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alms, the Church, and the Worship of God / 시편, 교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
3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편이 - 하나님을 사랑하는 - 믿음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적 영향력의 중심에 서 있었음과 동시에, 이 시들이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헌신과 공동체의 예배에서 공통적인 핵심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과장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오직 우리가 속한 현대 사회에서만이 시편의 역사적 명성이 빛을 잃은 듯 보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교회는 시편을 사용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그 안에서 잃어버린 예술과 시의 기쁨을 찾는다.
스코티쉬(Scottish) 교수의 시편 주석 중 한 권에는 그가 성장하는 동안 예배 시간에 시편이 계속해서 사용되었음을 보았다는 말이 나온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말한다:
주일에 남자 아이들이 킬트(Kilt: 고지대에 사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입는 세로 주름의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 스코틀랜드의 관습이었다. 그날 나는 시편 147편 10절의 말씀으로 찬양을 한 것이 떠오른다. 물론 그것은 기도 책자(The Prayer Book Version)에 나온 말씀이었다.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렇게 찬양하며 나는 킬트가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역주: 귀여운 아이들에게 짧은 치마를 입혀 다리를 드러나게 하여 예배드리는 모습을, 하나님께선 사람의 다리를 보고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에 비추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선 안된다는 내용).
147편 10절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다리와 유사한 말(Horses)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 나온다.
나는 시편과 진실한 만남을 가져보지 못했거나, 시편의 아름다움(Beauty)이나 영적인 것에 대해 과소평가 하는 사람은 시편을 사랑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물론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원리다. 안타깝게도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의 많은 성도가 시편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편의 흐름을 잡아낼만한 자기 자신만의 레이더(Radar)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단순히 어깨를 으쓱할만한 일이 아니라 이상의 대단한 무언가다. 바울은 교회와 자신의 집, 교외의 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음악에 대해서 말할 때, 자기 자신을 시편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시(시편)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세 종류의 음악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적으로 살필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시편’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그들의 히브리어 성경의 시편을 통해 노래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그들에게는 옛 언약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취된 것을 본 것보다, 시편으로 찬양하는 것이 더 즐거웠을 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즐거움에 있어서 말이다.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무엇이 이 오래된 시들로 하여금 성경의 중심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만들었을까? 왜 시편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일까?
바로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시편에 관심 갖고 지켜봐야 한다. 특히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
✔영감(Inspired)
첫째,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감 되었다.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시 147:19)
수없이 많은 성가, 종교 음악, 찬송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때부터 기록된 찬미의 노래들이 있는데 –사실 너무 많은 음악 장르가 있다- 그 모두가 영적이고 분명한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찬양들은 우리에게 직접 말하고 우리를 관통하며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시편만이(그리고 다른 성경적인 음악과 찬양들만이) 하나님의 영 안에서 말해질 수 있다. 그렇게 성령 안에 있는 남녀의 노래야말로 성경의 언어로 이야기하듯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이 사실은 그저 많은 믿음의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시편은 모든 영적 노래 가사들보다 더욱 영감으로서 불려지는 노래이다.
✔실재(real)
둘째, 시편 안에는 가장 높은 곳을 향한 하나님의 백성의 열망과 소원뿐만 아니라, 가장 낮을 곳에 깔려 있는 고통과 고독, 허무함에 대한 감정들이 평행선을 그리며 나타나 있다. 이런 표현 양식은 히브리 시의 특징이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 119:81)
시편은 거룩한 단념(divine abandonment)과 영적 환희(spiritual exaltedness)의 감정 모두를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시편은 모든 음악의 양식들 위에 실재하고 있다.
✔영향력(pervasive)
셋째, 시편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곡되었다. 처음으로 성서에 시편을 기록한 사람은 모세인데(시 90편), 그는 주전 15세기 중반에 이 시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벨로 포로기를 마치고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던 주전 5세기에도 시편이 기록되었다(시 147편).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 90:1)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예루살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시 147:2)
나아가 우리는 시편을 제외한 나머지 성경의 많은 이야기를 근거하여 시편이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몇 몇의 예를 들어보자면, ‘처음 기록된 시편’은 출애굽기 15장에 묘사된 홍해에서의 승전가(the Victory Song of the Sea), 사무엘상 4장에 묘사된 한나의 노래, 사사기 5장에 묘사된 드보라의 노래, 요나서 2장에 묘사된 요나의 노래, 하박국 3장에 묘사된 하박국의 노래, 이사야 12장에 기록된 천 년의 노래(the Psalm of the Millennium)이다.
