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8, 2017

하나님의 속성(한국강해설교연구원)

1. 영(靈)이심

첫째로,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을 만드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신 것은 그의 영성(靈性)을 잘 증거한다. 우상숭배는 성경에서 가장 큰 악이다. 요한복음 4:24에서, 예수께서도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증거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우선 그가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으며 물질적 존재가 아니심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24:39에서 '영은 살과 뼈가 없다'고 증거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는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으며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존재도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또한 그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8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증거했고, 로마서 1:20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 . . "라고 말씀했다. 골로새서 1:15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디모데전서 1:17은 "보이지 아니하는 자", 그리고 디모데전서 6:16은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라고 말씀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의 제2계명은 하나님의 이 불가견적(不可見的) 영성에 근거한다.

물론, 성경에 하나님의 손(출 3:20), 하나님의 팔(출 6:6), 하나님의 귀와 눈(사 37:17) 등의 표현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런 표현들은 하나님의 속성들과 능력들과 활동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형상화(形象化)하는 자들은, 이 표현들을 오해한 자들이요,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명백한 성경 진리에서 탈선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신다고 주장했던, 17세기의 스위든볼그(Swedenborg) 같은 신비주의자들이나 오늘날의 몰몬교도 같은 이들은 다 잘못이다.

성경에 때때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표현한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하였다(창 18장, 창 32장). 출애굽기 24:9, 10, "모세와 아론과 . . .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러나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사나 사람의 형상으로 낮추어 계시하신 모습 곧 그의 영광의 단면을 보았다는 의미이다.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표현도(마 5:8),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단면을, 보다 밝아진 영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요, 하나님의 무한하신 영의 본질을 본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유한(有限)한 인간은 무한(無限)하신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또한 그가 살아계신 분이심을 내포한다. 하나님은 생명 없는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고 살아계신 영이시다. 그것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모든 우상들과 하나님의 다른 점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10:10은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라고 증거하였다. 디모데전서 6:16도 "오직 그[하나님]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라고 말씀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며 생명 자체이시다.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팔, 하나님의 귀와 눈 등의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활동하심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 특별히 그가 인격적 존재이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시지만, 동시에 인격적 존재이시다. 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이심을 말한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감정을 가지시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하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2:4, 5은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라고 말씀했다. 에베소서 1:11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라고 말씀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들은 그의 인격성의 한 증거이다. 또한, 인격적 하나님이신 그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신다.

2. 무한(無限)하심

둘째로, 하나님은 무한(無限)하시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그의 존재와 그의 속성들에 적용된다. 우선, 하나님은 그의 존재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시편 145:3은 "여호와는 광대하시니[크시니] 그의 광대하심[크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키, 하나님의 가슴둘레, 하나님의 몸무게가 얼마이겠는가? 누가 하나님을 측량할 수 있겠는가? 솔로몬을 말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殿)이오리이까?"고 하였다(왕상 8:27). 이사야 66:1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라고 증거하였다. 예레미야 23:24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했고, 시편 139편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고 말씀했다(7-10절).

하나님의 무한성은 공간적 무한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들의 총화(總和)가 아니고 그 이상이다. 그것은 모든 공간적 제한성을 초월하심과 동시에 모든 공간의 각 부분에 현존(現存)하시는 성질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유한성 즉 공간적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초월적 방식으로 모든 공간에 충만하시다(Turretin, Berkhof, 박형룡). 그는 초월자로서 안계신 곳이 없으시며(無所不在) 어디에나 계신다(遍在, omnipresent).

물론 그를 단순히 만물의 총화(總和)와 동일시 하는 소위 범신론(汎神論, Pantheism)은 잘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존재에 있어서가 아니고 단지 지식이나 능력에 있어서만 모든 곳에 존재하신다고 생각하는 소위 자연신론(Deism)이나 소시너스주의(Socinianism)도 또한 잘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성과 편재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표현하였다. 모세는 신명기 26:15에서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下鑑)하시고"라고 표현하였다. 솔로몬은 열왕기상 8:30에서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라고 말했다. 역대하 30:27은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고 말씀했다. 예수께서도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마 6:9).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므로, 때때로 성경은 그가 세상에 내려 오셨다고 표현하였다(창 11:5). 또 에녹과 엘리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주 예수 자신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그의 특별한 영광을 나타내시는 한 처소를 두셨다는 것을 증거한다. 성경에서 '하늘'이 장소적 의미가 없이 단지 하나님의 초월성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경에 자세히 증거된 엘리야나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하늘 위로의 장소적 이동은 무의미할 것이다(왕하 2:11; 행 1:9-11).

