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12)
정용섭201512) 3월3일(화)
<본문읽기>
시 105:1-11, 37-45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6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
37 마침내 그들을 인도하여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의 지파 중에 비틀거리는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 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그들이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39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40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41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42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3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44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45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창 22:1-19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히 11:1-3, 13-19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집중 묵상구절>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묵상>
창 22장에는 한편으로는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 끔찍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믿음을 보였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라 해서 아들까지 죽여서 바치려고 했다는 것은 끔찍하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보자. 우리가 이런 명령을 다시 받았다면 실제로 아브라함처럼 자식을 바쳐야 할까? 그게 가능할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인간이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명령까지 실제로 내리시는 분일까? 혹시 아브라함이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닐까?
고대 근동에는 인신제사가 없지 않았다. 그들이 비인간적이어서 그런 일을 행한 것은 아니다. 극심한 가뭄이나 전염병 등으로 공동체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사람을 신에게 바친 것이다. 고대 유대인들도 주변에서 그런 일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생존의 극한 상황에서 빠졌을 때 인신제사의 유혹을 받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구약의 제사 행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생명을 바치는 의식이다. 사람을 바치는 대신에 짐승을 바친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희생제물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일을 하나님 당신이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임으로써 인간 구원을 완성한 분이라는 말이 된다. 이게 말이 될까? 이런 하나님 상은 성서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교적이다.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런 이교적 방식으로 밖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말인가? 여기서 자칫 길을 잘못 들면 우리의 신앙은 고대 근동 종교에 익숙했던 인신제사 차원으로 떨어진다.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 전승을 다시 보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앞서 소돔성 사건 때는 의인 50명으로부터 시작해서 10명까지 내려오는 흥정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일절 말이 없다. 주인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종처럼 미션을 수행할 뿐이다. 이게 믿음의 최고 경지다. 말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절대적인 믿음이다. 그럴 때 히 11:1절이 말하듯이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희망이 가능하다. 마지막 순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양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호와 이레!
모리아 전승 이야기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예표다. 예수는 아브라함처럼 (또는 이삭처럼) 십자가 죽음 앞에 섰다.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이다. 자신의 운명이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예수는 말없이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였다. 인류 구원, 또는 하나님 나라의 성취에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외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채 그 길을 갔다. 아브라함처럼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서 말이다. 여호와 이레!
<기도>
주님,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고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실제로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