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2, 2016

✔창조 신학이 근본이다 / 장창수 선교사

창조 신학이 근본이다
- 일원론으로 본 세상

기독교의 성경만 우주의 창조를 기록한다(창 1:1). 창조주는 한 분이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주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참신이란 뜻이다. 그리고 창조 기사는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다스린다는 일원론(一元論: monism)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주 하나님인 여호와(창 2:4)는 인격적 신(神)이다.

시작과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은 먼저 특정한 목적을 정하고 그다음 계획을 세웠다. 이 목적과 계획에 따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의 세계를 창조했고 또다시 말씀으로 창조하며 이들을 채워 나갔다. 추상적인 주제(主題 : theme)인 창조 목적이 형상적인 소재(素材 : material)라 할 창조 세계를 통해 잘 설명된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영적 세계를 물질세계로 표현시키는 행위로 초월(超越 : transcendence)과 내재(內在 : immanence) 사이 조화로운 관계를 설명한다. 창조 기사는 이원론(二元論 : dualism)을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논리적인 이해를 위해 초월과 내재를 분리시킬 수 있다.

창조된 우주와 세계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도록 돕는 구조와 기능을 가진다(롬 1:19~20). 즉 자연 계시가 특별 계시를 설명한다. 자연 계시를 잘 이해한다면 하나님과 그의 창조 목적도 알 수 있다. 단 두 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는 너무나 중요하다. 창조 기사가 성경의 나머지 계시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유감스럽지만 교회는 헬라 철학의 이원론적 영향을 받아 창조 기사의 중요성을 덜 인식했다. 논리 영역은 물론 역사 영역에서도 초월과 내재 사이 관계를 강제로 분리시켰다. 창조 신학의 일원론이 무시되었다. 그 결과 창조 신학도 거의 무시되고 창세기 3장부터 기독교 신학이 출발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완강하게 부정한다.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진 작정과 목적 그리고 의지를 제일 처음 드러냈다. 창조 신학의 내용을 알 수 있다면 나머지 계시들의 방향과 목표가 무엇인지도 알려진다. 창조 기사는 재해석되어야 한다.

창조 세계는 유기체이다

우주와 만물은 모두 하나의 창조물에서 기원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

첫째 날 하나님은 원형적 우주(창 1:1)와 비물리적인 빛(3~4)을 창조했다. 원형적인 우주는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그러나 성령이 물 위에 운행했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 원형적 우주에서 우주와 지구 그리고 그 가운데 만물이 차례로 창조되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의 유일한 주재자(主宰者)란 뜻이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 29:11, 렘 31:7 참조)."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시 22:28)."

하나님은 질서의 신(神)이다(고전 14:33).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우주는 서서히 안정적인 구조를 드러내며 질서 정연하게 존재했다. 이 구조 안에서 우주와 만물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 이 점에서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시될 수 없다.

만물의 주재자인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라는 몸의 머리였고 창조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그 몸을 유지하며 보존하고 섭리하며 통치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첫날 비물리적인 빛을 창조했고 아울러 성령이 창조된 세상 위에 늘 운행하도록 조치했다. 이미 존재하기 시작한 사단의 존재와 그 활동을 억제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창조 세계가 유기체와 같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서도 잘 증명된다. 창조 과정은 주기성(週期性)을 보여 준다. 첫째 삼일과 둘째 삼일 모두 우주, 하늘과 바다 그리고 뭍(육지)의 순서로 창조가 진행된다. 첫째 주기인 첫 삼일 동안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었다면 둘째 주기인 두 번째 삼일 동안 그 시공에 거주할 피조물들이 차례로 창조되었다. 두 주기들은 서로 유기적이다.

창조의 날들이 지날수록 창조 세계도 점점 더 완벽해졌다. 여섯째 날 맨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최고 걸작인 인간이 창조되었다. 6일간의 창조 행위는 인간을 위한 창조 과정 자체였다. 인간은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창조주를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릴 것이다. 인간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완벽해야 했다.

