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6, 2016

달란트 비유에 대한 오해 / 김곤주 목사

달란트 비유에 대한 오해

아마도 오늘날 많이 듣는  설교 내용 중 하나이거나 혹은 신자들이 흔히 하는 대화 내용중 하나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달란트 비유는 대부분 ‘재능을 절 활용하라’는 의미로 이해하거나 혹은 ‘받은 직분과 주어진 일에 충성하라’는 의미로 많이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달란트 비유는 재능을 살려서 이익을 남기라는 비유나 혹은 맡은일에 충성하라는 것이 비유의 중심 내용은 아닙니다.

이 내용은 ‘종말론적인 삶을 살라’는 예수님의 종말론적 강화(이야기) 설교입니다. 다시말하면, 이 말씀은 마태복음 24장1절에서 25장46절까지 이어지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종말의 심판을 대비하는 종말론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중심내용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쉽도록 마태복음 25장14-33절 본문 이야기를 조금만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 나라로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각각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더 남겨서 가지고 왔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두 달란트의 이익을 더 남겨서 주인에게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 줍니다. 그러자 그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크게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비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 25: 31-33).

무슨 말입니까? 결국 이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때  이루어질 심판의 비유 즉 종말론적 강화(이야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내용은 종말의 구원이 행위와 관계가 있다는 말일까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25장 34-45절의 두번째 비유 내용도 살펴보면 같은 의미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고 병들었을 때나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나서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거나 병들었을 때나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임금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같은 내용의 반대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임금이 말하기를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은 이 비유에 대한 결론으로서 이렇게 결론을 말씀합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25: 36). 이처럼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이 두 비유와 이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을 보면 분명히 종말에 이루어질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굉장히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 내용을 보면  마치 선행(착한 일)을 해야 천국에 간다는 말씀처럼 보입니다.‘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는 수많은 성경말씀과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저자 마태가 앞에 나오는 마태복음 7장 12-23절에서도 강조하듯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신자의 종말론적인 삶이 어떠해야 한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선행을 해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진짜 구원받은 참 신자라면 적어도 그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으로 그리고 착한 행실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가 강조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의미이고 제자도의 정신입니다.이것이 진짜 구원받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세상 재미에 붙들려서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진짜 구원받은 믿음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진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행위로 나타나야 하고, 그것은 결국 최후 심판에 가서야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왜 달란트 비유가 늘 충성이나 재능을 말하는데 쓰여질까요? 물론 내용의 핵심주제는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면에서 적용해 볼수는 있을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 좀더 베풀고 나누어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보이신 삶의 모습을 닮아가라. 내 원수가 주릴때에는 베풀어주고 내 몫을 나눠주는 수준이 이르기까지 조금씩 사랑을 실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때까지 늘 깨어서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라… .”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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