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치유에 대한 이해와 적용
1. 서 론
1)문제 제기
존 윔버(John Wimber)와 케빈 스프링거(Kevin Springer)는 그들의 책, '능력 치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기적과 치유를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어 야한다. 그러한 선물들은 놀라운 것임에 틀림없으나 그것들을 받기 위 해서는 특별한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오늘날 교회의 치유사역에 비록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유는 목회의 사역에 있어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공동체 속에서 당연히 있어야 함을 강조해 주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들에게 건강의 관심사외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별로 많지 않다. 건강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하고 보다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온갖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현세의 건강한 삶을 갖기 위해 온갖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지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 즉 구속의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역설하며 가르쳤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의 질병치유의 구속에도 많은 중점과 비중을 두었음을 성서의 기록에서 살필 수 있고, 사도들 역시도 그 중요함을 인식하고 여러 질병치유의 사건들을 기록했으며 그 치유의 사건 또한 구속에 따랐던 중대한 사건으로 인식해 그들 또한 그러한 능력 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보통의 정통적 기독교 성직자들은 질병치유를 동반할 수 있는 구속엔 그리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질병치유를 동반한 구속사역에 대한 관심은 양분되어왔다. 어떤 관점이 생명력 있는 기독교의 핵심에 더 가까운 것일까? 분명한 것은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신 질병치유의 부분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복음서 안에서 질병치유의 기사를 제외한다면, 누구도 예수의 행위와 메시지에 대한 복음서들의 주제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절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의 말씀을 통한 인간이해, 특히 구속에 한 부분인 치유를 동반한 구속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2.예수의 질병 치유에 대한 이해
질병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체의 온갖 장애로 인한 온갖 병의 일컬음"
"병이란 몸의 일부 또는 몸 전체에 새기는 질병 증상을 말한다."
질병은 장차 다가올 죽음의 표시이다. 모든 질병은 그 안에 죽음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 질병이란 평온 상태가 아니라 무질서한 상태이다. 질병이란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적 또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그 반대되는 상태를 질병"이라고 한다.
J.W.Provansha는 그의 논문에서 "의학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분은 히포크라테스가 아니라 바로 겸손한 갈릴리 사람 예수가 역사상의 실전 인물보다도 더 많이 의술에 그 본질적 의미와 정신을 남겨주었다. 의사들에게 그의 정신이 없으면 의학은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타락하고 그 원리적 규범은 단순한 법적 체계가 되고 만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다.
예수는 방법들과 규범들에 사랑이라는 조정약을 준다. 만약 사랑이라는 조정약이 없다면 참된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의학의 아버지는 코스 섬의 히포크라테스가 아니라 나사렛 성읍의 예수였다."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의 기본적 견해와 의식 체계 속에서 나사렛 예수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 지도자는 없다. 예수는 사람들의 육체 및 정신 건강에 대해 여하한 다른 종교 지도자란 종교 체계가 기울인 것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를 의심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1)질병 치유의 기록(신약)
치유의 일반적인 정의는 "치료에 의하여 병이 나음"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사역은 세 가지 특성을 가지는 사역, 즉 전도와 가르침, 그리고 질병치유의 사역으로 묘사된다.
첫째로, 예수는 '복음'을 삶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된 하늘나라의 현재적 실재를 선포하였다.
둘째로, 그는 듣는 자들에게 그들의 삶을 하나님 및 그의 나라와 어떻게 연관시켜야 하는가를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은 예배와 사고와 행동의 여러 국면들이 사람들의 삶과 역사속에 새로운 방법으로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를 보여 주었다.
세째로, 그는 질병치유를 하였다. 그는 몸과 마음이 병든 자들, 즉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거나 귀신에게 시달리는 자들에게 육체 및 정신의 건강을 가져다 주었다.
신약에 기록된 예수의 질병치유 사역은 그가 그의 가르침들에서 이웃에 대한 동정과 돌봄을 끊임없이 강조한 것과 막을 같이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아가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며, 그의 가르침에 있어 매우 기본적인 국면이었다.그러므로 예수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들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의 육체 및 정신의 병든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고통스러운 질환들, 즉 육체적 장애들이나 정신적 혹은 정서적 질병들을 치유해 주는 것이다.