넷째 날 창조물인 우주의 천체들도 결국 인간을 위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창 1:14)." 태양은 일과 쉼을 결정해 주는 주야를 인류 사회를 위해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사계절, 일자와 연한까지 정해 주어 덕분에 인류 사회는 규칙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태양의 주기적인 운행 덕분에 인류 사회는 이 지구에서 평화롭게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의 에너지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들의 생명을 보존 내지 유지시켜 준다. 이 덕분에 인류 사회는 활동에 필요한 양식을 늘 얻을 수 있다(창 1:29). 태양이 없다면 우주는 존재할 수 없다. 우주는 태양계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을 '각 종류대로' 창조하였다(창 1:12, 21, 24, 25). 창조 세계는 사람의 몸과 같은 유기체이다.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이 있듯이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분들이 있다. 이 부분들은 모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맡은 역할과 기능을 소유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은 아무리 작은 것도 무용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각 은사대로', '각 기능대로', '각 역할대로', '각 사명대로' 또는 '각 직분대로' 만물이 지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각 종류대로'란 표현은 '자연도태',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을 주장하는 무신론적 진화론(進化論: evolution)을 완전히 부정한다.

진화론적 사고는 두 가지로 나뉜다. '어느 것이 더 강하냐 또는 더 크냐?'라는 상대적 이분법과 생물들 사이 천적 관계를 주장하는 대립적 이분법. 이런 사고에 의하면 피조물들 중 상대적으로 작은 것들이나 약한 것들은 존재 의미와 목적을 못 가진다. 또는 천적 관계로 어느 한 쪽은 다른 쪽을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자연 세계는 오로지 강자(强者)와 승자(勝者)만의 소유물이다.

학자들은 진화론으로 인류 사회를 분석한다. 모든 사회적 현상이나 인류의 역사를 상대적 또는 대립적 이분법에 따라 재평가한다. 우생학이나 인종 개량학 그리고 공산주의 등등은 모두 진화론의 결과물이다. 영웅인 강자와 승자만 높게 평가되고 나머지는 약자나 패자로 무시된다. 사람들에게 승리와 성공만이 유일한 가치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 차이가 너무나 크다. 앞에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모든 만물은 생존의 의미와 목적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뒤에 것은 나타난 현상이나 결과에 근거를 두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앞에 것은 미천한 것도 중요하게 보지만 뒤에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이들이 서로 다른 것은 창조 세계의 타락 이전과 이후 사이 차이에서 나온다.

타락 이후 아담의 통치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에게 넘겨졌다. 사단은 자연 세계는 물론 인류 사회에서 하나님의 반대자로 등장하며 하나님이 세운 모든 조화를 무너트린다. 이 때문에 이원론이 맞고 일원론이 틀린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방해와 반대는 일시적이다. 유일한 창조주인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목적을 달성하고자 여전히 세상을 통치한다. 그러므로 창조 신학은 인류 사회를 위해 여전히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6일 창조 과정에서 창조된 모든 것들은 통섭적인 관점에서 관찰되어야 한다.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하며 다른 것들을 무시하는 그런 학문적, 과학적 연구 방법은 성경이 처음부터 권하지 않는다.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은 모두 예외 없이 하나님이 달성할 창조 목적에 이바지하도록 지어졌다. 창조 기사는 통섭적 과학 방법을 주장한다.

신국론이 창조 신학의 중심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6일째 날 마지막 창조물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인간은 창조 결과를 은혜로 받고 누리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면 되었다. 창조주는 피조물 인간으로부터 이런 영광과 찬송과 명예를 받길 원했다(시 102:18, 사 43:7, 21 60:21, 61:3, 엡 1:6, 14, 21).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인간을 독특한 방법으로 창조해야 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절)."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닮았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자체가 아니다. 인간은 복사본으로 하나님과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창조주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신의 통치권(창 1:28)을 넘겼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처럼 문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처럼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설 것이다(엡 1:4~5).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용어는 인간 존재의 출발은 물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려준다. 문화 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하나님은 자신의 신적 은사와 능력을 인간에게 줄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용어가 품는 신학적 의미이다. 신의 일을 맡은 인간은 신의 성품에도 참여한다(벧후 1:4 참조).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처럼 이성, 지식, 도덕, 감성 그리고 예술 면에서 은사를 소유한다. 이로써 불완전한 인간은 세 단계를 거쳐 완전함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문화 사명을 수행하는 인간 그리고 마침내 아들로 인침을 받은 인간. 이것은 신약성경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칭의, 아들로 살아가는 성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아들로 인정받는 영화.

