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핵심 연구
/ 이동례 목사
저자는 느헤미야이며, 기록 연대는 B.C. 421-400년경이다.
기록장소는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있던 유대땅이며, 대상은 예루살렘 복구 작업에 참여하는 유대인들이다.
본서는 3차 포로귀환 및 성벽 재건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정복국의 시종 느헤미야가 조국 수도로부터 한 비보를 접수하는 장면의 서술로 시작된다. (1:1-3)
바벨론(대상 9:1) 제국의 4대 수도중 하나인 수산 궁에서 왕의 술관원 일을 보던 그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잔류민이 환난을 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고국 소식은 느헤미야의 심령과 생활에 수심의 그림자를 몰고 왔다. 비록 이국의 관리의 신분이지만 마음은 늘 요단강 서편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던 그로서는 조국의 정치적, 종교적 안녕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관심사였다.
기원전 457년 봄에 에스라는 유대인들의 한 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성행하던 이방 민족과의 결혼 풍습을 근절시키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에 의해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지고, 왕은 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스4:7-21).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르훔과 심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벽을 허물고 성전을 불태우면서 강제로 공사를 중지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다 사람들을 새로이 일으켜 세우기 위해 에스라와 함께 합심하여 노력하였다.
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1-7장으로서 제3차 포로 귀환을 인솔한 느헤미야가 일차적으로 성벽 재건에 관심을 갖고, 이방 대적들의 끈질긴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52일만에 성벽 재건을 완수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둘째는 8-13장으로서 성벽이 완공된 후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여 백성들을 성별하여 굳건하게 세우는 영적 부흥운동이 전개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신앙 개혁 운동은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정결케 하고 안식일을 지킬 것을 강조하며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하는 등 개혁 운동을 전개하였다.
본서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의 재건과 언약의 백성을 회복시키고 개혁하는 것이다.
느헤미야에 의해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일시적 회복은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될 하나님의 백성들의 완전한 구원을 가르쳐 주며 소망케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느헤미야는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말라기도 이 기간 동안에 영적, 도덕적 부흥 운동을 위해 협력하였다. 본서에 나타난 죄악상을 말라기서가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말라기는 느헤미야가 예로살렘 총독으로 있을 때 예언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B. C. 586년 경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그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후에 바벨론 제국이 바사(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됨으로서, 이 약속이 성취될 계기가 마련되었다.
바사 제국은 고레스가 B.C. 549년 바사와 메데를 통일함으로써 시작되어, B.C 333년경 알렉산더 대제가 바사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1차 귀환>
바사왕 고레스는 B.C. 539년 바벨론을 정복하고, B.C. 538년에 유대인의 본국 귀환을 허락하는 조서를 발표하였다. 이 조서가 히브리어로는 에스라 1:2-4에, 아람어로는 에스라 6:3-5에 남아 있다. 포로들의 집단은 다윗의 자손인 세스바살의 지도하에 귀국했는데, 그때 세스바살은 느부갓네살 왕이 솔로몬 성전에서 약탈해 갔던 그릇들을 가지고 왔다.
도착후 성전 재건 작업이 시작되어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성전 지역에 제단을 세우고 장막절을 축하하였으며, 성전 기초 공사를 끝냈다.
이때 사마리아 사람들과 다른 대적들의 방해로 이 재건 공사는 B.C. 520년까지 중단되었으나, 학개와 스가랴의 설교가 백성들 및 지도자들을 격려하여, B.C. 515년 성전 재건 작업은 완성을 보게 되었다. (스 6:15-22)
학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집이 페허가 되어 있는데 그들이 제대로 지은 집에 편안히 거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학개는 그들이 그러한 자기 중심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게도 많은 고난을 겪게 된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백성들은 모두 학개의 메시지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으며,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스가랴의 메시지의 주요 골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돌보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확신이었다.
<제2차 귀환>
유대인들은 B.C 458년 제사장 에스라의 지도하에 두번째로 예루살렘에 귀국하게 되었다. 바벨론에 있던 에스라 및 다른 유대 지도자들은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예루살렘에 돌아가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그들의 계획을 위한 경제적 지원까지 받았다.
