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한 절 묵상(01102019)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the heavenly realm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Christ."
📍말씀 주석
🔹찬송하리로다
- 이것은 유대인의 전형적인 찬양구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롬 15:6; 벧전 1:3, Foulkes, Wood).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우리에게 복주시되
- 본절은 '엔'('...안에')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전치사구로 구성되어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 - 혹자는 본문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J.A. Allan). 그러나 본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배제할 수가 없다(2:6, Lincoln).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짐을 시사한다(Bruce).
(2) 하늘에 속한('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 본문과 같은 전치사구가 본서에서는 다섯번 나타난다(3, 20절, 2:6; 3:10; 6:12).
이것은 본절의 '신령한'과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Foulkes, Bruce).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늘의 영역과 연결시키는 구원과 영생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미래에 맛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축복이다(Lincoln).
(3) 신령한 복으로('엔' 율로기아 프뉴마
티케) - 여기서 '신령한 복'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시어 이루어진 결과를 가리킨다(5:19; 골1:9;3:16).
이 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세상적이며 육적인 축복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적인 복이다(Foulkes, Lincoln, Bruce).
📍말씀 이해
🔹찬송(양)
사도 바울은 먼저 모든 성도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성도에게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찬양 또는 찬송을 뜻하는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들 중 핵심적인 동사인 "힐렐"은 "자랑하다, 높이다, 칭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할렐루야'는 동사 ‘힐렐(hillel)’의 명령형인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hallelu)’와 하나님이란 뜻의 ‘야훼(Yahweh)’를 축약한 ‘야(yah)’가 합성되어 생긴 단어입니다. ‘야훼(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란 뜻입니다.
찬양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고 높으며 거룩하신 성품과 그의 크고 놀라운 섭리와 능력을 감사하고 고백하여 그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훌륭한 지도자를 칭송하거나 부모를 그 자녀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백성으로서 왕 중의 왕을, 종으로서 주님을 그리고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는 것과 같습니다.
찬양(송)은 피조물 인간이 성삼위 하나님의 성품(속성)과 그의 능력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3:21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구원하여 주신 목적이 바로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찬양할 때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며 창조의 목적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부 아버지께서 만물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머리로 되게 하시어, 언젠가 때가 되면 온 세상과 사람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가 찬양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인 요한계시록 5:12-13을 꼭 참조하십시오.
🔹복
1. 앞의 그랜드 종합 주석이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성도가 누리는 '복(blesding)'을 언급하면서, '~안에'라는 전치사 '엔' 곧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하늘에 속한(in this heavenly realms), 그리고 모든 신령한(every spiritual)을 세 번 언급합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복(Blessing)'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합동신학교의 송인규 목사(박사)님의 '복 - 쉽지 않은 주제, 풀어야 할 숙제'라는 글에서 복에 대한 설명를 인용해 봅니다.
"우선 ‘복’의 어의(語義)부터 알아보자. 히브리어 베라카는 ‘좋은 것’(good)을 뜻하는데, 주로 물질적 은택(material good)을 의미한다. 희랍(헬라, 그리스)어 율로기아(eujlogiva)는 주로 복음이 가져다주는 영적 선/유익을 의미하지만, 때로 물질적 유익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에 비해 마카리오스(makavrio)는 복된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복은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선의(善意, good will)로서 영적·물질적 은택을 통하여 나타나고 또 그로 인해 향유하는 행복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복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베푸시는 모든 영적이고 물질적인 좋은 것 혹은 그 현상을 의미한다고 이해됩니다.
2. 아울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정확게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실제 신앙 생활에 잘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신약이 설명하는 복에 큰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약은 주로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복을 주로 의미하는 반면에 신약에서는 하늘에 속한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복을 주로 언급합니다.
송인규 목사님은 같은 글에서 신구약이 알려주는 복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복의 특징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왜 이런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일까? 왜 구약의 복이 주로 물질적·현실적·가시적인 것인 반면, 신약에서는 복의 초자연적·영적·내면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근본적 답변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특징지운 종교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야훼 종교가 주로 인간의 표면에 치중하는바 형식적이고 외양적인 것이었다면, 신약에 와서는 종교의 핵심이 인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춘 신령하고 내면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물론 구약은 표면적·형식적일 뿐이고 신약은 내면적·영적이기만 하다는 식으로 대조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이 두 면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공히 나타나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전자에 신약은 후자에 착념해 있다는 것이다."
구약의 복을 너무 따라가면 기복주의 신앙으로 흐르게 되고 반면에 신약의 복만을 생각하면 삶 속에서 섬세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놓치게 됩니다.
