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21, 2018

여자들은 머리에 천(수건)을 두르고 예배해야 하나요?

❇️성경대로 여자들은 머리에 천을 두르고 예배해야 하나요?

Q : 고린도전서 11장을 읽다가 의문이 생겼는데요.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라고 했는데요. 말씀대로라면 정말 무슬림들이 쓰는 너울 같은 걸 써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왜 기독교인들은 쓰지 않나요? 그리고 대체 왜 머리에 쓰라고 하는 건지 알려주세요.

A : 결론을 미리 말씀하자면, 오늘날에는 반드시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수건 같은 것을 쓰고 기도하고 예배드릴 필요는 없어요. 물론,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말을 그대로 따라야 했지요. 그럼 왜 고린도에서는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써야 했을까요? 그리고 오늘 우리는 왜 그럴 필요가 없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성경을 해석하는 기본 원리를 알아야 해요.

성경은 여러 저자들이 자신의 감정, 지식 등을 바탕으로 당대의 사람들이 갖는 지식, 관습, 문화를 고려하여 기록하였어요. 성령께서 저자의 심리적, 지적인 상태는 물론 당시의 환경을 고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던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저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한 저자가 어떤 환경과 문화에 속한 사람을 대상으로 기록하였는지도 상세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근본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어요. 그리고 수천 년 지난 우리에게도 올바르게 적용시킬 수 있지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왜 고린도 교회의 여자 성도들에게 수건 같은 것을 써야 한다고 했는지 그 문화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어요.

당시 유대에서는 자기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였거나 혹은 그랬을 것이라고 의심을 받게 된 여인이 있으면 제사장이 머리를 풀게 하였어요(민 5:18). 일종의 부정한 여인이라는 표시를 한 것이죠. 따라서 유대인들은 머리를 풀어헤친, 즉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덮지 아니한 여인이 있으면 간음한 여인이거나 간음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여인일 거라고 생각했죠.

또한, 고린도라는 곳에서는 아프로디테와 같은 여신을 숭배하기로 유명한데요. 그 사람들은 성적인 것을 중요한 의식의 하나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성전에는 창녀들이 여자 제사장으로 많이 활동했다고 해요. 당연히 고린도는 성적으로 많이 개방되었을 거예요. 그러니 고린도 지역에는 창녀가 많았을 테죠. 그런데 창녀들은 머리를 밀거나 짧게 깎고 대중 앞에 나갔다고 하네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보통 여인과 다른 외모를 보이려고 했었죠. 당시 정상적인 여인들은 모두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던 것과 대비되지요. 실제로 당시의 유물, 특히 도자기에는 머리를 천으로 두른 고린도 여인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따라서 바울은 당시 보통 정숙한 여인들이 머리에 천 같은 것을 두르고 외출하듯이 교회 안에서도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써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만약, 교회에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아무 것으로도 덮지 않고 교회 사역을 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교회에도 역시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여신 숭배 의식과 같은 예배가 있는가보다’라고 오해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여인들을 보고 ‘저들도 무슨 여자 제사장으로서 창녀와 같은 역할을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위와 같은 이유가 아니라면, 당시 여자들이 교회에서는 상당한 활동을 할 수 있었으므로 자신을 너무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하다 보니, 남자들처럼 자기들도 머리에 두른 천을 벗어버리고 교회 활동을 했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바울은 그런 것들을 경계해서 여자들의 머리가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 하면서 자신의 머리 모양을 별나게 드러내어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죠.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진다는 이유에서 말이에요. (물론 남자는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이든 어떤 것으로든 머리를 가리지 말라고 했지요. 이는 아마도 남자가 교회 예배의 공식 순서를 맡을 때 머리에 무언가 쓰고 자신의 권위를 드러낼까 경고하는 말일 거예요.)

하여튼 바울은 여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당시 보통 여인들이 쓰던 수건 같은 것을 벗어 버리고 머리 모양을 드러내면 이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창녀로 오해를 받거나, 아니면 부정한 여인이라고 소문나서 그 남편에게는 수치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거예요. 따라서 당시의 ‘문화’ 혹은 ‘관습’을 따라 행동하라고 말한 것이지요. 교회를 보호할 수 있게 한다면 당대의 ‘유전’ 혹은 ‘전통’을(바울은 이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11장 3절에서 유전[파라도시스 곧 전통을 말함]을 지키는 것을 언급하였음을 주의한다면, 여자의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두르는 것은 ‘유전’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음) 지킬 것을 말했습니다. 따라서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쓰고 기도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시의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에요.

즉, 여자들이 교회에서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쓰라는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다른 나라, 예를 들어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는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 두르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니 한국 여자 성도들에게 수건을 써라, 말라 하는 말은 불필요한 것이지요. 따라서 고린도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여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을 고린도와는 전혀 다른 문화에 사는 우리에게 적용할 수가 없는 거예요.

물론, 중동의 히잡(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이나 차도르(머리에서 발목까지 검은 천으로 뒤집어쓴 것)를 한 여인들이 사는 곳에 교회를 세운다면, 고린도교회 여자 성도들처럼 머리에 수건 같은 것으로 가리게 해야할 거예요. 왜냐하면 중동의 문화에서는 여자들이 머리를 드러내는 것이 요즈음 서울 길거리에 노출이 심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기 때문이에요. 남자에게 성욕을 유발시킨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따라서 여자가 머리에 수건 같은 것 두르는 문제는 문화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할 문제에요. 그런데 만일 어떤 나라든 고린도교회의 여인들처럼 그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에요.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렇고요, 요즈음은 이단으로 규정된 안상홍진흥회(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여자들이 교회에서는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둘러야 한다고 해요. 성경을 문자대로 적용해서 그런 것이죠. 그것은 성경 해석의 기본 원리를 모르는 데에서 나온 잘못된 적용이라 할 수 있어요. 말씀을 적용할 때 중요한 것은 특정한 문화에서 왜 그러한 말씀이 주어졌는지 하나님의 근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각 문화에 맞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우리에게 명하고 계신 걸까요?

머리에 수건 두르고 안 두르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첫째로는, 교회에 나오는 여자들은(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지만, 여기서는 특히 여자들은) 세상에서도 정숙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차림의 외모를 가지고 나아와서 영적인 사역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술집 여자 종업원처럼 노출이 심하고 화장이 짙은 차림으로 교회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교회에서 예배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성도들은 얼마나 자기 외모에 신경 써야 하는지를 이 구절에서 알 수 있어요.

둘째로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자기를 드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영적인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여자가 자기 머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기의 영적 능력을 과시하려는 욕심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우리의 궁극적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따라서 교회에서는 누구든(고린도 교회에게는 여자들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됨) 자신을 드러내려는 행동이나 옷차림을 조심해야 해요. 교황이나, 문선명이 화려한 모자를 써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그 나쁜 실례라 하겠지요.

요약하면, 오늘날 한국의 여자 성도들은 머리에 수건 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메시지는 여자들은 교회에서 영적인 사역을 할 때 정숙한 차림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남녀 모두 교회에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행동이나 옷차림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글/ 권문상 교수(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교대학원)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