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8, 2016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들                                                                                                                        

이인규

이스라엘에서 고대부터 중요한 농산물을 수확하는 나무가 셋이 있는데,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이다.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스라엘의 풍성한 구원을 상징한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시 80:8-14)

예레미야 선지자는 귀한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는지를 묻는다. 표준새번역은 이를 들포도나무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은 품질이 나쁜 잡종으로 번역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렘 2:21)

이것은 이사야서 5장과 동일한 의미가 되는데, 좋은 열매가 없다면 5장5절과 같이 울타리를 걷어 짓밟힘을 당하게 될 것이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사 5:2)

포도나무는 오직 그 과실이 중요한 것일 뿐이며, 곧게 자라거나 굵게 자라지 않으므로 건축자재로서 부적당하다. 열매가 없는 포도나무는 불에 태우는 땔감이 될 뿐이며, 이러한 표현은 곧 심판을 상징한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겔 15:2-4)

구약에서 포도나무를 이스라엘로 비유한 것도 결국 믿음의 유기체적인 연합을 뜻하며, 수확하는 포도열매는 풍성한 구원을 상징한다. 에스겔서 본문에서 불에 태우는 포도나무 가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땔감으로 비유된 것이다.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가 이단들에게 오용되어지고 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포도나무를 사람이라고 비유풀이를 하고, 어떤 이단들은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 감람나무를 모두 이스라엘로 비유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구원파나 하나님의교회같은 이단들은 마태복음 24장32절의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해석하여 무화과나무에서 나오는 잎사귀를 1948년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여 한 세대 안에 예수가 재림하신다는 시한부종말론적인 해석을 주장하게 된다.

성경에서 포도원의 일은 포도를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한 많은 단계와 과정으로 표현되었으며, 도둑(렘49:9)과 멧돼지(시80:13), 여우(아2:15)등의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돌벽을 세웠으며 망루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곧 구원으로 비유된 것이다.

또 신약에서 예수님은 이 포도나무를 그의 메시야적인 사역과 비유하였으며, 마20:1-16, 마21:28-32, 막12:1-11에서는 유대인들을 불의한 소작인으로 비유하신다.
특히 유대교 문학에서 포도나무는 메시야를 상징하는데,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한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요 15:1-5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다. 그리고 예수와 연합한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비유하여,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저절로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기체적인 관계로 비유한다.

이 포도나무의 비유에 대해서 혹간은 요한복음 본문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행위로 해석하는 견해 :

본문에서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을 행위적인 결과로 해석하여 행위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본문은 믿음 외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포도나무 자체가 갖고 있는 것 외의 별도의 어떤 추가적인 행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요한복음 본문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라는 것은 소위 상호내재라는 관계를 말하는데, 이 관계에 대해서 성경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2;24)

상호내재란 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연결된 유기체적인 영적인 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는 예수라는 뿌리에 연결된 가지가 되므로서 열매를 맺게 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10)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후13: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2) 신비적인 연합으로 해석하는 견해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많은 사람은 모두 한 인격이 된다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한몸이 되어서 서로 지체를 이룬다는 것은 유기체적인 영적연합을 뜻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과 헬라인과 종이나 자주자와 남자나 여자가 모두 한 인격이라는 것이 아니라, 한 믿음에 의한 유기체적인 연합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구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하셨으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전7:15-17)

창기와 합하는 자는 창기와 한 몸이 되어진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두 인격이 한 인격으로 합체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본질적으로 창기와 같은 성적 탐욕을 가진 동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창기와 실제적인 연합이나 한 몸, 한 인격이 아니라, 연합적인 동질성을 말하는 것이다.

지방교회와 같은 이단들이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소위 신화사상을 주장하는데, 그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15장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합하는 자는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실제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인격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구별 가운데에서 유기체적인 영적 연합이 되는 것을 뜻한다. 루이스 벌콥은 신인합일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비적연합의 그릇된 개념들. 2. 신비적 오류:
다른 위험한 오류는 신비적 연합을 신자와 그리스도의 동일성으로 이해한 신비주의자들의 그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신비적 연합에는 본질의 연합이 있으며, 거기에는 한편의 인격성이 단순히 다른 편의 인격성으로 합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신자는 두 개의 구별된 인격들로 남아있지 않는다.“(루이스벌콥, 벌콥조직신학 하권, 199쪽)

유명한 조직신학자인 웨인그루뎀도 다음과 같이 상호내재를 설명하였다.