문화 사명은 세 분야로 구성된다. 문화 사명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명한 것이다(하나님과 사람 사이 관계, 신앙과 종교 영역). 이 사명은 인간의 생육과 번성 그리고 땅에 충만을 명한다(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 윤리와 사회 인문과학의 영역) 그리고 자연은 문화 명령을 수행할 또 다른 무대이다(자연과 사람 사이 관계, 자연과학의 영역). 이것들이 신앙 삶을 구성한다. 신앙은 윤리나 과학을 배제시키지 않는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도 분리될 수 없다. 결국 신학과 각종 과학은 모두 하나님나라를 위한다.

지금까지 기독교와 신학은 앞의 두 가지 관계만 중요하게 보았다. 셋째 관계는 비교적 무시되었다. 물질세계를 저급한 것으로 보는 헬라의 이원론적 철학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오염과 파괴의 원인은 바로 이원론에 있다. 그러나 창조 신학은 하나님의 통치가 자연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의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할 것을 명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지고 확장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이다(창 1:26). 기독교는 자연 세계의 보존과 유지 그리고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다른 관계들과 동등하게 자연과의 관계도 강조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 신학은 세상의 학문이나 과학을 배척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인류가 효과적으로 문화 사명을 수행하도록 별도의 조치를 취했다. 안식일을 정하고(창 2:1~3) 에덴동산을 창설했으며(8~15절) 선악과 규례를 주었고(16~17절) 그리고 가정을 세웠다(18~25절).

일주일 중 마지막 날 인류는 쉬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며 창조 기사를 묵상해야 한다. 육적 쉼이 영적 쉼을 겸할 때 진정한 쉼이 된다. 이로써 인류는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늘 창조주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찬송과 영광과 명예를 돌릴 것이다. 이를 잊는다면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미천한 짐승처럼 살 것이다.

에덴동산은 문화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근거지이며 동시에 출발점이다. 문화 사명은 에덴동산의 영역을 세상으로 점점 더 확장시켜 나감으로 훌륭하게 수행된다. 이로써 하나님의 통치 영역도 세상으로 확장되어 가며 하나님나라가 저절로 이 세상에 건설된다. 그리고 에덴동산은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훈련받는 곳이다. 여기서 배우고 습득한 후 에덴 밖에서 실천할 수 있다.

선악과 규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류가 문화 사명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문화 사명이라는 일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길을 따라 수행하여야 한다. 일만 중요하지 않다. 정해진 길을 따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를 조건으로 인류는 에덴동산에서 계속 살며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이를 창조 언약(창 2:17)이라 한다.

이런 삶과 사명 수행을 통해 인류는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완전한 순종자만이 하나님이 마련한 완전한 낙원에 이를 것이다. 이 낙원의 기업을 얻는다면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완성인 영화 단계이다.

그러나 순종은 영화(榮華: glorification)에 달하는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이미 낙원 에덴에 살고 있다(칭의, justification). 그런 무조건적인 은총을 받은 인류는 문화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짊어진다(성화, sanctification). 그러나 노력의 정도에 따라 받을 상급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가정 제도는 문화 사명을 위해 꼭 필요하다. 문화 사명을 수행할 일꾼들은 가정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 제도, 부부 제도 그리고 가정 제도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 신성하다. 최초의 가정은 바로 교회와 학교와 정부 노릇을 했다. 가장이 목사, 교사 그리고 왕의 역할을 맡는다. 구약시대로 말한다면 가장이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 같은 존재이다. 가정은 인류 사회라는 공동체의 최소 단위로 교육장과 훈련장이다. 이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일꾼들이 배출된다.

