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2)
정용섭 목사 20152) 2월19일(목)
<본문>
시 25:1-10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단 9:1-14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12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13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요일 1:3-10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2)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집중 묵상 구절>
시 25: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묵상>
시편은 일종의 기도이자 노랫말이다. 이런 내용의 기도나 노랫말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기도에 이스라엘의 집단 영성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들이 당한 역사 경험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시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애굽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았던 서러움, 광야에서 경험했던 생존의 위기감, 가나안 문명과의 끊임없는 충돌, 주변 제국에 의한 시달림과 패망, 특히 바벨론 포로생활 등이 이들의 역사적 배경이다.
이런 지난한 역사 경험은 사람을 패배주의로 몰아가곤 한다. 개인들도 어렸을 때 당한 쓰린 경험들이 트라우마로 남는 것처럼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런 데에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처가 있는 진주조개가 영롱한 진주를 생산하듯이 놀라운 신앙의 세계를 열었다.
25편은 이런 말로 시작된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나’라고 하지 않고 ‘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내가 주를 우러러보나이다.’라고 해도 되는데, 이 사람은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고 한 것이다.
나와 나의 영혼은 동일한가, 다른가. 영혼, 또는 영은 우리가 무슨 말로도 다 표현해낼 수 없는 생명의 심연을 가리킨다. 사람의 정체성이 확보될 수 있는 가장 깊은 차원의 어떤 힘을 가리킨다. 이성이나 지성과는 다르다. 어떤 사태를 파악하고 분석하고 인식하는 것과 다른 역할을 영혼이 한다. 그래서 지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는 말은 그 어떤 논리나 합리성에 의해서도 훼손되지 않는 깊이에서 하나님을 향한다는 뜻이다. 이런 깊이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을 것이다.
1절의 ‘주를 우러러보는 자’와 3절의 ‘주를 바라는 자’는 똑같다. 공동번역으로 3절은 다음과 같다.
“당신만을 믿고 바라면 망신을 당하지 않으나, 당신을 함부로 배신하는 자 수치를 당하리이다.”
당신만을 믿고 바란다는 게 간단한 게 아니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시편 기자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지 그렇게 살았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당신만을 믿고 바라려면 하나님이 누군지를, 생명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살아가는데 부족한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늘 배가 부르다. 돈이 많아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소유할 수 있다.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해서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다. 이 두 사람 앞에 각각 밥 한 그릇과 김치가 놓여 있다. 누구에게 이 밥과 김치가 절실한지 답은 분명하다. 배고픔을 알아야 먹을거리의 소중한 걸 안다.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은 영혼의 배고픔과 비슷하다.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만 바라면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세상에서 인생이 잘 풀린다는 뜻이 물론 아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아니 하나님만을 진실하게 믿으면 믿을수록 세상에서 수치를 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게 세상의 원리다.
사순절의 중심에 놓여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수치다. 당시에 그것을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제자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 당신이 고난 받고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말씀을 듣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뜯어말렸다.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당하는 수치를 실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직접 받는 수치에만 민감하다. 자식들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을 하지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예수 믿는 가정도 비슷하다. 신앙을 세상살이에서 종교적인 위로를 받는 도구쯤으로 여긴다.
하나님에게 수치를 당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심판이 일어날 때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다. 생명으로부터의 소외다. 종말론적인 부정이다.
그것은 종말에서 확정되지만 이미 지금 여기서도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은폐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이 심판받는다.
그런 심판의 하나가 허무다. 생명의 심연이자 그 중심인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는 허무의 늪에 빠진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그걸 안다. 자신은 끊임없이 그걸 부정하고, 아닌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허무의 공포가 그의 삶 전체를 압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지옥불의 실체가 아닐는지.
<기도>
주님, 우리가 주님만을 향함으로써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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