하나님은 또한 그의 모든 속성들에 있어서도 무한하시다. 그것은 그의 완전성(完全性)이라고도 표현될 수 있다. 그는 지혜와 지식과, 능력, 거룩과 의, 선에 있어서 무한하시다. 즉 그는 완전자이시다. 그는 완전충족하셔서 어떤 점에서도 부족이 없으시다. 그의 완전성은 곧 그의 영광이다. 그는 빛 가운데, 영광 중에 거하시며 피조물들에게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엄위하시다. 그는 하늘과 땅에서 인생이 유일하게 영원히 사모할 만한 분이시다(시 73:2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2은 하나님의 완전성 혹은 완전충족성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 안에 그리고 그 자신으로부터 모든 생명과 영광과 선과 행복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홀로 그 자신 안에서 그리고 그 자신을 향해 완전충족하셔서, 그가 만드신 어떤 피조물들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 그것들로부터 아무런 영광도 끌어내지 않으시며, 오직 그 자신의 영광을 그것들 안에, 그것들에 의해, 그것들을 향해, 그리고 그것들 위에 나타내실 뿐이다. 그는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모든 것들은 그로부터,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는 그것들 위에 지극히 주권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계셔서 그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의해, 그것들을 위해, 혹은 그것들 위에 행하신다."

3. 영원하심

셋째로,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앞에서 생각한 하나님의 무한성은 시간적으로는 영원성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고 영원 후까지 계신다. 창세기 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맨처음에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음을 보이는 동시에, 또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은 영원하심을 증거한다. 창조 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는 영원하시다. 욥기 36:26은 "하나님은 크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느니라"고 표현했다. 시편 90:2은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고 말씀했다.

시간은 창조로부터 시작되었고 창조 세계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간 속에 속한 분이 아니시고 시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는 창조 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래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실 수 있는 초시간적이며 비시간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시편 90:4은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고 말씀했다. 그는 어떤 이의 표현과 같이 '영원한 현재'이시다. 엄격히 말한다면, 그에게는 전(前)도 후(後)도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촬스 핫지는 말하기를, "그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별이 없고, 모든 것이 그에게 동등으로 또는 항상 현재이다. 그에게 '기간'(duration, 시간 흐름의 과정)은 영원한 현재이다"고 하였다(Charles Hodge, I, p. 385).

영원성은, 시간적 시작을 부정하는 개념이므로, 또한 '영원자존성'(永遠自存性)을 포함한다. 그것은 또한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절대성'이라고도 표현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제1 원인 혹은 궁극적 원인이시며, 또한 자신의 존재의 근거가 자신 이외에 없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원인이시다. 사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 아니실 수 없다. 또한, '여호와'(예호와 혹은 야훼)라는 그의 이름도 그의 영원자존성을 나타낸다. 이 말은, '이다, 있다'는 뜻의 히브리어 기본 동사(하야의 고어형[古語形] 하와의 칼[단순형] 미완료 3인칭 단수)에서 나왔고 그 의미는 출애굽기 3:13, 14의 말씀대로 '그가 (스스로) 계신다'는 뜻일 것이다.

4. 불변하심

넷째로, 하나님은 불변하시다.

시편 102:27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라고 말씀했는데, '여상(如常)하시다'는 말은 '동일하시다'(the same)는 뜻이다. 말라기 3:6은, "나 여호와는 변역지[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다. 또, 야고보서 1:17에는, "그는[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비(非)활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항상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5:17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의 활동들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은 그의 본질과 속성들의 불변성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의 의지[뜻]와 계획과 작정의 불변성을 의미한다. 시편 33:11은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고 증거했다. 또, 이사야 14:24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말씀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뜻하신 바를 변경함이 없이 다 성취하신다.

성경에 때때로 '하나님께서 뉘우치신다, 후회하신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예들 들어, 출애굽기 32:14에 보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말씀했고, 사무엘하 24:16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말씀했다. 요나 3:10은, "하나님이 그들[니느웨 사람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말씀했다. 이런 표현들은 인간편에서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신인동형동성적(神人同形同性的) 표현들로서 하나님의 불변성과 충돌되지 않는다.

무한,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철학적, 종교적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시다. 그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대답이시다. 인간은 모든 문제의 대답이 되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 영원자존자이신 그 안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만, 참된 안식과 안정을 찾을 수 있다.

