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2, 2016

제4강 마귀(Satan)란 무엇인가? / 김동학

제4강 마귀(Satan)란 무엇인가?
-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마귀를 이기는 길

제4강 마귀(Satan)란 무엇인가?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 9)

사단 혹은 마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꾀는 존재로 인간을 만들기 전부터 존재했던 자다. 이사야 14장 12절에는 마귀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이사야14,12) 본래 마귀는 하나님 나라에서 찬양하는 일을 맡은 천사 '루시엘'에서 기원한다. 이 루시엘이 하나님과 대적하며 그와 비기리라고 하면서 천사들 가운데 2/3를 데리고 반역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그 자리에서 쫓아내시고 결국 쫓겨난 그가 '루시퍼'가 되어 사람을 괴롭힌다. 어쩌면 동화얘기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탄이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짐작케한다.

창세기 3장에도 뱀으로 위장한 마귀는 하와에게 다가와 하나님이 그 선악과를 참으로 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유혹한다. 이 때 마귀가 인간을 꼬인 말은 다름이 아니라 네가 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될까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꼬인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욕심이 결국 사탄의 꼬임에 빠져 낙원을 상실하게 되며 생명을 잃게 된다. 사탄은 바로 하나님같이 되라고 우리를 꼬득이는 마귀이며 영적인 존재로서 살아있는 악한 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마귀가 없었다면 인간은 범죄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인간의 형상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한 인간에겐 끊임없이 창조자와 비기려는교만이 있고 사탄은 끝까지-마지막 심판 때 까지 남아서 인간을 괴롭힐 것이다.

이 마귀는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끝까지 방해했으며 오늘 날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속에서 마귀는 합법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을 지옥으로 끌어가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사탄은 내 마음 속에 찾아와 악한 꾀로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교활한 존재로 움직이고 있다.

a. 사단(마귀)의 정체
전술한 대로 사단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계명성'(루시퍼)이다. 이 사단은 이사야서에 의하면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이사야 14,13)고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또 이 사단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이사야14,14)하면서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한 자다. 따라서 사단은 자기의 위치(찬양하는 일)를 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찬양을 받으려고 자기 위치를 벗어났고 직분을 떠난 자이다. 이 마귀는 옛 뱀(창세기3,1)으로 위장하여 첫 사람인 아담의 아내인 하와를 꾀이고 마침내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나온다.

사탄(사단)이란 말은 "이간시키는 자" "참소자" "무너뜨리고 갈라지게 하는 자"로 부르는데 이 사단이 역사하는 곳에는 분열과 비판, 찢어지고 갈라지는 인간의 비극이 일어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가정을 갈라놓고(separate),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당을 짓게 만들고 형제와 형제 사이를 이간시켜서 미워하게 만들고 마침내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며 마지막엔 결국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악한 영이다.

사단은 영적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영적으로라야 분별이 가능하며 이 사탄을 물리칠 능력도 인간의 힘으로는 물리칠 수 없고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라야 사탄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거짓의 아비요 거짓 말장이인 마귀는 지금도 사람들 속에 거짓을 집어 넣어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늘 깨어서 마귀에게 시험받아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b. 사단의 조직
사단은 그들 나름대로의 조직(사단의 회)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요한계시록2, 9)는 말씀과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요한계시록3,9)에 기록하고 있다.하나님의 사자들(천사론)에서 상세히 다뤄지겠으나 영적인 세계의 질서에서도 왕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천군 천사들이 있듯이 사단도 많은 부하들(마귀와 귀신들,악령들)을 거느리고 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한일서3,8)

사단의 최정점에는 사탄(사단)이 있다. 곧 마귀의 왕이요 악령들의 대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 사탄은 예수님을 끝까지 방해하며 때때로 제자들에게(베드로)도 예수님의 길을 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메시야고백을 한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잡혀 죽을 것을 말하자 예수님께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고 말씀하셨다.<<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태복음16,23)

사단(사탄)은 예수님을 방해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이 그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들었고 그는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때 우리는 예수께서 잠시 인간적인 고뇌 곧 마귀가 나타나 그의 마지막 헌신(십자가를 지는 것)을 방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의 한 장면) 뿐 만 아니라 이 사단은 자기의 졸개들(귀신과 악령들)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각종 질병과 고통을 가져오는 존재로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고쳐 주셨는데 바로 이 질병들이 마귀와 그의 졸개들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질환도 사실 알고 보면 그 뒤에는 마귀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살인,간음,불면증,자살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는 원인 뒤에는 무수한 악한 영의 역사가 존재한다. 최근 발생한 한 방송사 생방송의 성기 노출 사건도 알고 보면 연예나 문화 뒤에서 활동하는 악한 사단(마귀)와 귀신들의 역사이다.