남녀 관에서 창세기 1장과 2장 사이 차이가 발견된다. 보편적 창조 기사를 말하는 창세기 1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동등한 존재이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며 수평적 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인간 창조를 기록한 2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 않다. 남자는 가정의 가장(家長)으로 왕적 존재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 관계는 수직적이며 종속적이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가정에선 창세기 2장의 가르침을 그러나 가정 밖 사회에선 창세기 1장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성경적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서 창세기 3장에 기록된 하와의 저주(16절)를 예로 든다. 그러나 본문도 가정을 배경 한다. 즉 가정 안에서 여자는 남편의 감독 아래 있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 밖 사회에서 남녀 사이 성적 차별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문화 사명의 수행과 은사 면에서 여자를 남자와 차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명이 수행되는 인류의 문화 영역은 너무나 다양하다. 효과적으로 사명을 수행하려면 남자와 여자 사이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자의 우월성은 현대사회 이전 농업 시대 절대적이었다. 그 시대 육체적인 힘이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화 시대 몸의 힘보다 머리의 힘인 지식이 더 중요해졌다. 여자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다원화 시대 여자가 활동할 수 있는 분야들은 참으로 많다. 이 모든 일들을 남자들만 감당할 수 없다. 학자들은 여성의 노동력이 나라의 발전과 성장을 좌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전 인류 사회는 한 사람의 유능한 리더에 의존했다. 그러나 오늘날 다원화 시대 유능한 전문가들은 참으로 많다. 이젠 조직원들의 전문적인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리더가 필요하다. 이 리더십에 권위적인 남성보다 모성적인 여성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창세기 1장의 남녀 관은 이런 시대와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있다. 인류 사회도 일인 지도자만 고집하는 권위주의보다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평등주의를 요구한다. 이제 인류 사회는 여성 지도력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해 교회와 성도가 노력해야 할 다섯 가지 일들이 있다. 성경 말씀의 고수, 문화 사명 수행, 주일 성수, 교회의 보존 그리고 경건한 가정의 육성이다. 이들은 그대로 창조 신학의 가르침들이다. 이들에 힘쓴다면 교회는 산 위에 켜진 등불처럼 만인 위에 비출 것이며 성도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나라도 인류의 문화 영역에서 더 빨리 세워지고 확장될 것이다. 교회도 인간 사회도 모두 사는 길이다.

결론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의 종국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류를 대리자로 세워 자신의 통치를 이 세상에 실현시켜 하나님나라를 완성하는 것이다. 창조 기사가 말하는 신국론(神國論: doctrine of God’s kingdom)은 모든 신학들의 목표이며 방향이다. 모든 신학들은 신국론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성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엡 1:4~5)이 이를 증명한다. 시간상으로 선택보다 앞서는 하나님의 예정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이다. 그리고 예정에 따라 이루어진 선택의 목적은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예정을 성취하고 완성시키는 방법이다. 피택자들로 표현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세움을 입고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거룩한 신분 획득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고 양자 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각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선택 이후에도 성도의 삶에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 자체인 그리스도를 닮은 형제들로 그를 세우기 위함이다.

피택자들은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둔 형제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아버지이다. 결국 하나님의 가정이 곧 하나님나라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진면목이다. 창세전 세워진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즉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창조주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창조 후 인류 사회는 바로 하나님의 가정의 상징이며 모형으로 하나님나라였다.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통치를 전 세계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인류의 사명이었다. 문화 사명은 바로 이를 목표했다. 지금까지 살핀 대로 창조 기사가 말하는 신학적 주제들은 결국 하나님나라라는 제 일차적인 주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창조 신학은 이런 논리적인 진리 체계를 보여 준다.

하나님나라는 세상 문화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 사실은 부활주인 예수님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계 1:5 참조)." 만물의 으뜸이라면 지금도 예수님이 세상 역사를 주관한다.

비록 보이는 차원은 아니라도 영적 차원에서 하나님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져야 한다. 이것은 문화 영역에서 실현된다. 이를 위해 부활주 예수님도 은사들을 나누어 주며 신자들을 돕는다. 먼저 예수님은 성도의 인격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하나님나라를 세운다. 그리고 그 영역이 세상으로 확대되도록 일한다. 이 점에서 신약시대 교회는 창조 기사의 에덴동산 같고 구약시대의 가나안 땅과 같다. 그리고 신약시대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거점이며 출발지이다.

결론적으로 헬라인의 이원론은 창조 신학에 안 맞는다. 성도는 히브리인의 일원론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일원론과 이원론은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 사이만큼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세계관과 역사관과 가치관 면에서…인류 삶의 내용과 성격은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면 일원론을 택하여야 한다.