📌송인규 목사님의 전체 글은 아래의 제 블로그의 사이트를 참조하십시오. 꼭 한 번 읽으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http://lbwgl.blogspot.com/2018/05/blog-post_19.html?m=1
3. 성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복은 반드시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출발합니다. 구원과 성화와 영화로 이어지는 믿음의 여정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속죄에 온전히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2절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그를 믿는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4. 바울은 성도가 누리는 복을 '하늘에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에베소 1장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3-6절), 성자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7-12절),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적용(13-14절)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구원은 실로 성삼위 하나님(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작품이기에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예정)하셨고, 이를 위해 성자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성육신 하시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승천하시어 새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안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게 하십니다.
5.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모든 신령한 복'이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주셨다고 언급합니다.
성도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복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 복은, 장차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도록 허락하시는 신령한 복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이 복 중의 최고의 복이라는 의미로 '모든'이라는 단어를 신령한 복 앞에 붙였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바울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신령한 복'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가치관 혹은 체계에서 발견될 수 없는 '영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복있는 사람'을 언급하시면서 모두 8가지의 영적 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말씀 적용
1. 엡1:3의 '찬송하리로다'를 묵상하며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즐거워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됩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배우며 그가 이루신 위대한 일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될 때에 온 인격을 드리는 찬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합니다.
시편 56:10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 In God, whose word I praise, in the LORD, whose word I praise."라고 노래합니다.
결국 찬양은 내 삶의 존재 이유이며 성삼위 하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소중한 방편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잎이 사철 마르지 않는 것과 같이 (시편 1편) 내 마음에 기쁜 찬양의 노래가 마르지 않도록 주신 은혜를 붙잡고 말씀 안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2. 사도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in Christ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the heavenly places, ESV)'을 묵상하며 땅에 썩어질 것들이 아닌 영생을 향한 거룩한 일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삶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고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가시적인 복만을 추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쉽게 실망하고 결국 실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도할 때마다 나의 소원과 만족을 내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이루어주시는 자판기로 간주하는 불순종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때로는 허락하시는 환난과 아픔과 갈등도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유익한 신앙의 디딤돌이 됩니다. 그래서 내 삶의 우선 순위 를 영적인 것 곧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운데, 내가 받아야 하는 참된 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매일 점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를 통하여 구원받아 참된 평강을 누리며 영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모든 신령한 복의 최종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그가 베푸신 은혜를 묵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고,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을 매일 더욱 새롭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the heavenly realm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Christ."
📍말씀 주석
🔹찬송하리로다
- 이것은 유대인의 전형적인 찬양구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롬 15:6; 벧전 1:3, Foulkes, Wood).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우리에게 복주시되
- 본절은 '엔'('...안에')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전치사구로 구성되어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 - 혹자는 본문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J.A. Allan). 그러나 본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배제할 수가 없다(2:6, Lincoln).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짐을 시사한다(Bruce).
(2) 하늘에 속한('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 본문과 같은 전치사구가 본서에서는 다섯번 나타난다(3, 20절, 2:6; 3:10; 6:12).
이것은 본절의 '신령한'과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닌다(Foulkes, Bruce).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늘의 영역과 연결시키는 구원과 영생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미래에 맛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축복이다(Lincoln).
(3) 신령한 복으로('엔' 율로기아 프뉴마
티케) - 여기서 '신령한 복'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시어 이루어진 결과를 가리킨다(5:19; 골1:9;3:16).
이 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세상적이며 육적인 축복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영적인 복이다(Foulkes, Lincoln, Bruce).
📍말씀 이해
🔹찬송(양)
사도 바울은 먼저 모든 성도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성도에게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찬양 또는 찬송을 뜻하는 구약의 히브리어 단어들 중 핵심적인 동사인 "힐렐"은 "자랑하다, 높이다, 칭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할렐루야'는 동사 ‘힐렐(hillel)’의 명령형인 찬양하라는 의미의 ‘할렐루(hallelu)’와 하나님이란 뜻의 ‘야훼(Yahweh)’를 축약한 ‘야(yah)’가 합성되어 생긴 단어입니다. ‘야훼(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란 뜻입니다.
찬양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고 높으며 거룩하신 성품과 그의 크고 놀라운 섭리와 능력을 감사하고 고백하여 그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들이 훌륭한 지도자를 칭송하거나 부모를 그 자녀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백성으로서 왕 중의 왕을, 종으로서 주님을 그리고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높이는 것과 같습니다.
찬양(송)은 피조물 인간이 성삼위 하나님의 성품(속성)과 그의 능력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43:21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구원하여 주신 목적이 바로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하나님께 전심으로 찬양할 때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며 창조의 목적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부 아버지께서 만물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머리로 되게 하시어, 언젠가 때가 되면 온 세상과 사람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가 찬양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인 요한계시록 5:12-13을 꼭 참조하십시오.