사단은 귀신들을 다스리며 이 귀신들을 통해 사람을 더럽히고(죄짓게 하는 일) 죽이고 살인하게 하며 악한 일을 하게 하는데 그 열매가 모두 사탄이 그 배후에 있는 것이다. 목회자의 타락과 교회의 분쟁 뒤에도 사탄이 도사리고 있으며 교회는 깨어서 이 사탄의 출현을 알리고 영으로써 대결하지 않으면 결국 그의 밥이 되고 만다.

c. 사탄에 빠진 인간의 결과-죄와 살인, 전쟁
사탄은 앞에서 인간을 타락시키고 살인하게 한다. 예수를 배반한 갸롯 유다에게도 여지없이 사단이 들어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요한복음13,26-7)
갸롯 유다가 자신의 생각으로 범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나중에 그 은전을 돌려 주었으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거절했고 결국 자살을 한 대목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고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 되었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관계를 파괴시키는 사탄은 오늘날 민족간의 전쟁과 종족 분쟁등에도 관여하며 세계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핵문제 때문에 불안한 한반도와 주변의 정세, 끊이지 않는 이슬람의 테러와 보복 테러 뒤에는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탄이 도사리고 있으며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단은 오늘날도 끊임없이 사람들 속에서 살인과 전쟁을 유발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공동체(E.U) 그리고 동북아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는 제3의 경제권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장기적인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으로 침체를 맞고 있고 어느 때보다 불안한 정세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런 세계적인 지표 가운데서 현재의 위기를 영적인 위기로 진단하며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6,12)임을 알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d. 사단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중보기도
하나님은 때때로 성도들에게 그 시련(시험)을 통해 믿음이 순수해 지고 성숙하도록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신다.(욥기) 사단이 욥의 재산을 치고 그 후에 자녀들을 치고 그 자신의 몸을 쳐서 병들게 하고 그 아내로 하여금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까지 했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그 친구들이 찾아와 네가 의로우면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하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겠는가? 할 때도 그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23,10)고 고백한다. 결국 욥은 모년에 큰 복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를 보상하셨다.

현재 어떤 고난을 겪고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당할 즈음에도 피할 길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우리 앞에서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면 어떤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통해 마귀를 이길 수 있다. 40일을 굶주리셨던 주님은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기셨다."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태복음4, 4)고 하셨다.
또한 거품을 물고 간질하는 청년을 고치신 주님은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없다"고 말씀하신다.
사탄과 싸워 이기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는 길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혈기로 마귀와 싸우다가 넘어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귀신이 올라타서 그 몸을 해하기도 했다.(사도행전) 에베소서에는 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the Armour of God)를 입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전신갑주는 완전한 영적인 무장을 의미하며 로마시대 전사가 갖추어 입던 복장과도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6, 13-17)

e.결론

마귀는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사자는 예로부터 살아있는 동물들을 노린다. 사탄도 교회 안에서 깨어서 교회를 지키고 영적인 사명(전도와 선교,봉사와 구제등)을 감당하려는 사람들을 넘어뜨리고 흩으러 뜨려서(사도행전8,1) 주께 돌아오려는 사람들과 사역자들을 갈라 놓아 천국의 길을 방해한다. 하지만 깨어서 기도하고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면 사탄은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들게 된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마가복음1,13)

우리는 불법을 가져 오고 우리에게 질병을 일으키며 눌리게 하고 가정(에덴)을 파괴하며 교회를 분열시키고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가는 합법자인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승리하도록
갈보리까지 짊어지신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결단으로 싸워야 하며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을 바라본다면 마침내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감리교 교리적 선언 제8조는 의의 최후 승리와 영생을 믿노라고 고백한다. 의는 십자가를 통한 주님의 승리요 사탄과 마지막까지 싸워 이긴 최후의 승리이다. 나 자신의 죄와도 싸워야 하지만 항상 사탄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최후의 승리는 마지막까지 이 길을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계속해서 천사란 무엇인가? 가 이어집니다. >

김동학 lovekorea0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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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ugust 31, 2016

인자의 의미 / 조정의

인자의 의미 /조정의

우리는 몇 주 전 누가복음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으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눅 5:24)

“인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호칭일까요? 영어로는 “Son of Man”이며 직역하자면 ‘사람의 아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서 “인자”는 89번이나 등장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싱클레어 퍼거슨이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인자라고 부르는 이가 오직 예수님 자신밖에 없다”는 것입니다(싱클레어 퍼거슨,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115p).

