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1, 2019

예수의 시간 "카이로스"(Kairos)와 "영원한 현재" 

예수의 시간 "카이로스"(Kairos)와 "영원한 현재" / 류기종 목사

1.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그리스어에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는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인들의 시간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시간의 경과나 과정을 나타내는 수평적인(horizontal) 혹은 직선적인(linear)시간의 개념을 지닌 말이고, "카이로스"는 히부리인들의 시간개념을 나타낼 때 쓰는 말로써,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때나 기회(chance/moment/opportunity)를 나타내는 것으로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나타내는 수직적(vertical)인 의미를 지닌 말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시간을 나타낼 때는 주로 "카이로스"란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의 전도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때"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천하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1) 

전도서 기자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과 인간사들은 우연히 일어나고 살아지는 것들이 아니라, 적당한 기회 즉 때(kairos)를 통하여 일어나며, 그 일들이 어떤 기능을 한 다음에 소멸하는데, 그 일들의 배후에는 우리 인간이 알 수 없고 미칠 수 없는 신비 즉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영원자"(the Eternal) 곧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가 배후에 개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신양성서에 보면, "때"(kairos)의 의미에 대해서, 즉 우리 인간사에 일어나는 기회(사건)들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들이 함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 1장14-15절, "요한이 잡인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란 말씀에서, 때가 찾고의 "때"는 바로 "카이로스"의 의미를 잘 들어내고 있다. 여기서의 때란 전 인류를 향한 복음의 선포의 시기 즉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결정적으로 전개할 중요한 "시점"(기회)이란 뜻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알렸을 때, 예수님이 내 "때"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한 경우에도, "카이로스"란 말로 표현되고 있는데, 여기서의 "때"도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고 성취시키는 결정적인 시기 혹은 기회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예수님이 수가성의 여인에게 하신 말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4:23)란 말씀도 같은 의미의 중요한 시점을 나타는 말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말씀은 종말론적 의미를 나타내는 "때" 혹은 "시간"에 관한 말씀이다. 여기에서도 "카이로스"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4-25) 

2. "카이로스"와 "영원한 현재"(Eternal Now)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할 점은, 예수님의 의미하는 때(시간)란 그리스인들의 시간관념인 "크로노스" 곧 수평적인 의미의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 곧 수직적인 의미의 시간 즉 영원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시간으로서, 이것은 초월적/초시간 공간적 시간, 다시 말하면 "영적 의미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카이로스적인 시간은 영원과 시간이 만나는 기회로써의 시간 곧 "영원한 현재"(eternal now or time in eternity)를 나타내는 시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영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살아지게 되고 언재나 현재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모든 시간은 언제나 현재 곧 "지금"이며, 그런 고로 그것은 곧 "영원한 현재"라고 칭할 수 있다. 

그런고로 위의 예수님의 말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영원자 곧 하나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곧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란 이 "때"도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시간인 영원한 현재의 시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영생을 소유하는 일, 구원을 얻는 일, 부활생명에 참여하는 일도 미래적인 사건이 아니라 바로 현재적인 사건 곧 영원성의 사건이 현재에서 성취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고(누리고) 있는가, 또한 예수님 안에 있는, 예수님이 소유했던, 참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인 "영원한 생명"(영생) 혹은 "부활생명"(영적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죽은 후의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내 마음에 천국이 실현되어 있는가,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면 참 구원을 이룬 사람, 참 구원을 누리고 있는 사람 곧 자신 속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인가?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하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란 바로 하늘나라 곧 하나님 나라의 징표인 "참 평화"를 누리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늘나라 곧 천국이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불안과 고통의 원인이 되는 죽음의 불안의 요소가 완전히 살아지고 대신에 하나님의 평화인 참 평화가 깃든 곳(영역 혹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국은 우리의 심령 곧 우리의 "마음"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 곧 하늘나라가 저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 천국을 누리고 있느냐 없느냐는 바로 내 심령(마음) 속에 곧 내 영혼 깊은 곳에 하늘나라/천국의 징표인 "참 평화"가 있느냐 없느냐로 알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3. 지상의 천국의 이미지로서의 에덴동산

