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실망했습니까?
/ 어느 신앙 킬럼에서 펌...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로 유명해진 시인이 TV에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렇다”라고 했습니다. 어땠느냐고 기자가 질문하자 그녀는 “처절한 실망과 환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은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여러 번 결혼을 하고 수많은 남자와 스캔들을 일으킴으로서 60년대의 섹스 심벌이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드 바르도는 위의 시인보다 더 심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인간을 혐오합니다. 나는 인간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가지도 않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 질려버렸습니다. 남자는 동물입니다. 동물들조차 그렇게는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극단적 동물애호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랑을 좇는 유명한 시인이나 배우만이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도 실망합니다. 제 친구는 조그만 사업을 하다가 그것이 제법 잘 되어 그 규모를 한창 벌여놓던 중 IMF 사태를 맞았습니다. 대출이 끊기고 자금 회수가 시작되고 모든 것을 빼앗긴 그는 빚더미에 앉아버렸습니다. 와중에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났습니다. 그는 인생에 대해 깊이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실망과는 거리가 멀 사람으로 여겨지는 목회자들도 실망합니다. 미국의 통계이지만 8명 중 1명의 목사가 목사직을 그만 둔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목회자들 가운데도 “전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소명을 갖고 시작했는데 깊은 실망이 그들을 도중하차시킨 것입니다.
실망은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한 번도 실망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실망의 깊이가 너무 깊고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우리는 그냥 주저앉아 버립니다. 더 이상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되고, 믿음을 떠나게 되고, 소중히 여기던 이상이나 꿈을 버리게 되고,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실망 가운데 가장 치명적일 수 있는 실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실망일 것입니다. 물론 드러내놓고 자신이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특별히 보수적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수님을 믿은 지 거의 27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누군가가 “나는 하나님께 정말 실망했습니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를 거의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께 실망한 사람이 제 주변에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 이를테면 교회나 사람들이나 환경을 탓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고 실질적으로 신앙을 포기한 채 사는 사람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필립 얀시는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Disappointment with God)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2장에 보면 휘튼 대학 대학원에 재학 중인 리처드라는 신학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욥기에 대한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얀시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고 원고를 보내게 됩니다. 비록 공부하는 과정에 있었던 신학생이었지만 그의 글은 비범한 통찰력과 깊이가 있었고 따라서 얀시는 그에게 기쁘게 추천사를 써주기로 약속합니다. 리처드는 그러나 자신의 글이 책으로 출판되기 얼마 전 얀시에게 전화를 걸어 할 말이 있다면서 만나자고 합니다.
뜨겁고 뿌연 햇살이 아파트 건물의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어느 날 얀시의 집에서 그를 만난 리처드는 자기가 쓴 글의 내용을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면서 말을 시작합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을 어렵게 만들었는지를 통렬히 말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해 말씀을 살펴보며 열심히 기도하였지만 자신이 한 모든 중요한 결정들은 결국 잘못된 결정이 되었고 취업의 기회들은 그를 비켜갔으며 자신의 영적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약혼녀에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파혼 당했고 게다가 신체적인 어려움까지 그를 괴롭혔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한 교회의 예배에 참석한 그는 그 예배에서 나온 피상적인 간증과 성도들의 반응에 거의 환멸을 느끼고 돌아와 그날 자정 무렵, 마침내 하나님께 최후통첩성의 기도를 합니다. 새벽 4시가 되기까지 꼬박 4시간동안이나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그는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면 그것을 알 수 있도록 어떤 징조를 주시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그의 절박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님은 아무런 반응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성경과 다른 기독교 관련서적들을 가지고 내려가 아파트 뒷마당에 설치된 바비큐용 그릴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기름을 부은 후 불을 붙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배신감과 깊은 실망을 그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이 신학생의 행동은 “충격적”이라는 형용사가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격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하나님께 대한 실망감을 놀랠 만큼 강한 톤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봅니다. 잘 알다시피 예레미야는 자신의 십대 시절 거의 반강제로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위기의 때에 그를 부르시면서 당신의 인도하심과 보호와 악한 자들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해주셨으나 그는 계속해서 조롱과 적대감과 핍박의 대상이 되었고 그를 대적하는 악인들과 거짓선지자들은 오히려 번성하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와 관련된 그 모든 비극적 상황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불평합니다. “주님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께 속았습니다. 주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렘 20:7, 새번역). 같은 성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여름날 목마른 사람들과 동물들을 속이는 마른 시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그것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실망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분명히 충족되지 못한 기대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의 약속들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나의 만족을 충족하기 위한 기대로 바꾸어 놓고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기대처럼 작용하지 않을 때, 또는 내가 기대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행동하시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영어로 실망을 뜻하는 단어인 disappointment는 not as appointed, 즉 “정해진 대로가 아닌”에서 유래했다는데 그 말은 상당히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는 이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기 스승의 십자가 죽음에 깊이 실망한 나머지 부활하신 예수께서 옆에 왔는데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조차 못합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실망이 사람들의 영적 비전을 가려놓는다”라고 말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죠. 그들은 자기들에게 다가와 대화에 끼어든 예수님께 최근에 일어났던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분이라 믿었고 그분이 일으키실 개벽을 기대했습니다. 로마의 억압에서 자유를 찾아주고 가난에서 자기들을 해방시켜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정치적, 경제적 메시야로 예수를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기는커녕 손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에 무력하게 죽어갔습니다. 그것도 가장 흉악한 죄인들이 당하는 수치스런 십자가의 형벌을 당했습니다.