5. 지혜로우심

다섯째로, 하나님은 지혜로우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크심은 그의 창조하신 만물에 잘 증거되어 있다. 성경도 그의 크신 지혜와 지식을 밝히 증거한다. 욥은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면서(욥 12:13), 하나님을 '지혜(데임, 지식)가 온전하신 자'라고 표현하였다(욥 37:16). 시편 139:1, 2은,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라고 고백했다. 한나는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고 기도했다(삼상 2:3). 예수께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심을 증거하셨다(마 10:30). 또, 히브리서는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증거했다(히 4:13).

지식은 대상에 대한 지적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지식의 대상은 현실적인 것 뿐만 아니라, 또한 가능적인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지식은 모든 지식의 원형(原形)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지식은 직각적이며 독립적이고 총괄적이며 동시적이며 개별적이며 명확하고 완전하며 불변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람의 지식은 점진적이며 의존적이고 부분적이며 제한적이며 불명확하고 불완전하며 가변적이다. 하나님의 지식의 범위가 전포괄적(全包括的)이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보통 전지(全知, omniscience)라고 불리운다.

지식과 구별하여, 지혜는 지식을 응용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지식을 응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셔서 최선의 목적을 이루시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11:33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증거했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인간이 그를 속이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인간은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솔직해야 한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완전하심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고 그를 의지하며 그의 인도하심과 다스리심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6. 능력이 있으심

여섯째로,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시다. 구약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말들(엘, 엘로힘)은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나타낸다. 그 말들은 '강하다'는 말(울)에서 나왔다고 본다. 하나님은 위엄과 능력이 있으시고 그의 능력은 전능(全能, omnipotence)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능자'(샤다이) 혹은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 창 17:1)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은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심을 증거한다. 창세기 18:14은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욥은, "주께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며"라고 고백했다(욥 42:2). 예레미야는,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고 고백했다(렘 32:17). 누가복음 1:37은,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이니라]"고 증거했다.

하나님의 전능(全能)은 측량할 수 없는 무제한적 능력이지만, 그는 그의 뜻 가운데 스스로 전능의 사용을 제한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기적은 항상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성질에 모순된 일들을 행할 수 없으시다. 예를 들어, 그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범죄하실 수 없고, 변하실 수 없고, 죽으실 수 없다. 바울은 말하기를,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했다(딤후 2:13).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變改)함이 없으시니"라고 증거했다(삼상 15:29). 또 바울은 디모데전서 6:16에서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그의 인격성과 연합하여 그의 주권성(主權性)으로 나타난다. 그는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무엇을 행하실 수 있고 또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주권적이시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구원 문제에 관계하여,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증거하셨다(마 19:26). 주권성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주'(아도나이)이다(창 15:2). 이 말은 '재판하다, 통치하다'는 뜻을 가진 말(둔)에서 나왔다. 신명기 10:17은,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라고 말씀했다. 역대상 29:11은,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主權)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 . .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라고 말씀했고, 역대하 20:6은,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믿는 자는 어떤 처지, 어떤 환경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망치 않고 그에게 기도하며 모든 일을 맡기고 잠잠히 그만을 바라 볼 수 있다. 그에게는 우주와 인생의 모든 문제들의 열쇠가 있다.

7. 거룩하심

일곱째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모세는, 출애굽기 15:11에서,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라고 고백했다. '거룩하다'는 히브리어(카도쉬)는 '분리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모든 피조 세계와 분리되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 존재적 엄위성은 모든 피조물의 찬송과 경배의 이유가 된다. 시편 22:3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고 고백했다. 이사야 6:3은, 천사들이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증거하였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또한 모든 피조물의 죄악과 불결로부터 떠나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 도덕적 우월성은 인간들의 도덕적 의무의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1:45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말씀하셨다. 도덕적 의미에서의 거룩은 의(義)와 비슷하다.

8. 의로우심

여덟째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고 증거했고(스 9:15), 시편 145:17은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라고 고백했다. '의'라는 히브리어(차디크, 체데크, 체다카)는 본래 '어떤 기준에 맞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며, 자신의 도덕적 완전성에 항상 일치하는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의의 속성은 그가 제정하신 도덕법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법에 일치한 인격자가 될 때, 그는 의로운 자로 불리운다. 모세는, 신명기 6:25에서, "우리가 그[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지극히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또한 피조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지극히 의로우시다. 그는 피조물들을 다스리시고 그들의 행위들을 판단하심에 있어서 의로우시다. 이것을 '통치적 의'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의로운 통치자시며 의로운 재판장이시다. 디모데후서 4:8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라고 불렀다. 시편 9:8은, "[여호와께서]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그가 선한 자에게 상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데서도 나타난다. 선한 자에게 상을 주시는 '보상적 의'와,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형벌적 의'를 모두 '보응적 의'라고 부른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2:5-8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 . .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않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했다.

