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20, 2016

시편 100 / 양인국 목사

🌻시편100편 강해

이 시는 찬양 시(詩)이며 시편23편과 함께 시편에서 가장 많이 애송되는 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주석 학자들 중에는 1-3절까지는 예배자들이 감사의 예물을 드리러 성전 문으로 가는 도중에 부른 것이고, 4-5절은 성전 안에 있는 성가대가 부른 노래인데, 후에 두 시가 하나의 시로 편집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볼 때 이 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다. 처음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내용이고 다음은 찬양해야 할 이유들을 고백의 형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 시는 구약시대 유대인들이 예배 찬송으로 불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으로 불렀다. 특별히 이 시는 지금도 서방 교회에서 “옛날의 노래 시 100번째 노래”라는 제목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찬송이다.

이처럼 이 시는 모든 시대 성도들이 예배 중에 부른 찬송 시(詩)로서 우리는 이 시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가 예배드릴 때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100:1-5.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100:1-5)"

여기 “온 땅이여”란 모든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누구든지 기쁨으로 찬송하며 그 앞에 나가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무엇보다 먼저 지켜야 할 태도는 “기쁨으로 그 앞에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아론의 아들들 중에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불을 향로에 담아 하나님께 분향함으로 죽임을 당했을 때,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른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아서 너희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케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레10:1-6)”

모세는 아론에게 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살아남은 아론의 아들들에게 형제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모세가 이들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은 예배하는 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만유의 주인이시며 또한 만유의 주재자로서 만유를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재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다면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는가? 요한도 이와 동일한 사실을 말하였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두움이 이기지 못하더라(요1:4,5)” 즉 빛 되신 하나님 앞에 어둠은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이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배하기 위하여 그 앞에 나갈 때 기쁨으로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언제나 기뻐할 수만은 없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삶의 여정에서 당하는 피할 수 없는 수고와 슬픔을 동일하게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가 예배하는 동안에는 기뻐해야 한다. 에스라는 유대 백성들에게 공적 예배 시(時)에는 자신의 약함과 죄를 슬퍼하는 것조차 피하고 기뻐하라고 권고했다. “이 날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여기 “이 날”이란 성일 즉 유다가 공적 예배를 드리도록 정해진 날을 의미한다. 에스라는 유다 온 백성에게 “이 날은 주의 성일” 즉 예배하는 날이므로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권고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통회를 금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공적으로 예배드리는 성일에는 개인적인 회개조차도 금하고 그 앞에 기쁨으로 나가라는 권고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100:3)”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과 그 고백의 깊이만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없이 하나님께 나간다면 우리는 예배 의식에 참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나갈지라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깊이는 신앙 고백의 깊이를 넘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요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요청됨을 말해 준다.
시인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올 것을 초청한 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100:3)”

시인이 말한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당연이 우리는 그의 소유된 자들이다. 시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의식하고 자신들을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고백했다. 여기 “그의 백성” 또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관계를 묘사하고 있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은 이 고백을 통하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소유지만 특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돌봄을 받는 자임을 말하였다. 우리는 시인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를 신령과 진정한 예배로 이끌어 주는 신앙의 고백이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보편적 고백으로부터 점점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로 나가는 신앙의 고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우리의 신앙 고백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앎으로 인한 고백일수록 진정한 예배로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은 보편적인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하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은 개인적으로 보다 더 깊이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나가간다. 이처럼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 깊을수록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깊어 진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100:4)”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 가운데 또 다른 한 가지는 감사함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그 문” “그 궁정”은 하나님의 임재 앞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감사함으로 그의 임재 앞에 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갈 때마다 감사함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지금 여기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생존해 있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환경 가운데 있든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은혜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시인은 우리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100:5)”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기에 우리는 바울처럼 모든 순간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고백은 우리의 생존을 포함하여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고백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살았고 앞으로 그 은혜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은 예배에 대하여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 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 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우리가 시편 본문의 교훈에 따라 기쁨과 신앙의 고백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것이다.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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