🔹복
1. 앞의 그랜드 종합 주석이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성도가 누리는 '복(blesding)'을 언급하면서, '~안에'라는 전치사 '엔' 곧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하늘에 속한(in this heavenly realms), 그리고 모든 신령한(every spiritual)을 세 번 언급합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복(Blessing)'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합동신학교의 송인규 목사(박사)님의 '복 - 쉽지 않은 주제, 풀어야 할 숙제'라는 글에서 복에 대한 설명를 인용해 봅니다.
"우선 ‘복’의 어의(語義)부터 알아보자. 히브리어 베라카는 ‘좋은 것’(good)을 뜻하는데, 주로 물질적 은택(material good)을 의미한다. 희랍(헬라, 그리스)어 율로기아(eujlogiva)는 주로 복음이 가져다주는 영적 선/유익을 의미하지만, 때로 물질적 유익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에 비해 마카리오스(makavrio)는 복된 상태를 묘사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복은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선의(善意, good will)로서 영적·물질적 은택을 통하여 나타나고 또 그로 인해 향유하는 행복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복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베푸시는 모든 영적이고 물질적인 좋은 것 혹은 그 현상을 의미한다고 이해됩니다.
2. 아울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정확게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실제 신앙 생활에 잘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신약이 설명하는 복에 큰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약은 주로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복을 주로 의미하는 반면에 신약에서는 하늘에 속한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복을 주로 언급합니다.
송인규 목사님은 같은 글에서 신구약이 알려주는 복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복의 특징에 있어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왜 이런 차이가 두드러지는 것일까? 왜 구약의 복이 주로 물질적·현실적·가시적인 것인 반면, 신약에서는 복의 초자연적·영적·내면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근본적 답변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특징지운 종교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약의 야훼 종교가 주로 인간의 표면에 치중하는바 형식적이고 외양적인 것이었다면, 신약에 와서는 종교의 핵심이 인간의 중심에 초점을 맞춘 신령하고 내면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물론 구약은 표면적·형식적일 뿐이고 신약은 내면적·영적이기만 하다는 식으로 대조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이 두 면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공히 나타나는 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전자에 신약은 후자에 착념해 있다는 것이다."
구약의 복을 너무 따라가면 기복주의 신앙으로 흐르게 되고 반면에 신약의 복만을 생각하면 삶 속에서 섬세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놓치게 됩니다.
📌송인규 목사님의 전체 글은 아래의 제 블로그의 사이트를 참조하십시오. 꼭 한 번 읽으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http://lbwgl.blogspot.com/2018/05/blog-post_19.html?m=1
3. 성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복은 반드시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출발합니다. 구원과 성화와 영화로 이어지는 믿음의 여정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속죄에 온전히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2절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그를 믿는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4. 바울은 성도가 누리는 복을 '하늘에 속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에베소 1장에서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3-6절), 성자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7-12절),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적용(13-14절)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구원은 실로 성삼위 하나님(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작품이기에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예정)하셨고, 이를 위해 성자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성육신 하시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승천하시어 새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안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게 하십니다.
5.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모든 신령한 복'이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주셨다고 언급합니다.
성도는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복을 누립니다. 하지만 그 복은, 장차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도록 허락하시는 신령한 복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이 복 중의 최고의 복이라는 의미로 '모든'이라는 단어를 신령한 복 앞에 붙였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바울은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신령한 복'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가치관 혹은 체계에서 발견될 수 없는 '영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복있는 사람'을 언급하시면서 모두 8가지의 영적 복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말씀 적용
1. 엡1:3의 '찬송하리로다'를 묵상하며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즐거워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됩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배우며 그가 이루신 위대한 일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될 때에 온 인격을 드리는 찬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합니다.
시편 56:10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 In God, whose word I praise, in the LORD, whose word I praise."라고 노래합니다.
결국 찬양은 내 삶의 존재 이유이며 성삼위 하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소중한 방편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잎이 사철 마르지 않는 것과 같이 (시편 1편) 내 마음에 기쁜 찬양의 노래가 마르지 않도록 주신 은혜를 붙잡고 말씀 안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2. 사도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in Christ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the heavenly places, ESV)'을 묵상하며 땅에 썩어질 것들이 아닌 영생을 향한 거룩한 일에 더 마음을 쏟아야 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삶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고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가시적인 복만을 추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쉽게 실망하고 결국 실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도할 때마다 나의 소원과 만족을 내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이루어주시는 자판기로 간주하는 불순종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때로는 허락하시는 환난과 아픔과 갈등도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유익한 신앙의 디딤돌이 됩니다. 그래서 내 삶의 우선 순위 를 영적인 것 곧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가운데, 내가 받아야 하는 참된 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매일 점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를 통하여 구원받아 참된 평강을 누리며 영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모든 신령한 복의 최종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그가 베푸신 은혜를 묵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고,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을 매일 더욱 새롭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