복음서에서 종종 “인자”라는 호칭을 발견할때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어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인자”라는 말은 이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갖습니다. 퍼거슨은 “인자”가 “예수님이 스스로를 지칭하실 때 가장 즐겨 쓰시는 표현”이라고 하면서 이 칭호의 풍부한 의미는 “예수님의 정체, 활동, 사역의 의미를 가장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라고 말합니다(115-116pp).

장차 다스리실 하나님
“인자”라는 칭호의 기원이 될만한 구절은 바로 다니엘서 7장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son of man)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다니엘이 묘사하는 “인자”는 단지 인성이 강조된 겸손한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와 영원한 나라를 다스리실 분이십니다. 계속된 다니엘 7장 말씀은 그 왕께서 모든 악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분의 권세와 왕권의 영원함을 찬양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단 7:27)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가 장차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할 아기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예수님이 왜 스스로를 “인자”라 하셨는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이로서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무궁한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퍼거슨은 그래서 “인자”라는 호칭은 “단순히 신성과 구분되는 인성을 강조하려는 것 이상의 의도가 있다”고 말하면서 “비할 데 없는 승리와 장엄, 영광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참 인간
하지만 성경에 “인자”가 참 사람으로서 인간을 가리킨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에스겔서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부르실때 93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인자야,” 예: 2:1; 3:1; 4:1; 5:1; 8:5; 12:2; 39:1; 47:6). 다른 인간들과 구별하여 에스겔을 사랑으로 부르신 호칭이 “인자”였습니다. 또한 시편 8편에서도 다윗이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찬양하면서 “인자가 무엇이관대”라고 노래하는 것을 봅니다(시 8:4). 이는 참 인간을 가리키며 퍼거슨의 말에 따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순기능인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피조물에게 전하는 선지자,”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드려야 할 예배를 지성적으로 표현해 내는 제사장,” “예배자”의 역할을 하도록 지음받은 참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스스로를 “인자”라고 칭하실때,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인간으로서의 역할, 아담이 실패한 그것을 두번째 아담으로서 예수님께서 참 사람으로서 이루실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자가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취해 하나님의 동산인 세상을 땅 끝에 이르기까지 질서정연하고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고,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사랑과 친밀함을 경험하고,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는 것 모두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다 이루실 분이다(125-6pp)

퍼거슨은 복음서에 사용된 “인자”가 세가지 범주에서 쓰였다고 말합니다. 그 범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인자”라 부르실때 이 세 범주 중 하나의 의미를 갖습니다.

1.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천국을 세우신다(복음 전파)
2. 예수님은 고난받는 인자로 천국을 사신다(희생)
3. 예수님은 승리하신 인자로 천국을 완성하실 것이다(장차 왕으로 오실 것)

1.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천국을 세우신다(복음 전파)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눅 5:24)

예수님은 침례 받으시면서 하나님의 특별히 택하심을 받은 사랑받는 자라 부르심을 입었습니다(마 3:17). 둘째 아담으로서 사탄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마 4:1-11).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의 권세와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만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마 4:23-25; 참고: 고전 4:20). 마태복음 5-7장에서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에 대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2. 예수님은 고난받는 인자로 천국을 사신다(희생)
예수님은 단지 천국을 선포하시고 능력으로 증명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받으심으로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참 사람 “인자”로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퍼거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비록 타락한 피조물일지라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다고 역설한다. 그것은 흉하게 일그러졌거나 뒤틀렸을 수도 있다. 아니면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비췄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으로, 우리가 본래 유지해야 했던 존재의 그림자나마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회복되려면 예수님은 소위 밑바닥까지 내려가셔서 끔찍한 분열을 경험하셔야 했다. 새로운 조화와 새로운 인류를 만들기 위해 죄로 취급받고(고후 5:21), 저주를 감당하고(갈 3:13), “인간이 아닌 벌레”가 되셔야 했다(139p)

