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3, 2018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 이진오 목사

성경은 66권은 권별로 시, 역사서, 산문, 전기, 편지글 등 다양한 문학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경전이라는 선입견으로 성경을 부담스럽게 생각해 읽지 않던 사람들도 막상 읽어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고 의외로 재밌고 유익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하는 요인 중 하나는 제목이 딱딱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권 제목을 조금 쉽게 이해하기 편한 용어로 바꾸면 좋겠다 생각됩니다. 

'창세기'는 말도 어렵지만 경상도 지방에서는 '생선의 내장'을 의미합니다. 그냥 '하나님의 천지창조' 정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도 이집트를 한자의 가차문자 표기로 애굽으로 했는데, 정작 중국인도 이집트라고 하는데 우리만 애굽이라고 합니다. '이집트 탈출기' 하면 어떨까요? '전도서'는 한 나라의 왕으로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의 인생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그러면 일단 전도하려고 한다는 선입견도 생기니 '솔로몬의 인생 고백록'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글 

마찬가지로 '잠언'은 금언, 격언 뭐 이런 뜻인데, 한자를 모르는 학생들이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잠 오는 책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의 글'이나 '인생을 사는 지혜의 책' 정도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실제 '잠언'의 원래 책 제목은 히브리어로 '미쉴레 솔로몬'으로 솔로몬의 마샬 즉, 솔로몬의 지혜, 금언, 격언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잠언'의 저자가 솔로몬만은 아닙니다. 솔로몬이 지은 내용이 상당수이지만 '지혜자들(22:17, 24:23)'이라고 통칭한 부분은 지혜의 글을 수집해 모은 것으로 보이고 야게의 아들 아굴(30장)이나 르무엘왕(31장) 등도 있습니다. 25장 1절에서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를 보면 솔로몬의 글이나 솔로몬 시대의 글을 히스기야 시대에 편집한 것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언'은 31장의 내용 안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삶의 지침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습니다. "00는 00이니 00는 00이다"라는 식으로 된 한 구절 한 구절이 그 자체로 경구이고 격언이고 교훈입니다. 크게 보면 12개의 주제를 담고 있는데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선한 것과 악한 것, 생명과 죽음 등 근본적인 것과 언어생활, 가정생활, 부와 가난, 이웃과의 관계, 성실과 게으름, 겸손과 교만 성공과 패망 등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문제, 그리고 현숙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기준이고 궁극적으로 모든 결과는 이것에 달려 있다고 제시합니다. 

오늘은 '잠언'의 기록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기록한 1장 1~9절 말씀을 통해 잠언의 궁극적 주제이고 목적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경외=두려워함 

'잠언'은 1장 1절에서 누가 이 글을 썼는지에 대해 밝히고 곧바로 왜 이 글을 썼는지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읽는 자들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지 그 목적을 1장 2~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어디에 기인하는지 그 근원을 1장 7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통해서 읽는 자들이 깨닫기 원하고 얻기 원하는 모든 것의 '근원', '근본'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일까? '경외한다'는 것의 뜻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과 존경감을 갖는 것은 모두 필요합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을 두려워만해서 그 사랑 가운데 충분히 거하지 못하고 때로 하나님을 존경하기만 해서 방자히 행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이유는 인간이 죄인이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나무 아래 숨었습니다(창 3:10). 모세는 방탕과 술에 빠져 완악하고 패역한 자를 돌로 쳐 죽여 두려워하게 하라(신 21:21)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전능하신 분이기에 죄를 미워하시고 분노하십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며 탄식하였습니다.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생각할 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고 그 두려움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경외=존경함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성과 연약한 존재라는 자각에서 오는 두려움을 통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자복하는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그의 악과 죄를 사하여 주시고(사 6:7)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노아, 아브라함과 족장들, 요셉, 오바댜, 느헤미야, 욥 등 하나님께서 사용한 사람들에 대해 성경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칭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예언하면서도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일하실 것(사 11:2~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존경하고 그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따름에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서 머물지 않고 존경함으로 나아가는 '경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방자하게 행하지만 존경함이 없으면 그 깊은 사랑을 깨달을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두려움을 넘는 존경감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친구(약 2:23)'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존경을 담은 '경외함'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 성령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제일 덕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계 19:5)'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히 5:7)'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칭함을 받았습니다. 

앎, 가치, 삶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존경하는 '경외함!', 한걸음 더 나가겠습니다.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1:7)이며 지혜의 근본(9:10)이라고 합니다.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앎', '가치', '삶'이라는 3가지 차원의 근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앎'에 대해 1장 2절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시 14:1).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외함, 즉 두려움과 존경함이 있어야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량자(삼상 2:12')들이었습니다. 어려서, 젊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면 지식과 근신함을 주십니다(1:4). 지식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신, 즉 성실하고 건전한 판단력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혜가 있는 자에게는 학식도 더해 줍니다(1:5).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공부하면 지혜도 더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면 올바른 '가치'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악을 미워하는 것'이고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일을 대적하는 것(8:13, 16:6)'이라고 말합니다. 안다는 것은 생각을 성숙하게 하고 성숙하다는 것은 옳은 판단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외함은 '삶'의 문제입니다. 안다는 것은 옳은 가치로 판단하는 것인데 이는 곧 옳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명철한 자에게 주시는 지략(1:5)으로 '공의롭게(미쉬파트, 공평)', '정의롭게(쩨다크)', '정직하게(메샤림)' 행하는 것(1:3)입니다. 경외하면 공평하고 경외하면 정의롭고 경외하면 정직해진다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인자함과 진리를 베푸는 삶(16:6)'이고 순결, 구제, 절제, 바른말, 자족, 덕을 세움, 약자를 돌봄, 충성됨, 정직 등 온전함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나열해 놓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내용입니다. 바로 신약에서 이야기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갈 5:22)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성령 충만한 것은 공평과 정의와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를 행하는 것! 그 근본, 그 힘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습니다. 그를 두려워하고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경외함을 가짐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샘(14:27), 장수(10:27), 피난처 되심(14:26), 재물과 영광과 생명(22:4), 칭찬(31:30)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위 내용은 7.10.(주) 인천 더함공동체교회 주일예배에서 이진오 목사가 설교한 것입니다. 

이진오 / 인천 더함공동체 교회 목사 

http://www.withplu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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