‘이 무슨 패배이며 이 무슨 수치인가?’라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고 자기들의 팔자를 펴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따랐는데 이 모든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고 예수는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처럼 깊이 실망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기대를 점검해보십시오.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릅니까?
예수 믿으면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분을 따른다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실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믿고 교회에 나온다면 당신 또한 실망할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약속들이 나에게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믿는다면 더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무슨 거래를 하듯이 내가 이만큼 시간을 들여 섬기니 하나님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내가 생각하는 때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실망하며 배반감을 느낄 것입니다.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랑하기」라는 책에서 우리가 “번영의 신학”을 거부할 만큼 신학적으로 세련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건강과 돈과 성공을 기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을 따르는데 대한 투자의 보상으로, 직접적으로 손에 잡히고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배당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기대가 적절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약속을 해주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장미로 장식된 침대를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뭔가 특별한 경험으로 점철된 인생이나 “끝내주는 삶”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기대하라고 말씀합니다(딤후 3:12). 물론 이 말은 경건한 자가 전 생애에 걸쳐 언제나 핍박을 당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또는 모든 경건한 자가 동일한 종류나 강도의 핍박을 당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에게 핍박이나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핍박이 경건한 자의 삶을 묘사하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핍박과 동시에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삶의 고통과 문제와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분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그분의 형상에 합당하도록 차츰 차츰 빚어주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 손길을 언제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우리의 오해와 원망과 토라짐을 감내하시며 “거친 사랑”을 우리에게 행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영광스런 나라에 들어가 이 땅에서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과는 가히 비교도 되지 않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기대를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니까?
정말 무슨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시나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참으로 무엇입니까?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같은 미물을 사랑하사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잔인한 사형틀이라는 로마의 십자가에 달리셨던 바로 그분께서 “너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길에서 고난과 어려움과 문제와 상처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예수님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사 지낸지 사흘 만에 그분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군왕이나 영웅이나 “스타”가 흉내 낼 수 없는 영광스런 모습으로 부활하셨고 자기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우리가 쾌적한 유럽식 빌라와 웰빙 라이프스타일과 상류사회 문화로 치장된 “좋은 삶”을 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부활과 영화(glorification)와 최후승리의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C. S. 루이스가 자신의 판타지소설 「나니아 나라 이야기」(Chronicles of Nania) 마지막 부분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 땅에서 그 누구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 영원히 계속될 모든 챕터가 그 이전의 챕터보다 훨씬 더 나아질 위대한 이야기”의 삶을 주님의 나라에서 그분과 더불어 살게 될 것입니다.
기대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우리 것이 된 찬란한 미래는 당신의 모든 상상력을 다 동원해서 크게 기대해도 좋습니다. 그 기대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장차 올 현실은 그것을 초라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하셨습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거기 달려 온 몸이 찢기고 물과 피를 흘리신 나사렛 예수를 주목하여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온몸으로 외치는 사랑의 절규를 들어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께 실망하셨습니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을 겸손히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온몸으로 선포하시는 승리의 함성을 들어보십시오. 그것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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