예수는 질병과 귀신들림은 세계가 악하다는 주된 증거로 생각하였으며, 하나님의 대행자인 "메시아"로서 그것들을 다룸으로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치유행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직접적 증거로 일컬어졌다. 그의 질병치유들은 감옥에서 괴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요한이 예수가 정말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데 있어 필요로 하였던 표적이었다.
그리스도의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사람들의 육체 및 정신의 질병을 고치는데 바쳐졌으며, 그의 제자들이 동일한 기본적 사역을 계속 감당하기를 그가 얼마나 기대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이 기본적인 사역에 임무를 얼마나 훌륭하게 수행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2)질병 치유의 기록(구약)
성경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 최초의 죄악이 질병을 가져왔다고 말하며, 도한 부끄러워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이 최초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질병들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한다는 갓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육체적 질병은 전염병.피부병.신체적 기형과 불구. 소아과 질병 임신 및 출산관게 질병,치명적 중병과 노쇠로 인한 질병,나병 등으로 분류할 수가 있으며, 또한 정신적 질병은 미친 경우 등으로 분류해 볼 수가 있다.
3)질병치유 이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성경을 보면 크게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즉 잠언적으로 말씀하시고 하나의 이야기로서 말씀하시며 설교로서 비유로 말씀하시며, 예수의 행위 그 자체로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이적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 여섯 가지의 말씀 중 병고침에 해당되는 말씀이 바로 이적을 통한 말씀이다
이적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 이적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 그 목적이 있다.신약성경에 예수가 행한 이적 서른 다섯 가지 정도 중 자연에 관계되는 일곱 가지 이적을 제외한 나머지 80퍼센트 정도는 전부 병을 고친 이적이기 때문에 이적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다.
예수는 인간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도덕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그가 보일 수 있는 태도는 동정의 태도였다. 그는 질병과 고통의 원인들이 인간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특유의 능력으로 즉시 병자들에게 반응할 수 있었다.
예수는 치료에 들어가기 앞서 병자의 죄를 행위를 물었다는 암시는 복음서 어떤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그들의 필요에 부응했다. 예수는 사람들이 영혼 혹은 실체의 정신 속에서 만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졌다. 악한 영들이 실재를 알았다. 어떻게 하나님의 실재가 개인을 감동시켜서 그러한 영을 쫓아낼 뿐아니라, 그 자리에 무엇인가 다른 것을 들어 앉힐 수 있는지도 알았다.
예수는 사람들의 지배할 수 있는 악한 실체들을 격퇴해서 그것들이 다시는 사람들을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을 그가 갖는 주된 임무중의 하나로 알고 있었다. 예수에게 어떤 한가지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사랑에 찬 영의 치유 능력을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도덕적, 정신적 및 육체의 질병들에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새로운 능력으로 인간을 좌절과 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방법을 드러내 보였다.
예수는 또한 당시의 유대 및 그리스 문화의 거의 전부에 반대하면서 그의 견해의 진실성을 증명하였다. 그는 병을 고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외적 관행에 대한 율법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적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 그의 치유들 가운데 적어도 6회를 안식일에 행했다.
이상으로 예수의 치유 행위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심층적 인식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체험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인간에 대해 가진 그의 이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의 치유 사역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한 그가 주변 사람들과 나눈 교제의 성격과 그가 내린 명령들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게 됨을 주장한다.
4)치유질병의 종류
(1)귀신들림(DEMON POSSESION)
예수께서 치유해 주셨던 가장 보편적인 질병은"귀신들림"이라는 <정질환>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하고 지향해 나갈 수 있는 삶의 기반과 의미를 상실하였다. 그들은 그들에게 부딪쳐 오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들에 대처해 나갈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심층적으로 붕괴되어 갔고 그로 인해 많은 정신질 환자를 야기시켰다.
예수께서 치유해 주셨던 정신 질환 중에는 간질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질병도 역시 귀신들림으로 간주되었다. 마가복음 9장 17절-27절에 따르면, 이 질병에 걸렸던 사람은 작은 소년으로서 예수의 제자들은 그 아이의 질병을 치유해 줄 수 없었다.
