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강
절기와 제사에 관한 규례
민수기 28:1-30:16
요 절 29:7 "칠월 십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마음을 괴롭게 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오늘 말씀은 제사에 관한 규례들과 서원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스라엘은 인구 조사를 마치고, 새로운 군대 장관이 취임하였습니다. 이제 가나안 진군 명령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제사에 관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먼저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의 기준을 제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백성은 시내산에서 주신 제사에 관한 규례를 직접 받지 못한 신세대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이 시작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들이 지켜야 할 절기들과 각 절기에 드려야 할 희생 제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날 신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바울도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절기와 제사의 규례의 근본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절기의 영적 의미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매일, 매주, 매월 드리는 제사들(28:1-14)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 '나의 예물'이란 '나의 고르반'이라는 말로 하나님께 바치는 일체의 예물을 가리킵니다(7:3). 화제(火祭)란 희생 제사 전체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제사 방식으로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나의 식물(떡)'과 '나의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예물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신앙의 표현이요,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배 드리는 사람들의 신앙과 그 정성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께 제물을 충실하게 드리지 않았습니다(암 5:25; 행 7:42). 이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의 신앙이 약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한번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엄수하고,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매일 드리는 제사, 매주 드리는 제사, 매월 드리는 제사가 있고, 매년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첫째, 매일 드리는 제사(28:3-8)
3,4절을 보십시오.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로 드리되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해질 때에 드릴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매일 드릴 화제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일년 된 흠 없는 수양' 두 마리를 번제로 드리되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저녁 해질 때에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드리는 번제는 헌신과 서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녁에 드리는 번제는 사죄와 감사의 의미가 있습니다. 번제를 드릴 때에는 각 어린 양에 대해서 고운 가루 십분지 일 에바에 빻아 낸 기름 사분지 일 힌을 섞어서 소제로 드려 합니다. 소제를 드리는 것은 온 몸이 가루가 되도록 하나님께 충성을 드리는 헌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때 1/4 힌의 독주를 전제로 드려야 합니다. '독주'란 석류, 야자 등 열매를 발효시켜 만든, 포도주보다 도수가 높은 매우 값지고 감미로운 술이었습니다. 전제는 우리 신자들의 믿음의 제물과 희생의 봉사 위에 부어질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상징입니다(빌 2:17). 이처럼 값비싼 독주를 전제로 드리도록 명하신 것은 우리가 매일 삶 속에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서 드리고, 순교자적인 자세로 살아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번제를 드리려면 한번에 3 시간씩 걸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제사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3시간씩 번제를 드렸습니다. 상번제는 일년 365일 변함없이 드려지는 제사였습니다. 이는 제사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였으며, 제사장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명이요, 생활이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소제와 전제는 우리 신자들이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와 찬미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복음의 제사장들이 365일 변함없이 감당해야 할 복음의 제사장의 기본사명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매일 아침에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는 헌신과 충성을 서약하는 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저녁이 되면 그날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기도와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뒤에 나오지만 매일 드리는 제사와 희생은 안식이나 월삭이나 명절이나 빼먹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제사들은 매일 드리는 제사 위에 더해져야지 특별한 제사를 드린다고 매일 드리는 기본적인 제사가 생략되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28:10,15, 24,31; 29:11). 이만큼 상번제는 모든 제사의 기본입니다. 이처럼 우리 신자들의 기본생활이 중요하고,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찬송하는 생활을 365일 하루도 빠짐 없이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매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9-10)
