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의 영으로 오신 성령
/ 이종철 목사 (당당뉴스에서 펌...)
🎈아바 아버지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특징짓는 단어는 ‘아버지’입니다. 이 호칭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개역한글 판으로 검색해보면 무려 117번이나 ‘아버지’란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주님’ ‘하나님’ ‘여호와’ ‘거룩하신 분’ 등의 호칭들을 사용하고 있던데 비해서 예수님의 ‘아버지’란 호칭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고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의 친밀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며 시작합니다. 그런데 헬라 어 원문을 보면 그 순서가 다릅니다. “아버지여, 우리, 하늘에 계신”의 순서입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아버지여”를 부르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듯이 우리들 또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사실 ‘아버지여!’ 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우리 모든 기도는 응답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의 소원을 모르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녀들의 간절한 소원, 그것이 합당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당한 소원일지라도, 부모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부모이고, 사랑하는 자녀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버지’로 마칩니다. 그냥 다른 말없이 ‘아버지, 아버지’ 하고 울며 내려와도 족합니다. 기도의 응답이란 것도 ‘저분이 나의 아버지시고,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끼는 순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다가오는 순간이 기도의 절정입니다. 이 이상의 기도는 불필요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만드신 분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에는 수십조, 수백조 개의 별이 있고 지구는 별에도 들지 못하고 작은 행성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지구조차도 인간이 살기에 얼마나 광대한 땅덩어리입니까? 그런 우주를 만드신 분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구약 시대 계시된 하나님의 모습은 얼마나 거룩하고 두려운 분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그 얼굴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거룩한 그 얼굴을 본 사람은 죽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았을 뿐입니다(출33:20-23).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고 온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빛마저 바라볼 수 없어 모세가 수건을 쓰고 있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을 뵈옵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하며 절망적인 탄식을 했습니다. 그 입술을 제단 숯불로 지지고 나서야 하나님 앞에 겨우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이제 ‘아버지’라 부릅니다.
구약시대에는 심지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조차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마라”는 십계명의 제3계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성경을 읽다가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 단어를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으로 바꾸어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를 뿐만 아니라 ‘아버지’라 부릅니다.
우리 예수님은 ‘아버지’란 호칭도 성이 안 차셨던지 하나님을 ‘아바’라 부르셨습니다. 아바는 우리말로 ‘아빠’ 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 ‘엄마’란 단어가 좀체 우리 입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버님 어머님’ 하고 부르는 것이 어른답지만 친밀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감히 그럴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떻습니까?
갈라디아서 4:6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Because you are sons, God sent the Spirit of his Son into our hearts, the Spirit who calls out, "Abba, Father."
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라 부릅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건입니까? 우주를 만드신 신이 바로 우리 ‘아빠’입니다.
🎈성령님은 양자의 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요, 죄인에 불과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순간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는 양자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원래는 아들이 아니었는데 아들의 신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무명한 인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들의 믿음이나 신념입니까? 아니면 우리들의 거룩한 착각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증거하십니다.
롬 8:16절에서 말씀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이 증인입니다. 성령님을 오늘 말씀에서는 ‘양자의 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장을 찍어 놓으신 것입니다.
🎈종의 영과 양자의 영
우리는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들입니다. 롬 8: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종과 아들의 차이를 아십니까? 종의 기본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종은 잘못하면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잘 지키다가도 하나만 잘못하면 죄인으로 정죄를 받습니다. 종은 일을 하다가 실수나 잘못을 범하면 벌을 받거나 쫓겨납니다. 심할 경우는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은 실수해도 심지어 수백억을 말아 먹어도 벌을 받거나 쫓겨나지 않습니다. 단지 부모님께 미안할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그 죄는 믿기 전과는 무게가 다릅니다. 믿기 전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여전히 엄한 주인입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아버지입니까? 부모와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부모를 두려워하고 있다면 본인도 괴로울 뿐만 아니라 그 부모님도 안타까울 것입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자녀는 또한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습니다. 롬 8:17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됩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습니다. 유산은 뛰어난 종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녀된 자가 받습니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신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무엇을 상속 받습니까? 장차 이 땅 위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서 왕 같이 고귀한 존재들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또한 상속받습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함과 능력이 자라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상속의 효력은 죽은 다음에 발생하지만 이미 그 권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영향을 미칩니다. 사장님의 아들은 말단 사원의 자리에 있을망정 권세가 있습니다. 누구든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직 천국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삽니다. 미래에 주어질 것이지만 이미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롬 8:23절에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이미 장차 이루어질 것들을 성령 안에서 미리 맛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첫 열매를 먹으면서 우리는 이후 있게 될 풍성한 열매와 수확을 기대합니다.
성령님이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며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행사하실 수 있도록 하십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은 시작되었습니다.
🎈양자는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고난에도 함께 참여합니다. 롬8:17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오늘 읽은 말씀에서는 ‘함께’(헬라어로 ‘쉰’)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16절, 성령이 ‘함께’ 증거한다, 17절,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한 가족이요 한 몸이 되었습니다. 가족은 영광도 고난도 함께 누립니다.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모든 가족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것이 가족입니다. 사실 함께 고난을 당해야 권세나 영광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 함께 고난을 겪었다는 것처럼 큰 권세가 없습니다.
고난을 우리 의지로만 견뎌야 한다면 우리는 어려울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려울 때 힘주시고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우리가 낙담하여 있을 때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맛보게”(8:23) 하심으로 다시 힘을 내어 전진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유혹이 들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생각을 주십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화로운 영광입니다.
이 성령님 의지하여 매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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