에스라는 아하와 강에서 귀국하는 포로들을 위해 금식 기도하면서, 하나님게서 그들의 사업을 축복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스8:21)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스라는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 여인들과 잡혼하여 살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스 9:1,2)
그리하여 그는 율법을 그들 생활의 기초로 만드는 일이 자신의 주요 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지도를 받아 이방의 아내들과 이혼하였고, 그들의 자녀들을 보내 버렸다.
에스라는 귀국할 때 가져온 모세의 율법책을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에게 읽어 주었다. 에스라 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의 백성들이 되었기 때문에 흔히 에스라를 가리켜 ‘유대교의 아버지’라 부른다.
<제3차 귀환>
에스라의 2차 귀환이 있은 지 13년 후에 바벨론의 술관원으로 있던 느헤미야는 고국의 피폐상과 동족들의 고난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1: 3,4절). 고위관리로서 편안한 생활을 하던 그였지만 본국의 유대인들이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중 3차 귀환의 소명을 받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자기가 술잔 나르던 자로 섬기던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가 예루살렘에 가서 그 성벽의 보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유다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세번째 귀국은 B.C 444년경에 느헤미야의 지도로 이루어졌다. 느헤미야는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었으며, 단지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바로잡아 주었던 헌신적인 평신도 였다.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합심,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성벽과 성문의 재건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작업은 사마리아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아람 족속인 게셈이 주도하는 여러 집단의 반대 및 유대인들 내부의 문제 등으로 방해를 받았으나 결국 52일만에 마무리되었다.
본서의 중심주제는 ‘기도’, ‘지도력’, ‘회개와 부흥’ 이다.
<기도>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준비와 기도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도움을 청했다. 그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함으로써 주어진 과업을 순탄하게 이행해 나갈 수 있었다.
<지도력>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뛰어난 신앙의 소유자로서 믿음과 담력, 결단력, 치밀함, 추진력, 친화력 등 (2:17-20 ; 4:1-23), 지도자로서 필요한 모든 자질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회개와 부흥>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이자 여호와 신앙 회복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성벽 재건 사역은 이루어졌으나 백성들의 삶이 영적으로 회복될 때까지는 결코 성벽 재건의 역사적인 의미가 충족될 수 없었다. 이에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으며(8:1-8), 백성들은 양심의 악을 깨닫고(9:1-3 ; 히 10:22) 일심으로 회개의 장에 나서게 되었다. (13장)
개요
I. 예루살렘 성벽의 중건
1. 느헤미야 인도하의 3차 귀환 (1:1-2:10)
2. 성벽 중건 착수(2:11-3:32)
3. 중건 방해 공작 (4:1-6:14)
4. 성벽 완성 및 체제 정비(6:15-7:73)
II. 백성들의 부흥 운동(8:1-13:31)
율법의 해석 (8:1-18)회개 및 충성 맹약(9:1-10:39)백성들의 재정착(11:1-15:26)성벽의 봉헌(12:27-47)개혁 단행(13:1-31)
느헤미야서가 주는 중요한 교훈
2차 포로 귀환(스7:7)이 있은지 13년 후(B.C. 445년), 한동포로 부터 조국의 황폐함와 비참함의 소식을 듣고 식음을 폐하고 수일동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기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은 범죄한 민족을 대신하여 울면서 기도했던 모세(출32:31-33)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신앙인의 민족애임을 관련시켜 볼때 성도 각 개인의 신앙과 공동체의 운명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의무와 특권을 지닌자이다.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이 이민족에 의해 멸망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백성이 성전 예배와 율법에 복종하는 삶에 충실하도록 신앙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율법에 입각하여 안식일을 성수하게 했고, 이민족과의 통혼을 금했으며, 십일조를 정확히 바치게 하는 등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만이 민족의 살길이라고 여겼다.
특히 4:13-23에 내부 요동과 대적의 기습 정보를 입수한 느헤미야는 주저없이 즉각 온 회중을 소집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영육간에 재무장을 촉구함으로 전 인원의 무장화를 지시하여 언제든지 적의 침입에 대항할 수 있는 전천후 요새 체재를 갖추게 했다.
한손엔 장비를, 한손엔 병기를 잡은 채 불철주야로 수고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기도와 말씀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할 (엡6:11) 성도의 자세를 연상케 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