사단이 아직도 활동함으로 이원론이 맞는 듯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의 품꾼에 지나지 않는다. 사단의 시험은 성도들에게 연단의 기회가 되지만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에게는 파멸케 하는 유혹이 된다. 결국 사단은 자기 일로 참주인인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어 줄 뿐이다.

기독교와 성도는 이원론에서 나온 대립적 또는 상대적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일원론에 근거를 둔 논리적 이분법에 따라 사고해야 한다. 일원론적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은 결국 성도들에게도 유익하다(롬 8:28).

그러나 사물을 상대적으로 또는 대립적으로 판단하는 이분법은 사물의 다른 면들 중 어느 하나를 버리게 만듦으로 성숙한 그리고 지혜로운 판단을 방해한다(창 3:6~24). 흑백논리에 따라 산다면 편협한 인간이 된다. 이로 인해 신앙 삶의 내용인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모두 파괴된다. 이것은 바로 사단의 전략이며 그가 원하는 바이다. 이원론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은 참으로 위험하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사고로 살아야 한다. 옛사람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사람의 사고방식을 따름으로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사실은 창조 기사의 신학이란 다른 신학들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 줄 뿐 성취나 완성을 보여 주지 못한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를 자신의 대표자로 세운 뜻과 목적이 실패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취소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야 할 이유였다(창 3:15).

예수는 둘째이면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47)이 되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중생하여야 한다고 말했다(요 3:1~16). 오늘날 이것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성취된다. 기독론, 구원론과 성령론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한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의해 하나님나라는 성취 내지 완성된다. 예수님이 하나님나라의 열쇠이다. 진실로 예수님은 인류의 참소망이다(딤전 1:1). 마라나타!

장창수 / 러시아 시베리아 주재 선교사

Friday, September 2, 2016

제4강 마귀(Satan)란 무엇인가? / 김동학

제4강 마귀(Satan)란 무엇인가?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마귀를 이기는 길

제4강 마귀(Satan)란 무엇인가?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 9)

사단 혹은 마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꾀는 존재로 인간을 만들기 전부터 존재했던 자다. 이사야 14장 12절에는 마귀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이사야14,12) 본래 마귀는 하나님 나라에서 찬양하는 일을 맡은 천사 '루시엘'에서 기원한다. 이 루시엘이 하나님과 대적하며 그와 비기리라고 하면서 천사들 가운데 2/3를 데리고 반역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그 자리에서 쫓아내시고 결국 쫓겨난 그가 '루시퍼'가 되어 사람을 괴롭힌다. 어쩌면 동화얘기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탄이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짐작케한다.

창세기 3장에도 뱀으로 위장한 마귀는 하와에게 다가와 하나님이 그 선악과를 참으로 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유혹한다. 이 때 마귀가 인간을 꼬인 말은 다름이 아니라 네가 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될까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꼬인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욕심이 결국 사탄의 꼬임에 빠져 낙원을 상실하게 되며 생명을 잃게 된다. 사탄은 바로 하나님같이 되라고 우리를 꼬득이는 마귀이며 영적인 존재로서 살아있는 악한 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마귀가 없었다면 인간은 범죄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인간의 형상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한 인간에겐 끊임없이 창조자와 비기려는교만이 있고 사탄은 끝까지-마지막 심판 때 까지 남아서 인간을 괴롭힐 것이다.

이 마귀는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끝까지 방해했으며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속에서 마귀는 합법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을 지옥으로 끌어가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사탄은 내 마음 속에 찾아와 악한 꾀로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교활한 존재로 움직이고 있다.

a. 사단(마귀)의 정체
전술한 대로 사단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계명성'(루시퍼)이다. 이 사단은 이사야서에 의하면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이사야 14,13)고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또 이 사단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이사야14,14)하면서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한 자다. 따라서 사단은 자기의 위치(찬양하는 일)를 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찬양을 받으려고 자기 위치를 벗어났고 직분을 떠난 자이다. 이 마귀는 옛 뱀(창세기3,1)으로 위장하여 첫 사람인 아담의 아내인 하와를 꾀이고 마침내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나온다.

