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26, 2020

사순절 묵상(17) / 정용섭 목사

사순절 묵상(17)

정용섭2015

17) 39()

<본문읽기>

시 8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나의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왕상 6:1-4, 21-2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성전은 길이가 육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며 성전의 성소 앞 주랑의 길이는 성전의 너비와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너비는 성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성전을 위하여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

21 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고전 3:10-23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 it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집중 묵상구절>

고전 3:16, 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묵상>

바울은 고전 3:16-17절에서 혁명적인 발언을 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런 말을 유대인들특히 제사장들이 들었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그들에게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솔로몬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최고급의 자재로 성전을 건축했다왕상 6장에 따르면 솔로몬은 성전을 칠 년에 걸쳐 지었다

그 뒤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렸다그 이전에는 여러 산당에서 제사가 가능했었다예루살렘 성전은 유대교가 성직자 중심의 교권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다역사가 흐르면서 성전은 점점 더 강한 종교 이데올로기의 구심점이 되었다예수 당시에 그런 현상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와 예루살렘 성전에 얽힌 일화는 네 복음서에 다 나온다약간씩 차이가 있는데요한복음이 제일 세밀하게 보도한다아마 이 사건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이 요한에 의해서 가미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유월절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그곳에는 성지 순례 차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한 편의점들이 있었다각 지역의 돈을 성전에서 통용되는 돈으로 환전해 주는 일흠이 없는 양이나 비둘기를 파는 일이 그것이다예수는 마치 노점상을 강제로 철거하는 구청 직원처럼 그들을 내쫓았다

공관복음은 그 순간에 예수가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는 사 56:7절을 인용했다고 전한다

요한복음은 약간 다르다예수의 행동을 보고 유대인들이 무슨 권위로 당신이 성전에서 행패를 부리느냐고 묻자예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한복음은 예수가 자기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는 주석을 붙였다예수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적인 게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이런 입장은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긴 하다.

바울은 성전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다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성전이라는 것이다바울은 덧붙여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했다

이런 말이 이해될 것 같으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바울이 이런 말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좋다

고린도교회에는 신앙적인 입장을 달리하는 여러 분파가 있었다고전 1:12절에는 바울파아볼로파게바파그리스도파가 나온다고전 3:4,5절에는 대표적으로 바울파과 아볼로파가 나온다고린도교회 안에 분쟁이 심각했다바울은 이렇게 정리한다자기는 복음의 씨를 뿌렸고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뿐이다자라게 한 이는 하나님이다고린도교회에서 지도자로 활동한 사람들은 그런 역할만 할 뿐이지 교회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다고전 3:11절은 이렇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의 이런 해석에 따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키운 사람들이다하나님이 키웠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그렇다면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충고한다고린도교회 신자들은 앞에서 짚은 것처럼 서로 대립했다자신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정당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다이런 분쟁은 거룩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그렇다고 해서 거룩하다는 게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무조건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거룩한 것도 아니다교회의 토대신앙의 토대를 잘못 세우는 것이 바로 거룩하지 못한 것이다아볼로에 속했는지또는 바울에게 속했는지를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태도는 거룩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칭의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의는 옳다는 것만이 아니라 거룩하다는 뜻도 포함된다우리가 예수 믿고 의롭다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곧 거룩해졌다는 뜻이다하나님의 의는 우리에게 율법 실천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한다예수를 믿는 것이 의로워지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 믿어도 실제로는 의로워지지 않았다는 사실로 고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우리가 얻는 의는 법적인 의미다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지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하나님의 존재론적 통치 차원에서는 의로워졌지만 일상생활의 차원에서는 아직 아니다

요약해서우리가 거룩해지는 길은 예수를 믿는 데서 주어진다죽음이 극복되었다는 사실에 영혼이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 어찌 거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아니겠는가.

<기도>

주님예수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며이에 근거해서 우리가 이미 거룩해졌다는 사실을 믿습니다예수 이름으로 비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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