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23, 2018

요한 일서 3장 20절 해석

🎯요일 3: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개역한글)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개역개정)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책망하는데, 우리의 양심보다 크시며,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우리를 책망하시겠습니까?" (쉬운 성경)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표준새번역)

"우리가 양심을 가책을 받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공동번역)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할진대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니라.."(킹제임스 흠정역)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NIV)

"For if our heart condemn us,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knoweth all things."(KJV)

📌요일 3장 주석: 예사랑 카페

본절에서 두 번 사용된 '호티'(* , 왜냐하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첫번째 '호티'를 명사절을 이끄는 접속사(that)로 보고, 두번째 '호티'는 불필요한 반복으로 간주하여 생략한다. 이 해석은 20절 전체를 19절의 '페이소멘'(* , '확신케 하다') 이란 동사의 목적어로 본다(Bruce).

(2)혹자는 첫번째 '호티'를 '왜냐하면'으로 해석한다. 이 경우 19절의 동사 '페이소멘'(* , '안심시키다')의 목적어는 생략된 것으로 본다(AV).

(3)혹자는 첫번째 '호티'(* )를 '호'(* )와 '티'(* )로 분리시켜서 관계대명사 중성 명사로 보고, '에안'(* , '...이면')과 합쳐서 '...할 때마다'라는 의미로 본다.
이때 두번째 '호티'는 종속절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왜냐하면'의 뜻이 된다(Stott, Smalley).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요한은 본서에서 서로 대조되는 구문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1:9,10; 2:10,11; 3:8,9), 본절 역시 21절과 대립되는 구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본문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묘사라고 주장한다(Alford,  Wohlenberg).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우리 자신도 우리 마음을 보시면 책망할 것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혹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 
한 묘사라고 주장한다(Brooke, Luther). 이 견해에 따르면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두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우리 마음을 책망할 때마다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문맥상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밥 어틀리 교수 (미국 동침례대학)

3:19-20 이 두절의 헬라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혼동이 있다.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은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하는것이다. 이 문맥에서 두 번째 해석이 더 적합하다.

3:20-21 두 절 다 조건절의 제 3 유형이다.

3:20
신미국표준역(NASB)
뉴킹제임스역(NKJV)
신개정표준역(NRSV)
현대영어성경(TEV)
신예루살렘성경(NJB)

“무엇에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때마다”
“우리 양심이 우리를 책망한다면”
“우리 느낌이 혹 우리를 책망하더라도”

모든 신자는 그들이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있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인해 속으로 슬픔을 경험하고 있다. 양심으로부터의 이러한 아픔은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거나(회개케 하기 위해) 또는 사탄으로부터 온다(자기 멸망이나 증거가 되지 못하는 삶을 가져 온다).

이것은 적절한 죄의식이면서 부적절한
죄의식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책을 읽음으로써(혹은 그의 사자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차이를 안다.

요한은 사랑의 기준에 의해 살고 있으면서 죄와 아직 씨름하고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려고 한다(헌신과 간과).

요 12:40 의 특별제목인 마음을 보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동기를 아신다(참조, 삼상 16:7; 왕상 8:39; 대상 28:9; 렘 17:10; 눅 16:15; 행 1:24; 롬 8:26, 27; 고전 4:4).

요한일서 3장 20절! 책망할 일이 있거든! 있더라도!

📌네이브 블로그

요한일서 3장입니다.

그런데 3장 20절에서 좀 중요한 번역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래 두 성경의 번역의 차이를 생각합니다.

(개역성경) 우리를 책망할 일이있거든

(개정성경) 우리를 책망할 일이있어도

<개역 성경>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요일3: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개정 성경>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요일3: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요한1서 3장 20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 개정성경은 지난번 개역성경의 뜻과 반대로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무슨 사연이,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요? 

무슨 내용인지 요한일서 3장을 14절부터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요일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일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요일3: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요일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요일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요일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일서 3장은 지금 사랑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는 사람, 그렇지 않는 사람은 사망에 머물러 있는 사람...

사랑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죄책감을 생각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했음이 찔립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 내 양심과 죄책감과 그리고 하나님의 시선과 이에 대한 나의 태도를 고민합니다.

어떻게 지금 개역성경과 개정성경이 다른 것입니까?

<개역 성경>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요일3: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하지 못한 거짓과 위선의 죄를 다 알고 계시지 않느냐?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실 것이다! 책망받지 않도록 더 사랑하며 살아라! 

즉 개역성경에 따르면 우리도 솔직히 양심적으로 책망할 일이 내 자신에게 있음을 아는데, 솔직히 당신이 더 잘알지 않느냐!^^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말할 것도 없이 더 잘 알고 계실테니 책망받지 않도록 더 사랑하며 살라! 라고 이해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개정성경은 다릅니다. '도'를 집어넣었습니다.