9,10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그 전제를 드릴지니 이는 매 안식일의 번제라. 상번제 외에니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것에은 두 가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날을 기억하며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출 20:11-13). 다른 하나는 안식이 없던 애굽의 노예 생활을 회상하며 참 안식을 주시는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었습니다(신 5:15). 역사적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지켜 온 전통이었습니다. 안식일 제사에는 1년 된 흠 없는 수양 2 마리와 고운 가로 고운 가루 2/10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제물들은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제물을 합한 양(量)와 같습니다. 곧 안식일에는 평일보다 두 배의 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매일 하나님께 헌신하지만 안식일에는 또 다른 봉사와 헌신을 드려야 함을 말해 줍니다. 복음 시대를 가리키는 성전 봉사에 대한 에스겔의 계시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소제물과 전제와 함께 어린 양 6마리와 수양 1마리를 바치도록 되어 있습니다(겔 46:4,5). 이는 그리스도의 날에도 안식일의 성결이 지속되며 더 강화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막 2:28).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두 배의 제물을 드리도록 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일에는 평상시보다 배나 더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평상시와 같은 기본 생활을 잘 할 뿐 아니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또 예배를 섬기는 직분을 맡은 분들은 기도로 준비하여 예배 환경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셋째, 매 월삭에 드리는 제사(11-15)
11-15절은 월삭에 드리는 제사에 대한 규례입니다. 월삭(New Moons)은 '너의 달들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달이 기울었다가 다시 차기 시작하는 매월 초하루를 가리킵니다. 매월 초하루는 달의 변화에 의존하여 사는 유목민들과 농민들의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안식일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면, 월삭은 세상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절을 따라 달을 지정하시고, 달의 변화에 따라 시간을 알려 주시고, 세상의 모든 사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은 월삭에 모여서 서로의 친분을 두텁게 하고(삼상 20:5,8,24), 말씀을 듣기 위해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왕하 4:23). 이날에는 안식일과 같이 노동을 쉬었습니다(암 8:5). 은 나팔을 불어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는 소원을 표하셨습니다(민 10:10). 월삭에 드리는 제물은 수송아지 2마리와 수양 1마리, 일년 된 흠 없는 수양 7마리를 여호와께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11). 각 송아지마다 기름 섞은 고운 가루 3/10에바의 소제를 드리고 수양에는 2/10에바의 소제, 어린 양에는 1/10에바의 기름 섞은 소제를 화제로 드려야 합니다(12,13). 그 외에 15절에 보면 수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지난달에 지은 죄를 청산하고 새로운 달의 헌신을 마음을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월삭의 제사는 매월 드리는 헌신 예배나 우리가 드리는 소회(small paryer meeting)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달을 시작하면서 함께 모여 사죄와 감사와 헌신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Ⅱ. 매년 드리는 제사들(28:16-29:40)
하나님께서는 이제 매년 정기적으로 드려야 할 제사가 무엇인지를 밝히셨습니다.
첫째, 유월절 제사(16-25)
정월 14일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었습니다(16). 이 날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에는 어떤 제사도 드리지 않았으며, 가족끼리 모여서 유월절 양고기와 쓴나물과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이 때 가장이 출애굽의 사건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이 날은 제사보다 어제의 구원과 오늘의 자유와 행복이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고백하고 가르치는 신앙 교육의 날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새로운삶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는 유월절 그 자체보다 다음 날부터 7일 동안 지켜야 할 무교절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또 그 달 십오일부터는 절일이니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절일'이란 세상 즐거움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히 지켜야 할 날을 말합니다. 한 주간 동안 무교병을 먹고 쓴 나물을 먹도록 명하셨습니다(민 9:11).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18).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 동안 무교병을 먹으며 제사를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무교절 제사는 수송아지 2마리와 수양 1마리, 일년 된 수양 7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19). 각 제물에 따라 소제를 드리며 수염소로 속제제를 드려야 합니다(20,22). 이 모든 제사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 외에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성만찬을 하시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마 26:28, 눅 22:19). 따라서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성만찬에 참여하며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유월절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먼저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레위 11:45, 19:2).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율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후 7:1)"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받은 신자들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불신자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롬 12:2).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이 되신 것은 우리가 누룩 없는 새 인생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은 누룩, 곧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망령된 행실을 온전히 버리고 거룩한 새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칠칠절의 제사(25-31)