그러면 우리는 이 혼탁한 사회, 무한 경쟁의 이 세상에서, 그리고 매일 매일의 긴장된 삶 속에서 어떻게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 예수님은 그 비결을 산상수훈 특히 팔복의 말씀에서 "빈 마음" 곧 "겸손한 마음"(마5:3)과 "깨끗한 마음" 곧 "청정심"(마5:8) 둘로 말씀해 주셨다. 여기 "청정심"이란 거짓 없는 정직한 마음도 포함된다. 즉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소유한 자가 절대 평화의 세계인 천국을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이 꾸임이 없이 단순하고 순수한(pure and honest) 마음을 소유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평화인 참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만들 수 있다. 즉 우리 인간의 마음/심령이 교만하여져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분열되어 있을 때에는 그만큼 우리의 심령은 엉키고 또 엉켜서 지옥과 같은 혼돈과 고통을 경험해야 하며, 반대로 우리의 심령이 지극히 겸손하고 또한 단순하고 순수하여지면 질수록 우리의 마음이 고요해 지고 맑아져서 모든 사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아름답게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평화를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국과 지옥은 결국 우리의 마음 곧 심령(영혼)의 상태에 좌우된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곧 너희 안에(너희 마음/심령 곧 너희 영혼 속에) 있느니라"(눅17:20-21)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바로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심령 곧 우리의 영혼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들어내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일의 탁월한 영성가인 마이스터 엑크할트(Meister Eckhart)는 하나님의 창조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적 사건 곧 "영원한 현재적 사건"임을 강조해준 바 있다. 즉 그에 따르면 하나님이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이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으로써 "영원한 현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언제나 현재적 사건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한 현재적" 사건이다. 이 신비를 그의 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나는 종종 하나님은 이 온 세상을 바로 지금 현재 창조하고 계시다고 말했었다. 하나님은 6천 년 전 아니 그 보다 더 이전에 세상을 만드실 때 그 모든 것을 바로 지금 당장에 창조하신다. 시간이 전혀 침투하지 못하는 곳, 그리고 어떠한 영상/ 이미지도 스며들지 못하는 그 곳, 영혼의 가장 깊고 또한 가장 높은 측면에서 하나님은 이 우주를 즉시 창조하신다> 

엑크할트는 하나님이 이 우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일은 먼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바로 지금(here and now) 우리의 영혼의 깊은 측면에서, 즉 우리의 영혼을 통해서, 창조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바로 이 우주 만물이 우리의 마음(영혼)을 떠나서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신비를 암시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를 독일 관념론(觀念論/idealism) 철학의 원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엑크할트의 우리의 영혼을 통한 하나님의 창조관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란 이 세상적인 곧 시간 공간의 물리적인 사건을 넘어서는 영적인 사건(세계)을 의미하며, 또한 영적 사건(세계)은 바로 이세상적인 차원을 초월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실재적인(fundamental and real), 다시 말하면 잠간동안 있다 없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참으로 있으며 또한 영원히 있는 "실재의 세계"(the world of reality)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참 생명 혹은 영적 생명 혹은 하나님의 나라(천국)란 바로 이런 참으로 있는 "실재의 세계"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곧 영적 실재이신 하나님과 영적으로 연합된 사람들 다시 말하면 자신 속에 참 생명인 영적 생명을 지닌 사람들은 속절없이 변해가는 잠시적인 이 세계 안에 살면서도, 그리고 어떠한 환경의 조건 속에서도, 지금 이 시간 그리고 매일 매순간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해주시는 만물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인 참 생명 곧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자신 속에 간직하고서, 사망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현재적 사건인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일출의 황홀함을 바라보며 생기 넘치는 풀과 나무들을 바라볼 때에도, 바로 여기가 다름 아닌 에덴동산(천국의 모형)임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덴동산은 저 먼 과거에 있다가 사라진 동산, 저 중동지역의 어느 장소에 있었던 동산이 아니라, 바로 내 영혼 속에서, 내 영혼을 통해서 곧 내 영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이 세계가 바로 에덴동산이며, 천국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이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혼탁하고 삭막한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보고 심히 기뻐하신 것처럼 만물의 아름다움과 황홀함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 신앙인 곧 영적인 사람들이란 바로 이 세상의 한 복판에서,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그리고 이 세상 이디에서든지, 진선미의 조화의 세계인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 곧 에덴동산을 발견하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엑크할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영적인 사람은 수도원의 골방 안에서나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나 똑같이 하나님의 임재(천국)를 경험하는 사람이다. 

물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은 각 개인의 마음속에 실현되는 천국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 즉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실현되는 "우주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 인류의 천국의 실현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 즉 각 사람의 마음의 천국의 온전한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달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천국에 대한 비유 즉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의 의미이다(마13:31-33). 그러기에 나 한 사람의 마음의 천국의 온전한 실현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 한 사람의 마음의 천국의 온전한 실현이 이루어 질 때, 그것은 바로 전후좌우로, 전 교회와 전 사회와 전 세계로 확대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조리와 병리 현상들은 내세지향적은 구원관 혹은 천국관에 머물러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의 은총에 대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의 에덴동산의 감격을 경험하지 못하고 또한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의 천국의 기쁨을 온전하게 향유하지 못하고 방황하는데서 오는 결과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내적인 만족을 충분하게 경험하지 못하면 외적인 것에 매달리며 탐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 말씀의 뜻을 깊이 음미하며 살아야 한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천국은 바로 너희 안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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