<개정 성경>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요일3: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성의 약함-한계(사랑하지 못하는)까지도 다 알고 계시지 않느냐?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아시니까, (불쌍히 여기시고 용기를 주시고) 다시 사랑하게 하시고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러니 너무 죄책감에 빠지지 말아라!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망받을 일이 있긴 있어도, 그럴지라도, 그렇긴 해도- 로 이해되는 구절입니다.

즉 개정성경에 따르면

"우리 마음이 혹 우리 스스로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그 앞 19절로 돌아가 연결해보면 '그렇다할지라도' (즉,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너무 죄책감에 사로 잡히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굳세게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자신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역성경이 강조하는 "있거든!" (있는데, 아주 많은데!)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왜 이런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온 것일까요?

헬라어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o{ti eja;n kataginwvskh/ hJmw'n hJ kardiva, o{ti meivzwn ejsti;n oJ qeo;" th'" kardiva" hJmw'n kai; ginwvskei pavnta.

헬라어 각 단어에 대한 영어 번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Darby)

20  ὅτι  that ἐὰν if καταγινώσκῃ should condemn [us] ἡμῶν our ἡ 
- καρδία heart ὅτι that μείζων greater than ἐστὶν is ὁ- Θεὸς God τῆς the καρδίας heart ἡμῶν of usκαὶ and γινώσκει he knows πάντα all things

여기에서의 해석문제는  ὅτι 호티 
that 을  어떤 맥락으로 해석!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일반적으로 ὅτι호티는  that , for , because , how that, how , since 등으로 해석됩니다.

KJV성경은 for로 번역했는데 for는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단어입니다.

NIV성경은 whenever로로 번역했고 다른 성경은 whatsoever로 번역한 곳도 있습니다. Bible Hub에서는 위에 기록한대로 that if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ὅτι호티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내용도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해석에 해석자의 신앙이 들어갑니다!

살아온 과거가 해석에 들어갑니다!

[KJV 성경] 개정성경과 같은 입장이라고 보입니다. 한다 할지라도~~

[1John3:19] And hereby we know that we are of the truth, and shall assure our hearts before him. [1John3:20] For if our heart condemn us,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knoweth all things.

[NIV 성경] 개정성경과 같은 입장~~ 언제든지 그럴 때에라도 
 [1John3:19] This then is how we know that we belong to the truth, and how we set our hearts at rest in his presence [1John3:20]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은 확실히 가책을 받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음을 믿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정 성경과 같은 입장입니다.

다른 성경은 개역성경처럼 내 양심도 나를 알고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잘 알고 계시지 않겠느냐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른 성경버전들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표준새번역> 개정과 같은 입장

[요일3: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우리는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요일3:20]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 개정과 같은 입장

[요일3:19] 우리는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요일3:20] 우리가 양심을 가책을 받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현대어 성경> 개역과 같은 입장

[요일3:19] 우리가 진정으로 남을 사랑하고 행동으로 나타내 보인다면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깨끗한 양심으로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일3:20] 우리도 죄를 저질렀을 때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스스로의 잘못을 아는데, 하물며 더없이 어지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모르시겠습니까?

<쉬운 성경> 개정과 같은 입장

[요일3:19]  이렇게 행해야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요일3:20]  혹시 우리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조금 참고가 된다면

19절에서 "굳세게 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소멘'  πείσομεν  즉 확신하다! will assure 라는 뜻입니다! 누가 뭐래도내 마음에 확신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처럼 문장을 나누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한가지,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생각되십니까?

저는 이 기회에 그 본문들과 주석들을 새삼 다시 비교해보면서, 이 번역들에는 죄책감과 싸우는 내 자신에 대한 무겁고 진지한 고민들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 해석에 대한 깊은 기도와 기대와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과연 어떤 의도였을까요? 

그는 사랑해야한다는 명제를 붙들고 사는 인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사도 요한의 일생에 있어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았을까요? 시행착오를 경험할 때 어떻게 생각하고 기도했을까요? 사도요한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저는 어쩐지 사도요한이 개정의 뜻으로 말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간이란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까요!

믿음을 가진 사람도 그러니까요...

그렇다고 믿음을 포기하고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 구절을 번역하면서 고민했을 모든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 부분에서 어떻게 반응하실지!

진정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는 무엇일지,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우리도 고민하고 고민합니다!

내가 살아온 생애는 어떠하였으며, 주님의 은혜를 어떻게 사모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해야하는 것인지,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얼마나,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요?

일생을 돌이켜보며 이 구절을 다시 읽습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 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어지는 요한복음 3:2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에 기도 응답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 아시는 주님 앞에 마음을 늘 맑게 지키고 가기를 원합니다.

[요일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
[요일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

출처: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anem&logNo=220762819664&proxyReferer=&proxyReferer=http%3A%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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