칠칠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 후라 칠칠절(七七節)이라고 불렀으며, 50일째 되는 날이라 하여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불렀습니다(레 23:15). 이 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때라 하여 맥추절(출 23:16)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이 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이 날은 그해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으로 만든 떡 2개를 새 소제로 드려야 합니다(레 23:17,18).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송아지 2마리와 수양 1마리 일년 된 수양 7마리를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각 제물에 해당하는 소제물도 드리고, 속죄제물로 수염소 한 마리를 드려야 합니다. 칠칠절의 제사는 삶의 전 영역에 미치는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다스리심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땅과 생산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행위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여호와(사 42:5)"라고 찬양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전 영역에서 감사 조건을 찾고,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칠칠절의 의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감사의 제사, 찬미의 제사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어떤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나팔절의 제사(29:1-6)
유대 종교력(宗敎曆)으로 7월에는 나팔절과 속죄일 초막절 등 많은 제사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7월은 추수기와 파종기 사이에 있는 휴식의 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중 가장 한가한 기간 동안 대부분의 여가를 하나님을 섬기는 데 보내도록 여러 절기를 두셨습니다. 29장 1절을 보십시오. "칠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일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나팔을 불 날이니라." 칠월 1일은 유대인들의 민간력(民間曆)로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곧 우리 나라의 명절인 구정(舊正)에 해당하는 날이었습니다. 정월 초하루가 종교력으로 7월1일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그 달을 기념하여 새해 첫 달로 삼도록 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7월 1일에는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나팔을 불어 새해가 되었음을 알리도록 명하셨습니다. 이 날은 월삭과 겹치는 날이므로 월삭의 번제와 소제 전제 외에 나팔절의 제물을 더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나팔절에 드리는 제사는 수송아지 1마리와 수양 1마리 일년 된 수양 7마리를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월삭 제사 때보다는 수송아지 1마리가 줄어들었습니다. 느헤미야 8장 1-1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월 초하루에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학사 에스라를 초빙하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여호와의 율법을 듣고 신년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를 애통하며 회개하였습니다. 나팔절에는 이처럼 새해를 시작하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한 해를 하나님 앞에서 새 출발하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나, 신년 수양회를 통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시에 나팔절은 복음 전파의 나팔과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날을 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나팔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살전 4:16).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힘차게 복음 전파의 나팔을 불며 죄로 병든 세상으로 진군해 들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속죄일의 제사(29:7-11)
7월 10일은 속죄일이었습니다. 속죄일에 대한 규례는 레위기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레 16:11-15; 23:26-32). 여기에서는 단지 속죄일을 맞이하는 마음 자세와 그날에 드릴 제물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는 '속죄제, 속건제'의 규례가 있습니다(레 4:1-6;7). 이런 제사는 일생 생활 가운데 짓게 되는 죄와 허물에 대해 죄 사함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에 한 차례 7월 10일에 드리는 대속죄제는 전국민이 1년간 지은 죄를 크게 회개하고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날에는 전국민이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금식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이 먼저 자신을 위하여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리고, 백성을 위하여 염소로 속죄제를 드렸으며,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에 앞에 뿌렸습니다(레 16:11-15). 속죄일을 맞는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마음을 괴롭게"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말은 금식하며 회개의 표시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레위 16:29; 사 58:3-5). 이와 같은 속죄일의 절차를 지낸 후에 거기에 곁들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물은 수송아지 1마리, 수양 1마리, 1년 된 수양 7마리이며, 소제도 겸하여 드렸습니다. 대속죄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제사의 필요성을 암시해 주는 날입니다. 우리 신자들에게는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히 4:16).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때 마음을 괴롭게 하고, 죄를 애통하며 회개하는 심정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시 34:18). 구약의 성도들은 1년에 한 번씩 속죄일을 정하고 회개했지만 구원받은 우리 신자들은 매일 하나님 앞에 나가 죄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섯째, 초막절 제사(29:12-40)
12절을 보십시오. "칠월 십오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칠 일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 초막절은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간 지켰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백성들은 집을 떠나 초막을 짓고 초막에 기거해야 했습니다(레 23:34-43).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간 광야 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레 23:43). 동시에 초막절은 한해 추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였습니다(신 16:13). 그래서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출 23:16). 초막절은 3대 절기 중에서 최대의 명절이었습니다. 제물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첫날은 수송아지 13마리와 수양 2 마리와 1년 된 수양 14마리를 번제로 드렸습니다(13). 각 제물에 따라 소제물(수송아지에는 3/10 에바, 수양에는 1/10에바, 어린 양 1/10에바)을 드렸습니다(14-15). 