또한 성서에는 예수께서 치유해 주셨던 다른 육체적 질병들도 귀신들림으로 간주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질병들이 육체적 원인으로 인한 것들이기 보다는 심리적인 원인으로 생각됐기 때문일 것이라 사료된다.
(2)눈멂
이 병은 무서운 질병이자 저주였다.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들 중에 하나였던 점을 고려해 볼 때 성서에 이 질병의 치유에 관한 예들이 많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3)중풍병자
중풍병은 일종의 뇌졸증으로 뇌혈관이 터져서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는 병인데 한 번 마비된 수족은 좀처럼 잘 낫지 않는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중풍병을 무서운 죄에 걸린 사람들에게 생기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다. 이 중풍병자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행동도 자유스럽지 못했다. 더욱이나 무서운 죄인이라는 판단까지 받는 고난의 삶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그 예수님이 자신이 살고 있는 있는 가버나움에 오셨다. 그런데 그 집은 이미 예수님에 대핚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중풍병자는 포기하지 않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지붕에 올려졌고, 친구들이 뜯고 뚫어낸 기와와 천장을 통해 침상과 함께 예수님 앞으로 내려졌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을 치료해 주셨다.
(4)문둥병
문둥병은 매우 무서운 질병이었으며 그 발명 초기엔 다른 질병으로 오인되기 쉬웠다.따라서 이 병의 치유는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5)죽은자를 살리심
예수께서 죽은자를 살리신 것에 관한 세 기사들은 다소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첫째 기사는 마태복음 9장18절 이하와 마가복음 5장 22절, 누가복음 8장 41절 이하에 기록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사이다.
두 번째 기사는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고(예루살렘 입성하시기 전 베푸셨던 가장 큰 기적), 세째로는 누가복음 7장 11-15절에 기록된 나인의 과부 아들을 살리신 것의 기사이다.
(6)여러 질병들을 고치심
예수께서는 이외에도 여러 질병들을 고치셨다. 18년 동안 귀신들린 자(눅13:10-11), 12년동안 혈루병 앓은 여인(마 9:20-22, 막 5:25-29, 눅 8:43-44), 베드로 장모의 열병, 안식일에 고창병, 말고의 떨어진 귀(눅 22:5-51) 등 여러 가지의 병을, 그리고 병명이 명시되지 않은 여러 병을 고치셨다.
예수의 치유에 관한 특별한 서술들은 예수께서 모든 종류의 질병들을 치유해 주셨다는 사실을 나타내 줄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수의 질병치유가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러하듯이, 그 당시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의학지식이나 종교적 치유 관습에 특별히 상반된 유형의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때로 비교적 쉽게 치료될 수 있었던 기능적인 장애들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서술은 오늘날 정신적 질환들로 알고 있는 질병들의 치유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예수의 치유를 목격했던 사람들이 매우 놀랐다는 사실을 거듭하여 언급하고 이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질병치유의 기사들은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명백한 사실은 예수께서 모든 종류의 질병들을 치유해 주셨다는 점과 그의 질병치유가 단순한 질병의 증상들을 완화시킨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완전한 질병치유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상자의 치료엔 환자와 주변 인물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결부되어 있었음을 주장한다.
4)질병치유의 방법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여러 행동을 취하셨다. 치유해 주셨던 질병의 종류가 많은 만큼, 치유 방법이 매우 다양했다.
(1)안수
치유방법은 말을 거시는 것과, 그들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었다. 손을 댄다는 것은 안수를 칭한다. (막 6:5, 눅 22:51)
(2)침과 진흙 사용
예수의 질병치유 기사 중에는 예수께서 침을 사용하시거나 침에 진흙을 섞어서 사용하셨던 것에 관한 3가지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침을 그 자신의 인격과 권능의 매개체로 사용하였다.
마가복음에는귀먹고 어눌한 사람에 대해 혀에 침을 발라 예수의 치유 기사가 기록("에바다"), 그리고 마가복음 8장 23절에도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소경을 치유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 9장 6-7절에서는 침을 진흙에 섞어서 그 진흙을 소경의 눈에 문지르시고 그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말씀하셨다.
