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4, 2018

구약성경과 치유 

✳️구약성경과 치유 

/ 박미섭 (평택대학교 겸임교수 / 구약학)

1. 들어가는 말 

구약성경에서 치유와 회복의 의미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동사는 ‘라파’이다. 이 동사 및 같은 어근에서 온 여러 단어들은 אפר 어근은 동사 형태(‘라파’/ ‘리페’/ ‘니르파’/ ‘히트라페’)로 67회, 명사 형태(‘마르페’/ ‘리프우트’/ ‘르푸아’)로 20회, 총 87회 등장한다(에벤 쇼산 콘코던스, 예루살렘 1992, pp. 713, 1089-1090, 히브리어). 이 중 몇 차례는 הפר 어근으로 나타난다.

이 단어들은 한글 구약성경에 ‘치료함’, ‘고침’, ‘나음’, ‘회복’, ‘의사’, ‘약’, ‘건강’ 뿐 아니라 ‘피함’, ‘도움’, ‘수축함’, ‘기움’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이 단어들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예레미야서이다(총 19회- 동사 13회, 명사 6회). 

단순히 인간이 겪게 되는 육체적인 질병이나 상처로부터의 치료나(출 21:19; 레 13:18,37; 14:3,48; 왕하 8:29; 9:15; 대하 22:6) 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갖춘 의사를(창 50:2; 대하 16:12; 욥 13:4; 렘 8:22)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육체적인 질병과 영적인 고뇌를 경험하는 인간과 하나님의 치유(왕하 20:5; 욥 5:18; 시 30:3; 103:3 등) 혹은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적인 고통과 하나님의 치유를(대하 7:14; 사 30:26; 렘 30:17; 33:6; 호 7:1; 11:3 등) 언급하는 본문들 속에 발견된다. א꘩Ꙝ 외에 שׁꔨꖎ(‘하바쉬’, ‘상처를 싸매다’, 시 147:3; 사 61:1; 렘 30:13; 겔 30:21 등)와 קꖉꖐ(‘히젝’, ‘강건하게 하다’, 겔 34:4, 16) 동사도 치유와 관련된 본문 속에 등장한다.

필자는 이 단어들이 사용된 구약 본문들을 중심으로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질병의 치유와 회복에 관해 구약성경이 갖고 있는 견해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구약성경을 읽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본문들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2. 질병치유 

📍고대 근동의 질병치유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와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 토판에 의하면 고대 근동의 의술이 민간요법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특히 주전 16세기 이집트 에베르스(Ebers) 파피루스에 다음과 같은 여러 질병을 위한 민간요법 치료제가 언급되고 있다:야등덩굴(Citrullus colocynthis), Citrullus colocynthis는 왕하 4:39의 ‘야등덩굴’과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아라바 광야에서 자라는 다년생 야생 식물이다. 줄기가 길고 잎이 포도덩굴 잎과 비슷하며 작은 수박처럼 생긴 열매(‘들외’)에는 독성이 있다. 이 식물의 씨에 함유된 기름으로 불을 피우거나 치료제로 사용하였다. 여후다 카일, 열왕기, 주석 시리즈, 예루살렘 1989, p. 410(히브리어). 
아주까리 기름, 무화과, 양파, 석류 등과 같은 식물과 꿀, 나무에서 나오는 진(resin), 소금. , 예루살렘 1976, 7권, pp. 408-411(히브리어). 

이 자료는 구약성경에서 엘리사 선지자가 여리고의 나쁜 물을 ‘소금’으로 고쳐 좋은 물을 만들고 여리고의 토산이 익지 못한 채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해 준 사건과(왕하 2:19- 22), 이사야 선지자가 ‘무화과 반죽’을 히스기야 왕의 환부에 발라 병을 낫게 한(왕하 20:7)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엘리사 선지자가 길갈에서 선지자의 생도들이 먹던 들외(야등덩굴 열매)국의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왕하 4:38-41) ‘가루’가 정확히 무슨 가루인지 알 수 없으나 민간요법에 사용되던 해독제 역할을 하는 물질이었을 수 있다. 

물론 이 사건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병이 치료되고 물이 고침을 받아 죽음의 문 앞에서 생명이 회복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나, 동시에 구약성서시대 이스라엘에도 고대 근동의 민간요법이 시행되고 있었으며 그것이 기적 사건들 속에 매개체로 사용되기도 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악령들이 여러 질병의 원인이라고 믿었고, 술사들이 그 악령들을 쫓아내기 위해 주문이나 마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또한 여러 신들 중에 병을 치료해주는 신들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구약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병의 치료를 위해 주문과 마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변 국가들과 달리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에 따라 질병의 근원과 치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질병 치료 사건이 대체로 기도를 동반하며 하나님의 사람 혹은 선지자의 중재로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그랄왕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시고 생산케 하신 일과(창 20:17)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기도로 살린 사건(왕상 17:17-24) 등이 그 예이다. 

📍상하게도 하시며 낫게도 하시는 하나님 

1). 구약성경의 질병과 치료에 대한 주된 이해는 전통적인 '인과응보 원리'와 관련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질병과 치료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에 좌우된다.

예를 들어, 신명기 28장 21-22절, 27-28절, 35절에 길게 나열된 염병, 폐병, 열병, 상한, 학질, 한재, 풍재, 썩는 재앙, 종기, 치질, 괴혈병, 개창, 미침, 눈멂, 경심증, 종기는 사람을 진멸시키고(22절) 치료함을 얻을 수 없는(27,35절) 것들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그분을 잊을 경우 받게 되는 징벌에 속한다.

