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제사와 그리스도의 죽음
/이인규
제사란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나는 의식으로서 “자신의 소유인 동물 혹은 식물을 신들에게 바치는 종교적인 의식”을 말한다. 고대문헌으로 보면 AD 1세기 이전의 거의 모든 종교는 이러한 제사가 있었으며, 유대인의 희생제사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중단되었다.
성경이 말하는 제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타락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즉 제사라고 하는 형식은 피조된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며,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제사는 첫째, 하나님에게 감사와 존경을 나타내는 헌물적 의미, 둘째, 하나님과 교제의 수단, 셋째, 죄의 속량의 수단이 그 목적이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사라고 하는 형식은 무엇보다도 그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의 회개와 순종이라는 내적 신앙이 강조되어야만 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12;33)
구약의 제사란, 당사자의 소유가 되는 짐승의 생명을 대신 증여함으로서 댓가를 치루는 대리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대리적인 죽음의 방법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긍휼을 전제로 한다. 그 이유는 죽어야만 마땅한 당사자를 용서하는 대신 짐승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며, 그 댓가를 지불함으로서 제사를 바치는 당사자의 죄는 덮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막게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을 나타내어 보였을 때에 이삭대신에 드릴 대속물을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의 긍휼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사는 한부분이 전체를 대리할 수 있었고, 하나가 다수를 대표할 수도 있는 대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결국 구약제사의 특징은 일시적이라는 점에 우리는 유의하여야 한다. 그래서 제사는 항상 해마다 되풀이 되어야 했고, 결국 형식적인 의무가 되고 말았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5:22)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더 이상 번제나 소제, 화목제를 받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제사란 기능은 원래 형식적인 의무가 아니라 반드시 내면적인 회개와 순종이 뒤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여 주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구약의 짐승으로 드려지는 희생제물의 완전함을 예표하고 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8-10)
히브리서 기자는 히10:8에서 암5:22를 인용하며, 둘째 것을 세운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려짐으로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의 제식(祭式)은 모형적인 것이다.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지만 복음으로서 완성되고 성취되어진 것이다. 구약의 제사의 형식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보는 모형이며 - 우리는 그림자(the shallow)의 풍부한 의미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3-5)
사53장을 보면 구약 제사의 대리적인 요소가 예수그리스도에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우리는 구약의 제사라는 것이 무엇이며, 어떠한 개념인지를 이해하여야만, 십자가에서 인간의 형체를 입으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제사는 온전한 방법이 아니었으며 모형적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제사는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번제
2) 소제
3) 화목제
4) 속건제 혹은 속죄제
1) 번제: 구약제사의 전형적인 제사는 번제라고 말할 수 있다. 번제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증여적인 성격이다. 즉 예배자를 대신하여 여호와께 드려져야만 한다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 예배자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동물을 골라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대속물로서의 그 짐승이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의 죄 대신에 바쳐지는 순결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최상의 것을 드린다는 가치성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예배자는 그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를 한다(레1:4) 이것은 죄의 전가를 뜻하는 것인데 이 짐승을 여호와 앞에서 잡았다(레1:5, 11). 즉 제물로 바쳐진 짐승은 당사자의 죄에 대한 형벌로서 대신 고통을 당하고 죽었다.(레4:33, 17:11) 그 후에 피는 모아서 제단에 뿌려졌고 그 짐승은 제단 위에서 태워졌다. 번제에 사용된 히브리어 ‘올라’는 “연기를 타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태운다’(burning)는 뜻은 파괴적인 소멸이 아니라, 죄가 소멸된다는 의미이며,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짐을 상징하는 정련(refining)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2) 소제: 소제는 히브리어로 “민하”라고 하며,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로서 구운 과자 형태로 상번제의 일부로서 자주 번제단에 드려졌으며 소제는 단독으로 드려지기 보다는 다른 형식의 제사와 함께 드려졌다. 소제는 자신의 일부로서 전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되어야 했는데, 성의껏 준비한 그 제물이 단에서 태워질 때에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제물의 향기로운 냄새는 그 제물이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제물과 기도는 동시에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을 하나님의 돌보심에 내맡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예식들을 행함으로서 경배자는 하나님께서 동의와 고백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순종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구약에 있어서도 외적표현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고후 2:15-16)
3) 화목제: 화목제는 하나님께 감사나 서원에 대한 대가를 표현해주는 희생제사이다. 화목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회복”을 뜻한다. 히브리어는 “카파르”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긍휼과 언약의 관계에 대한 회복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의 화목을 만드는 동기가 되어진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또한 사도바울은 회목의 대상을 우주적으로 광범위하게 표현한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카파르”라는 히브리어를 KJV에서는 “화목”(reconcile)으로 번역하지만, RSV는 속죄(atonement)로 번역한다. 즉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하여 화목제물이 된 것은 곧 속죄제물이 됨으로서 속죄를 유효케 하였기 때문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화목제는 제사를 드린 후에 먹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이 적대감이 종결되었다는 상징으로서 제사장과 예물을 드린 자가 함께 식사로 친교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즉 희생제로 인하여 화목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 식사로 교제를 나누는 것은 주의 만찬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에 집약되어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식사(God's gift supper)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제물이시며,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서 그의 돌아가심을 기념하는 것이다.
4) 속건제 혹은 속죄제: 속죄나 속건제는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불결한 죄를 범하였을 때에 드리는 제사이다.(레4장, 7장) 특히 레위기4장은 제사가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해당되었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9:12)
이 제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었고, 반복적이었고 의무적인 것이었으며,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인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로 바쳐지셨고,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를 이루셨기 때문에, 신약시대 이후에는 더 이상의 제사적인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희생이 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구약의 제사는 흠도 점도 없는 짐승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전가시켜서 대신 죽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구약의 제사는 온전하지 못한 약점을 가진 제사장을 세운 것이었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제사가 필요하였지만, 예수님의 속량은 완전하며 또한 단번에 드려진 영원한 제사가 된다. 즉 구약의 제사가 실제로 인류의 죄를 속량할 수는 없었던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5-26)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7:28)
“속죄”라고 하는 용어는 히브리어에서는 "키퍼"(kipper)라는 동사이고, 그 동사의 명사형은 “카파르”(Koper: 배상금)이다. “키퍼”의 의미는 원래 "덮다. 가리우다"는 뜻으로서 죄를 가리운다는 뜻을 갖는다. 헬라어에서는 “카탈라게” 혹은 “힐라스코마이”등의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히브리어 “키퍼”와 같은 뜻이며, 역시 “덮다. 제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황소나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히10:4)라고 말하였으며, “더 좋은 제물을 필요로 한다”(히9:23)고 말하였는데, 즉 “대속”이란 우리의 죄가 덮어지며 가리워지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약을 인용하여, 우리의 불법이 사하심을 받고, 그 죄가 가리우심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6-8)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삼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이니라“(롬3:25-26)
이 구절에서 “화목제물”은 헬라어 "힐라스테리온"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희생제물"을 가르킨다.
히브리서 9:5에서 법궤 윗부분의 "속죄소"라는 단어에 이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사도요한은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요일2:2. 4:10)이라고 말하였으며, 히브리서 기자도 그리스도가 "백성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셨다"(히2:17)고 말하였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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