(3)말씀과 명령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요 11;43)와 10명의 문둥병자를 치유해 주셨을 때(눅17:14),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셨을 때(막 5:8),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요 4:50),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혈기 마른 사람을 치유(요 5:8)해 주셨을 때처럼 병자들을 치유해 주심에 있어서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이러한 기적을 행하셨다.
(4)옷을 만짐
예수의 치료는 때로 병자들이 예수의 몸에 손을 대거나 그의 옷을 만졌을 때에 일어나기도 했다. (12해 혈루병 막 5;25-34)
(5)기름 사용
기름을 사용하셨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기름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마가는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보냄을 받았을 때, 기름을 사용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사용하여서 그들을 고쳐 주었다.(막 6:13)
(6)기도
나사로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명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요11:41-44)
반대로 가나안 여인의 딸에 대한 예수의 치유는 바로 그 여인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통한 것이었다.(마15:25-28)
(7)죄에 대한 용서
죄에 대한 용서는 질병치유와 관련하여 두번 언급되어 있다.(막2:5의 중풍병자 기사, 요5:14의 베데스다 못가의 혈기 마른 자를 고치신 기사)
(8)불쌍히 여김
예수께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던 사실이 3차례 언급 되어 있다.
마태복음 14장 14절에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치유해 주셨다. 나인성 과부가 그녀의 죽은 아들 옆에서 우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셨다. 예루살렘 길가의 두 소경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셨다.(마 20:34)
(9)당사자의 믿음
예수의 치유에 있어서 당사자의 믿음이 유력한 요소로 작용하였던 실례들을 찾아볼수 있다.
예를 들면 간질병에 걸린 소년의 아버지에게 질병치유에 있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이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부르짖어 응답 받았다. 이외에도 혈루병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막 5:34), 두명의 소경에게도(마 9:29) "네 믿음대로 되리라"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질병 치유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병자 자신과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요구하셨으며, 더불어 예수 자신의 동정심과 치유의 권능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권능은 예수의 행위와 사람들의 믿음을 통하여 각 개인들에게 효율적으로 나타났다. 예수께서 그의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할 때와 같이 사람들이 그를 전적으로 믿지 않거나, 그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엔 질병치유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의 치유의 본질은 의학적이거나 물리적으로 효과가 있는 방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침과 진흙을 사용하셨으나 그것들을 물리적인 치유력을 지닌 것으로 사용하진 않으셨다. 다시말해 예수는 실제적이며 외적인 도구나 수단들의 사용없이 질병 치유를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의사가 되려는 의도를 지니지 않으셨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의학적인 치유에 관여할 것을 명령하려는 의도도 지니지 않으셨다. 하지만 적대감을 가지 신것은 아니셨다. 예수는 많은 시간을 요하는 최면이나 정신 요법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가 병자와 만나는 시간은 매우 짧았으며, 대부분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더불어 질병을 치유 받은 병자들은 예수와 함께 동행하도록 요청 받지 않고, 대부분 그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받았다.
예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사람들의 전 인격 속에 개입해 들어감으로써, 그들을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시키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를 맺게 하셨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는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던 이유로는 ①동정심, ②질병에 대한 적대심, ③율법의 올바른 적용을 위해, ④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냄, ⑤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⑤죄를 회개하는 것을 도우시기 위하여, ⑥의심에 대한 분노 등의 이유이다.
3.치유와 구원과의 관계
성경은 한결같은 인간은 죄 때문에 구원에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구원하다" 구원을 뜻하는 헬라어 소조 소테리아는 본래 "구출" "보전"' 안녕' 그리고 '속사람의 안녕' 등을 의미하거나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생명의 위험이나 재판의 유죄 판결, 또는 질병으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하기도 하였고 생존을 계속 보전하거나 어떤 것을 보호,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또 건강의 유지, 부, 평화, 곡식의 생육 등 모든 일이 잘되는 것, 곧 복락의 의미와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인간존재 그 자체의 보존, 즉 인간의 본질을 잃지 않는 일을 말하기도 하였다.