“그(예수)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연합이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완전한 연합과 같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으로, 우리의 하나됨은 영원하고 완전히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함을 (하나님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삼위를 통한 비유가 대단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개개인의 성품을 흡수해 버리지는 못할 것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음에도 그들은 독립된 삼위이다. 마찬가지로 어느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관심 책임, 친구관계, 선호도, 욕망등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을 것이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57쪽)

3) 어떤 이단은 포도나무를 자신들의 교회로 비유한다.

구원파와 같은 계열의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포도나무라고 주장한다.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교회에서 나가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오역임과 동시에 악의적인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요한복음 본문의 포도나무는 지상에 있는 유형적인 어떤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머리가 되시는 무형적인 교회를 말한다.

무형적인 교회의 본질적 성격은 그 주인이며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의 일차적 정의가 되어야만 한다. 머리와 몸이신 예수그리스도가 교회를 구성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Sunday, November 20, 2016

죽음이 유익인 다섯 가지 이유

🔥죽음이 유익인 다섯 가지 이유

/ John Piper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1

어째서 죽는 것이 "유익"이 될까요?

1) 우리의 영이 완전해질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2-23).

우리 안에는 더 이상 죄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내적 전쟁은 끝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께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가슴이 찢기는 실망감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 이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누가복음 16:25).

죽자마자 몸이 부활하는 기쁨을 얻게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고통에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위대한 반전이 있을 것을 보여 주십니다.

[부자가]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3) 영혼의 심오한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9-11)

그곳에서는 이 땅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장 평화로운 호숫가의 포근한 여름밤 저녁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눈동자와 같은 보살핌 아래에서 평안함이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4) 우리는 진정한 본향에 온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8).

모든 인류는 그들이 비록 이를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없이는 만족하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듯 하나님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본향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안전감과 평화 그 이상의 만족감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5)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1:21-23).

그리스도는 이 땅의 그 누구보다 놀라운 분입니다. 그는 당신이 함께 있고 싶은 그 누구보다 지혜로우시고, 강하시고, 친절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끝없이 흥미로운 분이십니다. 그는 그의 손님들을 가능한 한 가장 즐겁게 만들기 위해 매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씀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 그 사랑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무한한 통찰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Wednesday, November 9, 2016

가장 큰 부부 계명 / 이선이 목사

💜가장 큰 부부 계명(엡 5:33)
/ 이선이 목사

✔에베소서 5장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

성경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성경은 저자와 내용과 형식과 부피가 다른 66권 책들의 묶음이다. 기독교인의 경전인 성경은 계시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절대적이고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

성경의 방대한 내용은 ‘가장 큰 계명’으로 함축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22:37-39)

그러면 성경 가운데 부부에 관한 말씀 중에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일까?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3)는 말씀을 보고자 한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한 핵심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와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어떻게 하셨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며 자신을 내어주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엡 5:28-30)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유비하였다. 남편은 아내와 한 몸임을 강조했다.

남편에게 제일 가는 일은 자신의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남편은 일, 자녀, 명예, 친구, 취미, 스포츠 등 세상의 그 어떤 것 혹은 어느 누구보다 아내 사랑하기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아내에게 남편 사랑은 삶의 영양분이며 양식이다. 사랑받는 아내는 시댁갈등, 자녀문제, 재정 위기 등 모든 위기 상황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하나님은 아내가 남편을 희생적으로 존경하라고 한다.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33) 오늘날 아내들이 자기 남편을 존경하는 것은 거의 힘들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존경 없이 성공하지 못한다. 아내에게 제일가는 일은 남편을 존경하는 일이다. 남자에게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는 분명하게 심리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존경하다”는 단어에는 “두려워하다”와 “경외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내는 남편을 높이 여겨야 할 뿐 아니라 매우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존경”과 “사랑”이라는 단어는 실제 부부 생활에 적용된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존경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자신의 아내를 육체적·정신적으로 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람들 앞에서 깎아내리며 무시할 때, 아내와 거리를 둔다. 그리고 그는 일, 취미 생활, TV 시청, 컴퓨터 혹은 인정해줄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지 않고, 불평하거나 비판하거나 우는 소리를 내거나 혹은 사랑을 느끼게 해 줄 누군가를 원한다.

사랑받지 못하면 아내는 존경하지 않는다. 존경받지 않으면 남편은 사랑하지 않는다. 서로 지겨운 사이가 된다.

존경받으면 남편은 사랑한다. 사랑받으면 아내는 존경한다. 서로 행복한 관계가 된다.

이것이 모든 부부 관계의 기본 원리이자 문제 해결의 결론이다.

🔹이선이 박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장신대학원에서 석사((M.Div), 박사(Th.D. in Missiology) 학위를, 미국 플로리다신학원(FCTS)에서 여성리더십으로 박사(D.Min)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