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경건의 비밀”이라고 불렀다(딤전 3:16 참조).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이땅에 오신 사실은 정말 신비한 일 중에 신비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물론 인류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어 주시기 위하여서는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셔야만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대속의 죽음 못지 않게 중요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신가를 온 우주 앞에 보여 주시는 일이었다. 그렇다. 이 지구 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즉 천사들에게도 보여 주시는 일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품성을 천사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 어폐가 있는 것 처럼 들리지마는, 이 일은 하나님의 왕국이 영원히 평안하고 안전하게 되기 위하여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죄는 이 지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죄는 인간이 시작한 것도 아니다. 죄는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그 죄의 시작은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루스벨은 반역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정부를 파괴하려 하였다. 그는 힘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은근히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시키는 말을 퍼뜨리면서 그의 음모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 대하여 퍼뜨린 오해는 참으로 큰 상처였다. 이왕 생긴 오해는 그 소문을 들은 자의 마음 속에서 힘있게 작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참된 성품을 나타내어 보여 주는 일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말이나 가르침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건이 생겨야 하는 것이다. 그 즈음에 이 지구가 마귀의 반역 운동에 휘말려 들게 되고 드디어는 인류의 시조가 죄를 지어 타락하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께는 엎친데 뒷친 격으로 비상 사태 위에 또 다른 비상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구속하시는 일을 시작하시면서 동시에, 이 지구를 온 우주에게 하나님의 참되신 성품과 사단의 진정한 모습을 폭로하는 장소로 삼으신 것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께서 동시에 그의 지상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과연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귀한 기회로 삼으신 것이었다. 성육신의 의미는 너무나 깊고 넓어서 우리가 구원받아 하늘에 올라간 후에도 계속 연구해 나가야 할 주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신 그 형벌을 치루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어 오셨다. 또한 33년 반 동안 이 지구에 사시는 동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간에게 자세하게 보여 주셨다. 또한 천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과연 어떠한 속성과 품성을 가지고 계신지를 보여 주셨다. 마귀의 공격과 계략들을 받으시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은 우주의 천사들에게 놀라운 계시가 아닐 수가 없었다. “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정말 저렇게 사랑과 공의가 충만하신 분이시구나!” 라고 그들은 소리쳤을 것이다.
그러한 동시에 온 하늘은 마귀가 얼마나 간악한 존재인가 하는것을 실재로 보게 된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향하여 퍼뜨린 오해와 고소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온 하늘이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하늘에서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생기게 된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 인류를 구속하였을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죄로부터 영원히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감사하고 찬양할 일인가!
그런데 예수님의 성육신이 이루어 놓은 또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죄에 빠진 인류들에게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소망을 준 사실이다. 죄의 용서와 구원은 물론이고, 죄인이 이 세상에 살고 있을 동안에도, 마귀에게 잡혀서 종노릇 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사단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셔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신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주께서 말씀해 주시었다(요 16:33; 요일 5:3,4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 뿐만이 아니라 죄에 노예된 사슬을 끊고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렇게 질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왔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그 육신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육체와는 다른 육신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께서 가지고 태어 나신 그 육신은, 우리와 한결같이 같은 시험을 받게 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육체, 즉 인간과 같은 육신을 가지고 오셨다고 선포하고 있다(히 2:9-18 참조).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죄와 마귀를 이기고 승리 할 수 있다는 힘있는 논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의 구원과 용서를 상징하고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새 생명으로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 처럼 예수의 생애는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사실과 또 더 나아가서 어떠한 육신을 가지고 오셨는 지를 연구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와 하나님을 묶는 황금고리와 같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새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천연계는 완전하였었다. 거기에는 아무런 부조화의 그림자가 없었다. 말 그대로 완전한 아름다움의 조화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리고 온 갖 종류의 식물들로 가득 채우셨다. 그 사이 사이로 흐르는 물들은 온 누리를 적당히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소리내며 나는 각종 새들로 채우시고 무늬들로 수 놓는 구름들로 채색하시었다. 비록 이 지구가 타락하였지마는 이직도 그 아름다움이 어느정도 남아 있어서 보는 이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할 진대, 이 지구가 그 본래의 상태대로 회복할 때에 그 아름다움이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계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기적인 존재로 변해 버렸고, 타락한 인간 밑에서 땅이 황폐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죄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지으신 것을 망쳐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법칙은 사랑의 법칙이다. 이 법칙이 죄로 인하여 깨어져 버렸다. 죄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데서 시작되었다. 덮는 그룹이었던 루스벨은 하늘에서 첫째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천사들로 하여금 창조주로 부터 떠나게 하려고 하나님을 모함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의 악한 속성을 하나님께 뒤집어 씌웠다. 그는 천사들과 사람들을 속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독재자라고.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불신하게 하였다. 사단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는 이렇게 하여 천사들의 3분의 1과 지구의 인간들을 이끌어 자기와 연합하게 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비애의 밤이 이 세상을 내려 덮게 되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의 어두움으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이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사단의 기만의 세력이 깨뜨려져야 하였다. 이것은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 배치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면 피조물들이 그 분을 사랑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이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우주에서 단 한 분 밖에 없으니,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의 아들만이 참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실 수가 있었다. 밤같이 어두워진 세상에 치료하는 광선이 떠 올라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이다.
구속의 계획은 타락한 이후에 세워진 사후 계획이 아니었다. 이 계획은 영원전 부터 감취었다가 알게 하신 비밀의 계시였다(롬 16:25 참조). 예수의 오심은 자발적인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머눌러 계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께서는 하늘의 보좌에서 내려 오셨다. 그리고 어두운 이 세상까지 내려 오시었다. 우리의 마음의 보좌에 앉기 위해서 그 머나먼 길을 오셨다. 이것이 성육신의 사랑이다.
(출처:SOSTV.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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