시편은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between the Testament)에 유대 시인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사해 사본(쿰란 문서) 사이에서 발견된 문서를 통해 시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입증 되었다. 신약성서 역시 히브리 시의 형식을 따르는 시편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성모의 노래(the Magnificat of Mary)와 요한계시록(특별히 4장과 5장을 보라)에 묘사된 예배의 모습은 시편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에 묘사된 시편의 형식은 다른 말씀들의 형성에 있어서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예술성(artful)
넷째, 시편은 사랑스러운 예술로써 표현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 3:3)
분명히 시편은 은혜로움과 아름답고 학적인(scholar)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윗이 다수의 시편을 쓰던 때보다 훨씬 전에 퍼져있던 학적인 형식이다. 그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닌 표제를 붙여 표현하는 단순한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히브리 성서보다 몇 세기나 앞서 기록되었던 다른 고대 근동의 유산물들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학의 세계적 석학인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은 고대 이집트의 시들을 연구하는 중이다. 그는 가장 오래된 시편이라고 믿는 작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그 작품은 무려 주전 3000년의 작품이다. 그것은 명백하게 단순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시는 훗날 이집트, 셈족의 시에 나타나는 평행 형식과는 다르다. 그가 말한 시기로 볼 때, 이 시는 다윗이 활동하던 때보다 무려 이 천 년 전에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성경의 시편은 언제 기록되었든 간에 문학적 예술성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음악성(musical)
다섯째, 시편은 노래로 불리기 위해 기록되었다. 시편은 음악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 150:3)
영단어인 “시편”(Psalm)은 헬라어 psalmos에서 유래된 말인데, “반주와 함께 노래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를 돌아보자. 시편을 읽을 때 문자만을 읽고 있지 않은가?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시편이 노래로 불러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
나는 성전에서 연주된 완성된 음악이 어떤 형식인지 모른다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정리된 음악’(music police)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허락된 단 하나의 형식만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놀라운 사실을 알 뿐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의 예배를 사모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모든 악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설령 이방인들에 의해 디자인되어 생산되었다고 해도 말이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절의 히브리인들은 이웃나라 사람들의 악기를 개조하여 거룩한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탄의 악기’라는 말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에 쓰임 받지 못한 악기를 지칭하는 말일 뿐이라고 주장해 온 것이다. 대부분의 시편 말씀은 음악을 예배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신앙 공동체를 위해 사용되었다.
✔치유(healing)
여섯째, 시편은 아픈 사람들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로해 왔다. 낙심하거나 실의에 빠졌을 때, 외롭고 절망적일 때, 그들을 돕고 이정표를 제시해 줄 성경의 말씀이 있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희망을 제시할 말씀, 삶의 위로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말씀,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위로 받고 있는 말씀은 바로 시편이라고 나는 믿는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 나의 빛이시니”(시 27: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 23:1)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8)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 100:3)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
✔찬양으로 충만(filled with praise)
일곱째, 시편은 가장 슬픈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인도하고 가장 기쁜 마음이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히브리 성경에서 시편은 테힐림(Tehillim)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복수형 명사는 ‘찬양하다’는 뜻을 가진 할랄(halal)에서 유래했다(역주-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의 할렐루야도 이 단어에서 유래했다). 시편의 많은 시가 찬양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찬양’의 개념이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시편은 우리가 하는 찬양을 묘사하는 시로 불리기도 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시 146:1)
이를테면 시편 100편과 같은 시편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소리쳐 부르라고 독려”하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그의 행한 일 때문이다. 시편 40편과 같은 다른 시편에서는 찬양을 묘사하는데 인도자인 다윗이 하나님의 구체적인 일하심과 기도에 대한 응답을 찬양하고 있다. 슬픔을 노래하는 시편의 주를 이루고 있는 요소 역시 ‘찬양의 언약’(vow of praise)이나 ‘찬양의 낭독’(recital of praise)이다. 시편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성경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위대한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의 중심은 항상 찬양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예수 중심(Christ-centerd)
여덟째, 시편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에 대해 독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나는 시편에 담긴 예언의 말씀에 근거하여 두 권의 책을 쓰고 있는데,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것이다. 이 책들은 다양한 공동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포함하고 있는데,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나머지 부분을 보강하였다. 사도들은 시편에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을 말하면서, 그가 시편의 중심이라는 것, 그가 시편에서 찬양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가 시편의 예언적 메시지가 지향하는 목표라는 것을 선포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 땅에 거하시는 동안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예배에 관한 책을 읽으며 그것에 깊은 의미를 두고 살아가셨다.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위대한 사명(A great commission)
우리에게 있어서 시편은 정말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의 예배를 만들어 감에 있어서 우리의 혁신과 열망은, 단지 새로운 것으로 찬양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구약시대부터 전해져오던 오래된 찬양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교회의 소중한 재산이 될 성경적 예배 음악을 새롭게 만들어 가려는 열정을 이어가자.
시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찬양은 무궁무진하다. 결코 우리의 찬양에 있어서 삼천 년 동안 이어 내려온 음악의 양식이 포기될 수는 없다. 시편의 찬양과 악기들은 가장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형식 안에서 완성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온 모든 역사를 통해 주어진 고전적인 방식으로도 노래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시편으로 찬양해야 하고, 또 찬양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말을 기억하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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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B. 알렌(RONALD B. ALLEN)
신학 박사(Th.D), (D.D) 달라스 신학대학교(Dallas Theo-logical Seminary)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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