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에 대한 비유들
이인규
이스라엘에서 고대부터 중요한 농산물을 수확하는 나무가 셋이 있는데,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이다.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스라엘의 풍성한 구원을 상징한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시 80:8-14)
예레미야 선지자는 귀한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는지를 묻는다. 표준새번역은 이를 들포도나무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은 품질이 나쁜 잡종으로 번역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이것은 이사야서 5장과 동일한 의미가 되는데, 좋은 열매가 없다면 5장5절과 같이 울타리를 걷어 짓밟힘을 당하게 될 것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 5:2)
포도나무는 오직 그 과실이 중요한 것일 뿐이며, 곧게 자라거나 굵게 자라지 않으므로 건축자재로서 부적당하다.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는 불에 태우는 땔감이 될 뿐이며, 이러한 표현은 곧 심판을 상징한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겔 15:2-4)
구약에서 포도나무를 이스라엘로 비유한 것도 결국 믿음의 유기체적인 연합을 뜻하며, 수확하는 포도열매는 풍성한 구원을 상징한다. 에스겔서 본문에서 불에 태우는 포도나무 가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땔감으로 비유된 것이다.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가 이단들에게 오용되어지고 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포도나무를 사람이라고 비유풀이를 하고, 어떤 이단들은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감람나무를 모두 이스라엘로 비유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구원파나 하나님의교회같은 이단들은 마태복음 24장32절의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해석하여 무화과나무에서 나오는 잎사귀를 1948년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여 한 세대 안에 예수가 재림하신다는 시한부종말론적인 해석을 주장하게 된다.
성경에서 포도원의 일은 포도를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한 많은 단계와 과정으로 표현되었으며, 도둑(렘49:9)과 멧돼지(시80:13), 여우(아2:15)등의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돌벽을 세웠으며 망루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곧 구원으로 비유된 것이다.
또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 포도나무를 그의 메시야적인 사역과 비유하였으며, 마20:1-16, 마21:28-32, 막12:1-11에서는 유대인들을 불의한 소작인으로 비유하신다.
특히 유대교 문학에서 포도나무는 메시야를 상징하는데,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요 15:1-5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다. 그리고 예수와 연합한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비유하여,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저절로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기체적인 관계로 비유한다.
이 포도나무의 비유에 대해서 혹간은 요한복음 본문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행위로 해석하는 견해 :
본문에서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을 행위적인 결과로 해석하여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본문은 믿음 외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포도나무 자체가 갖고 있는 것 외의 별도의 어떤 추가적인 행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한복음 본문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라는 것은 소위 상호내재라는 관계를 말하는데, 이 관계에 대해서 성경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2;24)
상호내재란 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연결된 유기체적인 영적인 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예수라는 뿌리에 연결된 가지가 되므로서 열매를 맺게 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10)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후13: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2) 신비적인 연합으로 해석하는 견해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많은 사람은 모두 한 인격이 된다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한몸이 되어서 서로 지체를 이룬다는 것은 유기체적인 영적연합을 뜻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과 헬라인과 종이나 자주자와 남자나 여자가 모두 한 인격이라는 것이 아니라, 한 믿음에 의한 유기체적인 연합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구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하셨으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전7:15-17)
창기와 합하는 자는 창기와 한 몸이 되어진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두 인격이 한 인격으로 합체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창기와 같은 성적 탐욕을 가진 동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창기와 실제적인 연합이나 한 몸, 한 인격이 아니라, 연합적인 동질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들이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소위 신화사상을 주장하는데,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15장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자는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실제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인격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구별 가운데에서 유기체적인 영적 연합이 되는 것을 뜻한다. 루이스 벌콥은 신인합일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비적연합의 그릇된 개념들. 2. 신비적 오류:
다른 위험한 오류는 신비적 연합을 신자와 그리스도의 동일성으로 이해한 신비주의자들의 그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신비적 연합에는 본질의 연합이 있으며, 거기에는 한편의 인격성이 단순히 다른 편의 인격성으로 합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신자는 두 개의 구별된 인격들로 남아있지 않는다.“(루이스벌콥, 벌콥조직신학 하권, 199쪽)
유명한 조직신학자인 웨인그루뎀도 다음과 같이 상호내재를 설명하였다.
“그(예수)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연합이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완전한 연합과 같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으로, 우리의 하나됨은 영원하고 완전히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함을 (하나님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삼위를 통한 비유가 대단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개개인의 성품을 흡수해 버리지는 못할 것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들은 독립된 삼위이다. 마찬가지로 어느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관심 책임, 친구관계, 선호도, 욕망등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을 것이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57쪽)
3) 어떤 이단은 포도나무를 자신들의 교회로 비유한다.
구원파와 같은 계열의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포도나무라고 주장한다.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교회에서 나가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오역임과 동시에 악의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요한복음 본문의 포도나무는 지상에 있는 유형적인 어떤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머리가 되시는 무형적인 교회를 말한다.
무형적인 교회의 본질적 성격은 그 주인이며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의 일차적 정의가 되어야만 한다. 머리와 몸이신 예수그리스도가 교회를 구성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