 막는자의 능력의 옮김(살후 4:17), 신자들의 판단(고전 4:5), 죽은 자에 대한 일반 심판(계 11:18)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카이로스는 요한 계시록의 독자들의 생각을 이러한 주제들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위기나 심판의 때가 우리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바로 인식하여, 보다 가까와진 '세상의 종말 및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새로운 각성을 하고, 그리고 이 각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참조: Walter Bauer; G.Delling; H.C.H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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