구약에 있어서 '구원'이라는 의미는,
1)전쟁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구출을 의미(출13:30, 15:1-2).
2)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계속적 보호자, 구원자로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경우(사 26:1-2, 6:18, 9:6-7)
3)구체적 구원의 곤경보다도 죄악 일반에서의 구출을 의미하는 경우 (겔36:28)
4)종말적 구원으로 인식되며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로 구원받음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구원'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출 받은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구약성경에서 구원은 대표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그 적들로부터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데 사용하였고, 신약성경에서의 구원은 사람들의 사람의 세력, 즉 사탄과 그의 올무에서 자유케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하는데 사용하였다.
가장 위대한 구원의 결정은 죄인이 흑암과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다.복음이 구원의 선포라면 치유는 그 구원의 일부이다. 그리스도는 사역에 있어서 설교와 가르침과 치유는 하나였고 각각은 구원의 선포에 있어서 빠뜨릴수 없는 요소이다.
구약에 있어서는 질병과 아픔은 모든 행운 및 생활 환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편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그 병의 치료자이시다. 이 문제는 시편에도 자주 나타나며 또 성전예배의 기초가 되었다.
신약성경에서도 역시 구약성경과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말과 병을 고친다는 말은 서로 뒤섞이어 사용되었다.
신약성경 안에서는 병고치는 이적이 종종 하나님 나라에 대한 표적으로 나타난다.예수님에게 있는 병고치는 능력은 생명 전체를 소생시키는 신적 능력의 실현이다.
이리하여 치명적 고통에서 구원을 받겠다는 자연적 요구는 생의 의미가 무엇인가 알게 하는 질문으로 바꾸어지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찾으려고 하는 탐구로 바꾸어진다.
예수의 치유 사역 중 예수께서 선포한 '구원'의 개념을 살펴보면, 구원이란 치유를 중심으로 하여 지탱, 이해, 화해 등 목회의 전영역에 속한 개념임을 알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원이 치유이긴 하지만 전인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결국 성경에서 구원이란 '전인적인 것이요, 육체, 정신, 영 모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4.바람직한 치유를 위한 제언
치유 사역이라고 할 때 자칫하면 사역의 대상을 질병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에 있어서는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을 앓고 있는 인간이 사역의 대상이 된다.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는 "치료받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니라 질병이기 때문에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그의 유전적, 환경적, 육체적, 성경적 또는 경제적 측면들이 전인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했다.
심리치료자들과 상담 전문가 및 기독교 사상가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바라는 인간의 발달목표가 전인성(Wholeness)이라는 것에 폭 넓은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 그 자체만을 문제 삼아서 질병과 인간을 분리하려 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의미의 치유목회라고 할수 없을 것이다.
한 인간이 육체적인 부분이 병들면 다른 부분(영적인 면,정신적인 면,)도 따라서 병들게 되며, 한 인간이 병들면 그 주위의 세계(가정, 교회, 직장...)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치유 사역은 병든 인간을 전인적인 치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나아가서는 개인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세계, 공동체의 치유에도 함께 관심을 가지고 연관된 모든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치유활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오성춘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전인적 인간 이해에 기초한 '전인 교육 모델'을 제시하는데 바로 이것은 치유 사역이 추구하는 목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는 인간 존재의 근본을 관계성에 두고 창조주와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의 3단계의 차원에서 회복과 치유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전인성을 향한 교육과 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힐트너는 치유 사역을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1) 치유 사역은 환자의 병을 시인하고 수용하고 이해함과 동시에 환자의 감정에 동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2) 치유 사역은 전인적인 회복에 초점을 두어 육체의 치유와 더불어서 생의 재발견, 인격의 재체계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를 지향해야 하며, 목회자는 전인적인 관심하에서 목회한다.
(3) 그러므로 치유 사역은 종교적 깊이의 차원에서 시작하여 종교적인 회복으로 종결되는 목회이다.
투르나이젠은 치유는 병과 그리스도와의 만남, 치료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앞의 예수의 치유 모델을 통하여 살펴 본 바와 같이 온전한 치유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그의 전존재를 수용하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을 체험함과 동시에,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와의 계속적인 교제를 통하여 풍성한 삶을 지속하는 데로 나아가게하여야 한다.