3. 예수님은 승리하신 인자로 천국을 완성하실 것이다(장차 왕으로 오실 것)
죽기까지 고난 받으심으로 천국을 사신 예수님은 장차 그것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눅 23:69)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8-19)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의 백성들 안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보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헌신과 순종을 통해 이땅에 확장되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니엘의 예언처럼 인자가 오셔서 그분의 나라를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물리치고 심판하시며 모든 민족과 나라와 백성들을 굴복시키고 영원한 왕으로 영원한 나라를 통치하실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봅시다. 참 인자시요 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만물을 아버지께 돌려 드릴 것입니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빌립보서 2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지극히 높이셨음을 말하면서 그 궁극적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퍼거슨의 마지막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며 중재자, 대속자, 구원자, 왕이시다. 예수님은 찬양 가운데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로 이끄신다. 예수님은 다시 아버지께 “오셔서,” “아버지, 이 모두가 아버지의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께서 구속하신 백성들을 대표해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시길 원한다고 고백합니다”라고 말하실 것이다.

머릿속에 이 장면을 그려 보라. 인자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보좌로 와서,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머리로서 그 보좌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 모습을 바라보라. 그리고 영광스러운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앞에 모든 무릎이 굴복하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된다.

우리가 그 때 그 자리에 있기를!
성부께서 성자를 영화롭게 하는 모습을 보기를!
“아버지, 나의 전부가 되시옵소서”라고 말하게 되기를!
그리고 물론 하나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은 영원한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예수님의 소유가 될 것이다(148p).

인자의 의미는 이렇게 풍부합니다. 참 사람으로서 망가진 사람들을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그들에게 참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진리의 말씀과 능력의 말씀으로 선포하시고 장차 그 나라의 왕으로서 그 나라를 완성시키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실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아름답고 놀라운 호칭이 바로 “인자”입니다.

Friday, July 15, 2016

신약시대의 성령님!

신약시대에는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오시며 또 오신 후에는 영원히 거하신다. 이것은 신약성도에게 주신 놀라운 복이며 특권이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케하여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에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믿는 자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은 영원히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4:16)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 NIV)
또한 에베소서 1: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표준새번역) (And you also were included in Christ when you heard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of your salvation. Having believed, you were marked in him with a seal, the promised Holy Spirit,)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혜와 힘을 공급해주신다. 또 그는 항상 우리를 위로 격려하신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시므로, 우리는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하며(엡 4:30),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하고(살전 5:19) 또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갈 5:16).

에베소서 4장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여러분은 구속의 날을 대비해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And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with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redemption.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갈라디아서 5장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So I say, live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For the sinful nature desires what is contrary to the Spirit, and the Spirit what is contrary to the sinful nature. They are in conflict with each other, so that you do not do what you want.

우리는 우리 속에 영원히 거하고 떠나시지 않는 성령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Saturday, June 18, 2016

카도스의 은혜/옥한흠

💥'카도스'의 은혜💥
/ 옥한흠 목사

우리는 '사랑' 하면 항상 감정을 앞세우는 버릇이 있다. '에로스'의 사랑을 생각하는 것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이와 같은 사랑은 거의 대부분 감정에 뒤따른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든 사람이 욕하는 그 남자를 또는 그 여자를 나는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으니 참 희한한 일 아닌가?

'에로스'의 사랑은 이런 감정을 빼놓고는 논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감정이 동하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슴이 차가워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이다.

'아가페'의 사랑은 의지적인 사랑이다.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랑이다. 마음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시니까 싫든 좋든 감정이 있든 없든 간에 행동으로 옮기는 그런 사랑이다.

이와 같은 사랑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생명을 걸다시피 결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만이 감히 이 사랑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카도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요한복음 15:12)의 은혜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를 아는 그 은혜가 있을 때만이 우리가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것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부족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카도스'의 은혜가 부족한 것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은혜를 받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만큼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Wednesday, May 18, 2016

예정설과 인간의 책임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 김진규 교수

예정설과 인간의 책임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 구원을 말하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한 성경의 답

어느 날 한 학생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교수님, 예정설에 대해서 설명 좀 해 주세요?" "예정설이 정말 성경에 있습니까?" "성경에 있다면 어디에 있습니까?" "제 친구는 '예정설이 맞는다면 전도는 왜 하느냐'라고 질문을 했어요."