그리고 수염소 1마리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16). 첫날에 드린 제물만 30마리였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다른 제물은 동일한데 수송아지만 13마리에서 매일 1마리씩 줄여서 일곱째 날에는 7마리로 줄고, 여덟째 날에는 수송아지 1마리, 수양도 1마리 어린 양도 7마리만 드리도록 했습니다. 이는 율법적인 제사는 마침내 없어질 것이며, 구약의 무수히 많은 제물이 무한히 값지고 귀한 한 제물로 끝나고 말 것을 암시해 줍니다. 그래서 초막절 제사에는 총 199마리의 짐승이 제물로 바쳐지고, 상번제 16마리를 합하면 총 215마리나 됩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완전한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또 가장 풍성한 때에 장막에 거하면서 과거 어렵게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썩어질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계시록 21장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람들은 좀 잘 살면 마음이 부요해집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땅은 우리가 잠시 거할 장막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인 충성과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가장 풍요로운 때에 가장 어렵게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고난의 떡을 먹으며 고난받는 이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많고, 배부를 때일수록 가난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Ⅳ. 서원에 관한 규례(30:1-16)
나실인의 서원에 관하여 지적되었듯이(6:1-12) 사람은 여호와께 무엇을 하겠다고 서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지정된 기간 동안 무엇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할 수 있었습니다(레위 27장). 30장의 기록 목적은 서원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첫째, 서원한 것은 다 행하라(1,2)
1,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서원은 '맹세하다, 다짐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종교적 성격이 강한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서원했습니다. 자신의 신앙적인 성숙과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서원했습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서원은 '분리의 울타리'라고 하여 신앙을 보호해 주는 담과 같다고 했습니다. 서원은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고 보호해 주는 담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창 28:19). 하나님께서는 그 서원 기도를 들으시고, 야곱을 철통같이 보호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셨습니다. 그의 서원이 그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 역할을 했습니다. 또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반드시 행하라"했습니다. '마음을 제어한다'는 말은 '혼을 속박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서원한다는 것은 모든 힘을 다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고, 스스로 속박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서약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신 23:21-23)." 시편 기자는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는 자는 여호와의 장막에 거한다고 했습니다(시 15:4). 반면에 서원해 놓고 실수였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전 5:6). 하나님께서는 서원해 놓고 흠 있는 것으로 사기(詐欺)하는 자를 저주하십니다(말 1:14).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십시오. 서원하기 전에는 모든 재물이 자신의 소유였으며, 임의로 처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다 드리기로 서원한 후 그 서원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행 5:4).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파약(破約)해서는 안됩니다. 전도서 기자는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전 5:5).
둘째, 서원의 예외 규칙(3-16)
만일 미혼인 딸이 그 아비의 동의 없이 서원을 했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4,5절을 보십시오.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아비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던 서약이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그 아비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녀의 약속은 무효가 되었습니다(5). 결혼할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가 서약을 경솔히 했을 경우 그 남편이 듣고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은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듣고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약은 무효가 됩니다(8). 그렇지만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의 경우는 서원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예외 규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가정의 책임자요, 스스로 결정한 것이므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결혼한 아내의 서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10-11). 그런데 남편이 아내의 서원을 들은 후에 잠잠히 있다가 얼마 후에 무효케 하면 남편은 아내의 죄를 담당해야 합니다(15). 이때는 적절한 속건제를 드렸습니다(레위 5:4-13).
결론적으로 우리는 매일, 매주, 매월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매년의 삶을 하나님의 스캐쥴에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제사를 기본적으로 요구하고 계십니다. 안식일에도, 월삭에도, 그 외 많은 특별한 절기에도 상번제와 소제와 전제는 변함없이 드리기를 요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본생활을 충실하게 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기본생활을 게을리 하고, 태만하게 하는 자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눈에 띄는 화려한 제사보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꾸준히 드리는 개인 기도생활고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기도와 찬미의 제사를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http://dgcmi.org/2001/library/bible/numbers/min1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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