따라서 온전한 전인으로서의 치유는 마틴
로이드존스(D.Martion Lloyd-jones) 목사가 밝힌 대로 기독교 바같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치유 사역이 추구하는 목표는 질병의 회복만으로 끝나는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그가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보다 높은 영적인 차원을 목표로 하여야한다. 그것은 질병의 고통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참사랑과 그 사랑 앞에 바쳐져야 할 인간의 남은 삶에 대한 자각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교회는 전인적인 치료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통하여, 개인 뿐만 아니라 그 개인을 병들게 하고 있는 공동체의 치유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나아가야 할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바람직한 치유 사역을위해서 노력하고 실천해야 할 몇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치유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목회자든, 성도든 지혜롭게 치유사역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치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지적, 신학적인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로는 치유와 관련된 주제들 및 제기된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제공해 주어야 하며, 교회 안에서 치유의 사역을 실제로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셋째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치유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성령의 치유가 일어날수 있는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로, 상담과 영적 지도의 목회를 해야 한다. 목회자는 상담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영적, 심리적, 또는 신체적 문제를 지닌 개인들에게 치유를 가져다 주도록 도울 수 있다.
목회자는 치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치유의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치유를 위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치유사역에 동참할 때 치유를 통한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리라 본다.
5. 결 론
20세기에 와서 주요 교리 가운데 치유를 주장하는 이단들과 분파는 다음과 같다.
오순절파(Pentecostals), 크리스천 사이언스파(Christian Scientists), 기독교 통일교파(Unity school df Christianity), 신사도 운동파(New Thought movement), 성령파(Spiritists)...
기타 수많은 분파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아서 우리들에게 치유가 교회의 기본적인 과제의 하나라는 점을 일게워 준다.
루터와 칼빈이 치유의 은사가 사도시대에 국한되어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주로 법정 용어인 칭의로 정의하고 칭의는 믿음 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용서의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구원이 인간의 상처와 고통의 치유도 포함한다는 진리에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신약의 치유의 기적을 이성적으로 설명하여 합리화시킴으로서 개신교내의 치유 사역 상실을 초래시켰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사용하셨던 방법들은 다음의 두 가지 작용을 하였다.
즉 예수께서는 병자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일깨워지기를 기다리는 영을 깨워 주셨으며, 이와 동시에 그는 말과 행위와 태도로써 모든 실체들의 창조적인 힘인 하나님의 영과 재창조된 인간들이 교제를 맺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니었다.(헬라적 2분법 사고) 그의 구속의 관심 속에는 인간의 몸을 비롯한 인간 전체가 포함되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질병과 죄에 대한 날카로운 구분, 즉 전자는 몸에 속한 것이고 후자는 영혼에 속한 것이라는 구분이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질병이라는 것은 유기체의 병리학이나 혼란한 생리의 과정에서 나타남 이외에도, 혼란된 인간 관계, 즉 죄책감과 사랑의 결핍이라는 관점에서도 나타남을 주장해 본다.
엘롬교수는 "치유는 언제나 육체적인 동시에 영적이다"고 주장한다. 그는 진정한 치유란 단지 질병의 회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이 회복이후 계속적이 삶의 자세까지 연관시켜서 하나님 앞에서 헌신자의 삶을 사는 것을 완전한 치유로 보고 있다. "회복된 건강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하는 것은 건강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S.HILTNER 도 치유란 단지 육체적 질병에서 치유되는 것으로는 온전한 치유라고 할 수 없으며, 어떤 수단에 의하여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든지 간에 전인적 회복, 즉 구원에의 관심 하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치유란 온전하게 만드는 일, 다시 회복하는 일을 말한다.
결국 치유란 육체적, 정신적, 영적차원 중 어느 부분의 결함에 대한 치료행위이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치유는 몸의 치유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과 회복, 사탄의 박멸이라는 구속적인 관점에서 전인 치유, 지/정/의가 완전히 조화된 모습, 곧 정신과 영혼을 함께 치료하는 온전한 구속의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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