아마 오늘날 장로교인들과 감리교인들이 대화를 하면서 가장 충돌을 많이 하는 부분이 '예정설 교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 학생도 감리교인과 대화를 한 후에 고민에 빠져 질문을 해 온 것이다.

성경은 예정설에 대해서 뭐라고 가르치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예정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나는 에베소서 1:4-5의 말씀을 찾아 보여 주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다고 가르친다. 여기뿐만 아니라 로마서 8:29-30에도 예정의 교리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을 미리 아셨고 미리 정하셨고 또 그들을 부르셨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은 선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분명한 예정의 교리를 입증하는 실례이다. 이들의 선택과 버림은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어거스틴이나 칼뱅 등은 예정의 교리를 확고하게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정의 교리를 사용할 때는 조심할 점이 있다. 만약 예정의 교리를 숙명론적으로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믿을 사람, 믿지 않을 사람을 정하셨으니 전도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실제로 미국의 장로교 역사에 있었던 일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 장로교단에서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를 거부했는데, 이는 바로 이 예정의 교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은 믿을 테니 선교사를 파송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성경적인 생각인가? 아니다. 성경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명하고 있다(마28:18-20).

침례교단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선교사를 열심히 파송했다. 그래서 사실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에는 침례교회가 많다고 한다. 단 아시아 국가 중에 한국만이 예외적이다. 이런 식으로 예정론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예정론을 사용하면 전도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사람 믿을 테니 내가 전도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각은 성경을 한쪽 면만 강조한 잘못된 생각이다.

중요한 점이 바로 이 점이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지만 우리 인간은 누가 선택을 받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거절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예정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가 나중에 예수님을 믿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그가 마치 하나님의 예정을 받은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라고 수없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인간의 구원을 미리 예정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도록 명하시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기를 원하신다는 사실도 말씀하셨다. 우리가 전도할 때는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해서 전도해야 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이 구원을 받을 것처럼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강조한 나머지 구원은 인간의 결정에 달렸다고 주장하면 알미니안주의에 빠지게 된다. 사실 이런 말씀만 모아서 보면 인간의 구원이 자신의 결정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예정설을 믿는 장로교인이 알미니안 교리를 믿는 감리교인과 대화를 하면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질문한 학생은 자신과 대화를 나눈 그 감리교인이 "만약 모든 것을 예정한 하나님이라면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고까지 했단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모순처럼 보이는 교리를 접근해야 하는가?

해결책은 성경대로 믿는 수밖에 없다.

성경은 사실 2가지를 동시에 가르친다.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미리 결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구원은 믿으면 받는다고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가르친다.

이런 교리적인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가?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렸다고 본다. 예정설은 하나님의 주권의 관점에서 교리를 설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버릴 자를 정하셨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후자는 인간의 관점에서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은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달린 것처럼 보인다. 사실 복음을 전할 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우리는 전도한다. 어느 누구도 전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예정하셨다면 예수를 믿게 될 겁니다"라고 전도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복음을 듣는 자가 결정하면 구원을 얻는 것처럼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는 장로교인으로서 분명히 밝혀 두는 바는, 그렇게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외치지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마음 문이 열리는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고 믿는다. 이게 사실 성경의 가르침이다(고전12:3).

유명한 개혁주의 변증학자인 코넬리우스 반틸(Conelius Van Til, 1895-1987)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제한 개념'(limiting concept)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인간의 책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의 주권을 침입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성경이 동시에 가르치는 교리이다. 이 두 개념이 서로에게 제한을 가한다고 해서 '제한 개념'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나님의 예정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은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반면에 믿으면 모두 구원을 받기 때문에 구원은 인간에게 모두 달렸다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침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분명히 구원받을 자를 예정하셨다. 동시에 성경은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요3:16). 이렇게 상호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이다.

기도는 어떤가?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걸까? 그런데 성경은 "너는 부르짖으라"고 명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는 부르짖어야 한다. 성경의 모든 교리는 '외관상 모순'(apparent contradiction)처럼 보인다고 코넬리우스 반틸 교수는 말한다(여기 영어 apparent라는 말은 '외관상'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생각을 인간의 좁은 머리 안으로 제한하려는 극단을 조심하시라!

김진규 / 백석대학교 구약학 교수
김진규 profj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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