사탄(사단)이란 말은 "이간시키는 자" "참소자" "무너뜨리고 갈라지게 하는 자"로 부르는데 이 사단이 역사하는 곳에는 분열과 비판, 찢어지고 갈라지는 인간의 비극이 일어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정을 갈라놓고(separate),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당을 짓게 만들고 형제와 형제 사이를 이간시켜서 미워하게 만들고 마침내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며 마지막엔 결국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악한 영이다.

사단은 영적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영적으로라야 분별이 가능하며 이 사탄을 물리칠 능력도 인간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고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라야 사탄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거짓의 아비요 거짓 말장이인 마귀는 지금도 사람들 속에 거짓을 집어 넣어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깨어서 마귀에게 시험받아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b. 사단의 조직
사단은 그들 나름대로의 조직(사단의 회)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요한계시록2, 9)는 말씀과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요한계시록3,9)에 기록하고 있다.하나님의 사자들(천사론)에서 상세히 다뤄지겠으나 영적인 세계의 질서에서도 왕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천군 천사들이 있듯이 사단도 많은 부하들(마귀와 귀신들,악령들)을 거느리고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3,8)

사단의 최정점에는 사탄(사단)이 있다. 곧 마귀의 왕이요 악령들의 대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 사탄은 예수님을 끝까지 방해하며 때때로 제자들에게(베드로)도 예수님의 길을 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메시야고백을 한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잡혀 죽을 것을 말하자 예수님께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고 말씀하셨다.<<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16,23)

사단(사탄)은 예수님을 방해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이 그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들었고 그는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때 우리는 예수께서 잠시 인간적인 고뇌 곧 마귀가 나타나 그의 마지막 헌신(십자가를 지는 것)을 방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의 한 장면) 뿐 만 아니라 이 사단은 자기의 졸개들(귀신과 악령들)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각종 질병과 고통을 가져오는 존재로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고쳐 주셨는데 바로 이 질병들이 마귀와 그의 졸개들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질환도 사실 알고 보면 그 뒤에는 마귀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살인,간음,불면증,자살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는 원인 뒤에는 무수한 악한 영의 역사가 존재한다. 최근 발생한 한 방송사 생방송의 성기 노출 사건도 알고 보면 연예나 문화 뒤에서 활동하는 악한 사단(마귀)와 귀신들의 역사이다.

사단은 귀신들을 다스리며 이 귀신들을 통해 사람을 더럽히고(죄짓게 하는 일) 죽이고 살인하게 하며 악한 일을 하게 하는데 그 열매가 모두 사탄이 그 배후에 있는 것이다. 목회자의 타락과 교회의 분쟁 뒤에도 사탄이 도사리고 있으며 교회는 깨어서 이 사탄의 출현을 알리고 영으로써 대결하지 않으면 결국 그의 밥이 되고 만다.

c. 사탄에 빠진 인간의 결과-죄와 살인, 전쟁
사탄은 앞에서 인간을 타락시키고 살인하게 한다. 예수를 배반한 갸롯 유다에게도 여지없이 사단이 들어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요한복음13,26-7)
갸롯 유다가 자신의 생각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나중에 그 은전을 돌려 주었으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거절했고 결국 자살을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관계를 파괴시키는 사탄은 오늘날 민족간의 전쟁과 종족 분쟁등에도 관여하며 세계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핵문제 때문에 불안한 한반도와 주변의 정세, 끊이지 않는 이슬람의 테러와 보복 테러 뒤에는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으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단은 오늘날도 끊임없이 사람들 속에서 살인과 전쟁을 유발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공동체(E.U) 그리고 동북아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는 제3의 경제권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장기적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으로 침체를 맞고 있고 어느 때보다 불안한 정세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런 세계적인 지표 가운데서 현재의 위기를 영적인 위기로 진단하며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6,12)임을 알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d.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중보기도
하나님은 때때로 성도들에게 그 시련(시험)을 통해 믿음이 순수해 지고 성숙하도록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신다.(욥기) 사단이 욥의 재산을 치고 그 후에 자녀들을 치고 그 자신의 몸을 쳐서 병들게 하고 그 아내로 하여금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까지 했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그 친구들이 찾아와 네가 의로우면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겠는가? 할 때도 그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23,10)고 고백한다. 결국 욥은 모년에 큰 복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를 보상하셨다.