특히,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시는 형벌적 의의 속성은 복음진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필수적으로 중요한 사실이다. 하나님께 이러한 공의의 속성이 없으셨다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반드시 필요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로우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증거하였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형벌적 공의의 속성을 부정하지만, 성경은 매우 분명히 이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땅은 그들로 인해 저주를 받았고 그들은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창 6-8장)이나 그 후 악하고 음란했던 소돔 고모라성의 유황불 심판(창 19장)은 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었다. 이 외에도, 성경의 많은 말씀들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의 형벌을 가르치고 있다. 그 대표적 몇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시편 7: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예레미야 30:23, 24, "보라,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예레미야 애가 2:1- 4,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 . . 진노하신 날에 . . . 노하사 . . . 맹렬한 진노로 . . . 처녀 시온의 장막에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나훔 1:2, 6,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 . . .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9. 선하심

아홉째로, 하나님은 선하시다. 시편 106:1은,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말씀했다. '선(善)하다'는 개념은 '이상(理想)에 맞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이상에 완전히 부합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철학자들이 표현했던 대로, '최고 선'(最高善)이시며 모든 선의 원천이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사랑, 은혜, 인자(仁慈)와 긍휼, 오래 참으심 등으로 표현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성적 피조물인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모두 선하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신다'고 표현하셨다(마 5:4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의미로 그의 택한 자들을 사랑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인들의 구원에서 나타난 그의 사랑이다.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했다.

하나님의 은혜(히브리어 켄, 헬라어 카리스)란, 받을 권리가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속적(救贖的)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은, 로마서 3:24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에베소서 2:8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하였다.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긍휼(히브리어 케세드와 라캄, 헬라어 엘레오스)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형벌과 고통 중에 있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친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천대까지 은혜(케세드)를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6). 또 그는, 출애굽기 34:6에서, 자신을 '자비롭고(라캄)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케세드)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셨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레크 아프)은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악인들과 불순종자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 출애굽기 34:6에서, 그는 자신을 '노하기를 더디하는' 하나님으로 증거하셨다. 바울은, 로마서 2:4에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물들에 대해서도 선을 베푸심을 의미한다. 시편 145:9, 15은 증거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만유[모든 생물들]를 선대(善待)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 . . 중생(衆生, 모든 것들)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라고 하였다.

10. 진실하심

열째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시편 36:5은,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라고 고백했다(시 57:10; 108:4도 비슷한 말씀임). 시편 89:14은,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고 말씀했다. 시편 92:2은,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고 했다. 바울은, 로마서 3:4에서,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라고 증거했다. 심지어 이방 선지자 발람도,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거짓말하지] 않으신다'고 말했다(민 23:19).

진실이란, 이름과 실질, 속과 겉, 말과 행위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름 그대로 참되신 하나님, 곧 참되고 완전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시다. 그는 그의 중심과 외적 표현, 그의 말과 행위가 항상 동일하시다. 그는 문자 그대로 참되시다. 그에게는 어떤 거짓도 없으시다. 또한 그는 그의 약속에 대하여 성실하시며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서의 신실함은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의 근거요 기쁨의 원인이다. 모세는, 신명기 7:9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는 . . . 신실한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라고 말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13에서, "우리는 미쁨[신실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항상 신실하시니]"라고 말했다. 히브리서 10:23은,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교훈하였다.

이와 같이, 영(靈)이심, 무한하심, 영원하심, 불변하심, 지혜로우심, 능력이 있으심, 거룩하심, 의로우심, 선하심, 진실하심 등 열 가지의 속성들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돌려진 속성들이다. 이 열 가지 중, 무한하심, 영원하심, 불변하심 등 세 가지는 하나님께만 있는 속성들이다. 이것을 흔히 하나님의 '비공유적(非共有的)' 속성들이라고 부른다. 나머지 일곱 가지의 속성들, 다시 말해, 영이심, 지혜로우심, 능력이 있으심, 거룩하심, 의로우심, 선하심, 진실하심 등의 속성들은 피조물들에게도 어느 정도 나누어 주신 속성들이다. 이것을 흔히 하나님의 '공유적(共有的)' 속성들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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