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과 이스마엘
이삭이 태어남으로 가장 소외 되었을 이스마엘이 오늘 이삭의 잔칫날에 이삭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 가정의 이 사건을 비유로 해서 육신과 약속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 4:22, 23)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난 자라고 말하며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약속의 아들 이삭이 누구인지도 밝힙니다.
갈라디아서4장 28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태어납니다. 인간의 힘으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이삭입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영적인 의미에서의 이삭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이삭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누구입니까?
주님을 만나기 전에 내 옛 모습들입니다. 육체로 태어난 것입니다. 내 몸의 한 부분입니다. 그냥 편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미움, 질투, 화내는 것을 위해서 특별히 노력하거나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죄는 우리의 몸의 일부처럼 우리 안에 자라나 있습니다.
참 아들인 이삭이 태어나면서 이스마엘과 이삭과 서로 갈등하는 것처럼 자기 육신의 소욕을 따라 내 맘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와 그 말씀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는 새로운 마음, 이 두 마음이 우리 안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어느 쪽이 더 우세할 것 같습니까?
갈라디아 4장 29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겉으로 볼 때에 이스마엘이 훨씬 더 큰 아이였고 어린 이삭을 가지고 놀았듯이, 겉으로 보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인간의 수고와 노력과 선행, 그리고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이론이 훨씬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까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마치 참 아들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참 아들인 이삭이 태어나면서 이스마엘은 이삭과 서로 갈등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진리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좋은 대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좋은 대로 살아가기 위해 무슨 짓을 해서든 돈을 벌어들이고 그것으로 맘대로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진리인 것처럼 생각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을 때, 내 육신의 소욕과 주관에 따라 살려고 하는 마음이 바로 옛 성품과,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려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내 안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과 자기 의, 나의 옛 사람이 나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축복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꿈틀거립니다. 그 거룩한 마음을 육신의 마음이 희롱하고 방해하고 가지고 놉니다.
이렇게 서로 두 마음이 싸울 때 해결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갈라디아서 4장 30절에 대답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사라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왜? 두 존재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을 내쫓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기에 아브라함은 그 일로 인하여 '매우 깊이 근심했다'(창 21:11)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육신의 생각과 나의 주장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하루 이틀 그런 마음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나의 생각에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그 마음을 가지고 살려합니다. 육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려고 하는 그 두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살려합니다. 이 두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살려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결단하고 내 맘속에 있는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십시오.
옛 성품, 육신적 생각, 그걸 가지고는 하나님의 약속하신바 천국을 유업으로 받아 누릴 수 없습니다. 나를 포기하고 은혜를 붙들면서 사는 성도만 승리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고민이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것'과 '내가 쟁취하려고 하는 것'사이에 두 가지 날마다 싸우기 때문 아닙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나는 택하겠습니다. 이스마엘을 몰아내고 나는 이삭만을 택하고 살겠습니다!"
이렇게 이스마엘을 쫓아낼 때, 갈등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영적인 갈등과 심령의 갈등 속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시고 우리 속에 있는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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