현재 어떤 고난을 겪고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당할 즈음에도 피할 길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우리 앞에서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면 어떤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통해 마귀를 이길 수 있다. 40일을 굶주리셨던 주님은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기셨다."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태복음4, 4)고 하셨다.
또한 거품을 물고 간질하는 청년을 고치신 주님은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없다"고 말씀하신다.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길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혈기로 마귀와 싸우다가 넘어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귀신이 올라타서 그 몸을 해하기도 했다.(사도행전) 에베소서에는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the Armour of God)를 입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전신갑주는 완전한 영적인 무장을 의미하며 로마시대 전사가 갖추어 입던 복장과도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6, 13-17)

e.결론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사자는 예로부터 살아있는 동물들을 노린다. 사탄도 교회 안에서 깨어서 교회를 지키고 영적인 사명(전도와 선교,봉사와 구제등)을 감당하려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흩으러 뜨려서(사도행전8,1) 주께 돌아오려는 사람들과 사역자들을 갈라 놓아 천국의 길을 방해한다. 하지만 깨어서 기도하고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면 사탄은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들게 된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마가복음1,13)

우리는 불법을 가져 오고 우리에게 질병을 일으키며 눌리게 하고 가정(에덴)을 파괴하며 교회를 분열시키고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합법자인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승리하도록
갈보리까지 짊어지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결단으로 싸워야 하며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을 바라본다면 마침내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감리교 교리적 선언 제8조는 의의 최후 승리와 영생을 믿노라고 고백한다. 의는 십자가를 통한 주님의 승리요 사탄과 마지막까지 싸워 이긴 최후의 승리이다. 나 자신의 죄와도 싸워야 하지만 항상 사탄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최후의 승리는 마지막까지 이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계속해서 천사란 무엇인가? 가 이어집니다. >

김동학 lovekorea0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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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31, 2016

인자의 의미 / 조정의

인자의 의미 /조정의

우리는 몇 주 전 누가복음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눅 5:24)

“인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호칭일까요? 영어로는 “Son of Man”이며 직역하자면 ‘사람의 아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서 “인자”는 89번이나 등장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싱클레어 퍼거슨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인자라고 부르는 이가 오직 예수님 자신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싱클레어 퍼거슨,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115p).

복음서에서 종종 “인자”라는 호칭을 발견할때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인자”라는 말은 이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갖습니다. 퍼거슨은 “인자”가 “예수님이 스스로를 지칭하실 때 가장 즐겨 쓰시는 표현”이라고 하면서 이 칭호의 풍부한 의미는 “예수님의 정체, 활동, 사역의 의미를 가장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라고 말합니다(115-116pp).

장차 다스리실 하나님
“인자”라는 칭호의 기원이 될만한 구절은 바로 다니엘서 7장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son of man)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다니엘이 묘사하는 “인자”는 단지 인성이 강조된 겸손한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와 영원한 나라를 다스리실 분이십니다. 계속된 다니엘 7장 말씀은 그 왕께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분의 권세와 왕권의 영원함을 찬양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 7:27)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가 장차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할 아기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예수님이 왜 스스로를 “인자”라 하셨는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이로서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무궁한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퍼거슨은 그래서 “인자”라는 호칭은 “단순히 신성과 구분되는 인성을 강조하려는 것 이상의 의도가 있다”고 말하면서 “비할 데 없는 승리와 장엄, 영광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참 인간
하지만 성경에 “인자”가 참 사람으로서 인간을 가리킨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부르실때 93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인자야,” 예: 2:1; 3:1; 4:1; 5:1; 8:5; 12:2; 39:1; 47:6). 다른 인간들과 구별하여 에스겔을 사랑으로 부르신 호칭이 “인자”였습니다. 또한 시편 8편에서도 다윗이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찬양하면서 “인자가 무엇이관대”라고 노래하는 것을 봅니다(시 8:4). 이는 참 인간을 가리키며 퍼거슨의 말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순기능인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피조물에게 전하는 선지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드려야 할 예배를 지성적으로 표현해 내는 제사장,” “예배자”의 역할을 하도록 지음받은 참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스스로를 “인자”라고 칭하실때,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인간으로서의 역할, 아담이 실패한 그것을 두번째 아담으로서 예수님께서 참 사람으로서 이루실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가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취해 하나님의 동산인 세상을 땅 끝에 이르기까지 질서정연하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사랑과 친밀함을 경험하고,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는 것 모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다 이루실 분이다(125-6pp)

퍼거슨은 복음서에 사용된 “인자”가 세가지 범주에서 쓰였다고 말합니다. 그 범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인자”라 부르실때 이 세 범주 중 하나의 의미를 갖습니다.

1.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천국을 세우신다(복음 전파)
2. 예수님은 고난받는 인자로 천국을 사신다(희생)
3. 예수님은 승리하신 인자로 천국을 완성하실 것이다(장차 왕으로 오실 것)

1.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천국을 세우신다(복음 전파)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눅 5:24)

예수님은 침례 받으시면서 하나님의 특별히 택하심을 받은 사랑받는 자라 부르심을 입었습니다(마 3:17). 둘째 아담으로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마 4:1-11).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만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마 4:23-25; 참고: 고전 4:20). 마태복음 5-7장에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2. 예수님은 고난받는 인자로 천국을 사신다(희생)
예수님은 단지 천국을 선포하시고 능력으로 증명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받으심으로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참 사람 “인자”로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퍼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비록 타락한 피조물일지라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흉하게 일그러졌거나 뒤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비췄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 우리가 본래 유지해야 했던 존재의 그림자나마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되려면 예수님은 소위 밑바닥까지 내려가셔서 끔찍한 분열을 경험하셔야 했다. 새로운 조화와 새로운 인류를 만들기 위해 죄로 취급받고(고후 5:21), 저주를 감당하고(갈 3:13), “인간이 아닌 벌레”가 되셔야 했다(139p)

3. 예수님은 승리하신 인자로 천국을 완성하실 것이다(장차 왕으로 오실 것)
죽기까지 고난 받으심으로 천국을 사신 예수님은 장차 그것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눅 23:69)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8-19)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의 백성들 안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 이땅에 확장되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니엘의 예언처럼 인자가 오셔서 그분의 나라를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물리치고 심판하시며 모든 민족과 나라와 백성들을 굴복시키고 영원한 왕으로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실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봅시다. 참 인자시요 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만물을 아버지께 돌려 드릴 것입니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빌립보서 2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지극히 높이셨음을 말하면서 그 궁극적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퍼거슨의 마지막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며 중재자, 대속자, 구원자, 왕이시다. 예수님은 찬양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로 이끄신다. 예수님은 다시 아버지께 “오셔서,” “아버지, 이 모두가 아버지의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께서 구속하신 백성들을 대표해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시길 원한다고 고백합니다”라고 말하실 것이다.

머릿속에 이 장면을 그려 보라. 인자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보좌로 와서,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머리로서 그 보좌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 모습을 바라보라. 그리고 영광스러운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앞에 모든 무릎이 굴복하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된다.

우리가 그 때 그 자리에 있기를!
성부께서 성자를 영화롭게 하는 모습을 보기를!
“아버지, 나의 전부가 되시옵소서”라고 말하게 되기를!
그리고 물론 하나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은 영원한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예수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148p).

인자의 의미는 이렇게 풍부합니다. 참 사람으로서 망가진 사람들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그들에게 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진리의 말씀과 능력의 말씀으로 선포하시고 장차 그 나라의 왕으로서 그 나라를 완성시키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실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아름답고 놀라운 호칭이 바로 “인자”입니다.

Friday, July 15, 2016

신약시대의 성령님!

신약시대에는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오시며 또 오신 후에는 영원히 거하신다. 이것은 신약성도에게 주신 놀라운 복이며 특권이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케하여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에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믿는 자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은 영원히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4:16)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 NIV)
또한 에베소서 1: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표준새번역)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Having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혜와 힘을 공급해주신다. 또 그는 항상 우리를 위로 격려하신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하며(엡 4:30),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하고(살전 5:19) 또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갈 5:16).

에베소서 4장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은 구속의 날을 대비해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And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with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redemption.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갈라디아서 5장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So I say, live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For the sinful nature desires what is contrary to the Spirit, and the Spirit what is contrary to the sinful nature. They are in conflict with each other, so that you do not do what you want.

우리는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고 떠나시지 않는 성령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