또한 잠언 6장 15절과 29장 1절은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거나 목이 곧은 사람들이 갑자기 패망하고 고침(א꘴ꙣꗫ ‘마르페’)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한글 성경에는 각각 “도움을 얻지 못하고”, “피하지 못하고”로 번역되었다).

반면에,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며 계명과 규례를 지킬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애굽에 내린 질병 중 하나도 내리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들을 “치료하는(א꘬ꙡ ‘로페’) 여호와”가 되신다(말 3:2 참고). 

2). 그러나 이와 같은 인과응보 사상이 자동적으로 모든 질병이나 재앙에 적용된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이 이미 구약의 인물들에 의해 목도되었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욥 1:1,8; 2:3) 욥이 갑작스런 재난으로 그의 자녀와 소유를 잃은 후(1:13-19) 자신의 온몸에 난 악창(위에 언급된 신 28:35의 ‘종기’와 같은 병이다)으로 고통을 겪는가 하면(2:7),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죄를 멀리하는 자가 종일 재앙을 만나는 반면 악하고 오만하며 강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기까지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고난이나 재앙을 만나지 않고 건강하게 부를 누리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경우도 있다(시 73:3-12).

욥과 시편 기자의 질병과 재앙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인 인과응보 원리와 다르다.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욥 2:10),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6)고 함으로써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의지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고 뜻밖의 재난으로 삶의 평화로움이 깨어질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받은 복이고(시 73:28)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모두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욥 42:2-3)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겪는 질병과 재난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그들이 소유한 재물의 정도나 육체의 편안함으로 측정될 수 없음을 명백히 말해준다. 

이처럼 질병과 치유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는 우리 각 개인의 삶 속에서도 발견된다. 때로는 우리에게 혹은 우리 가족이나 이웃에게 닥친 특정한 질병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온 징계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이유를 순종과 불순종의 원리에 비추어 뚜렷이 지적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위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육체의 건강과 질병이 하나님의 사랑과 징계에 대한 자동적인 표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에 걸린 사람을 죄인으로 보거나 건강한 자를 의인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구약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술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이 들면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한다. 이것은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신 32:39),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라는 말씀들이 건강할 때보다 아플 때 훨씬 더 선명하게 우리에게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병상 기도 

신앙인이 겪는 질병에 유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병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구약성경이 의술을 배척하지 않지만 어떤 본문들은 인간적인 치료법을 의지하기 전에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임을 암시해 준다.

열왕기하 20장 1절 이하에 죽을 병에 든 히스기야왕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치료로 병이 치유되고 생명이 연장된 반면, 역대하 16장 12절에는 아사왕이 발에 심한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사들을 찾은 일이 비판적인 어조로 언급되고 있다. 병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구약성경(특히 시편)에 א꘩Ꙝ(‘라파’) 동사가 등장하는 기도와 시편에 사용되는 다른 표현들은 ‘쇠약’(시 41:3), ‘수척’(시 6:2), ‘눈물’(왕하 20:5; 시 6:5), ‘심히 통곡함’(왕하 20:3), ‘간구함’(시 6:9; 30:8; 사 19:22), ‘부르짖음’(시 30:2,8; 107:19), ‘탄식’(시 6:3), ‘긍휼을 구함’(시 6:2; 30:10; 41:5) 등이다. 때로는 병상 기도가 죄(אꖮꖑ ‘헤트’)의 용서와 영혼(שׁ꘭ꗾ ‘네페쉬’)의 치유(시 41:4-5), 영혼을 음부(לוֹאꚉ ‘슈올’)에서 건져내어 주시기를 간구하는(시 6:4-5; 30:3) 기도를 동반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유한한 인간의 본질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성을 드러내 준다. 육체의 활동을 제한받는 병상에서 인간은 정신적으로도 무기력해지기 쉬우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잘못된 행실들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지고 건강할 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질그릇같이 부서지기 쉬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시 147:3) 영혼을 고치시는(시 41:4)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병상에서 하나님을 더욱 가깝게 만나게 되며,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총을 한층 깊이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굴곡 속에서도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된다(시 30:12; 41:13).

성경은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는 것 자체가 우리 몸과 영혼을 윤택하게 하는 약(תוּא꘰Ꙟ ‘리프우트’)이라고 한다(잠 3:7-8).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마음의 화평(א꘴ꙣꗫ בꗝ ‘레브 마르페’)이 바로 육신의 생명이 되어(잠 14:30; 잠 4:20-23 참고) 삶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약 

잠언의 몇 구절들은 우리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א꘴ꙣꗫ ‘마르페’) 같으니라”(12:18);

“온량한 혀(ןוֹשׁꗚ א꘴ꙣꗫ ‘마르페 라숀’, ‘치료하는 혀’, ‘부드러운 말’)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א꘴ꙣꗫ ‘마르페’)이 되느니라”(16:24).

가족이나 친구 혹은 이웃의 부드러우며 선한 말은 병상에 있는 자에게 위로가 되며 지혜로운 말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에게 평안을 준다.

반면에 듣는 이의 병약함이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다 표현할 때 듣는 이의 병과 상처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이 말씀들은 특히 우리가 병상을 방문할 때와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과 대화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좋은 지침이 된다. 

3. 이스라엘의 상처와 치유 

📍이스라엘의 범죄와 상처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표현이 구약성경(특히 예언서)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의 멸망 및 회복과 관련된 본문 속에 은유적으로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자신을 이 세상에 계시하시고자 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하여 마음대로 행하고(사 57:17 등),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좇았다(렘 3:22; 8:19; 호 14:4 등).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함락되는(주전 721년) 것을 목격하고도 남유다는 여전히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을 깨뜨려서 처음 상태로 회복될(ה꘬Ꙝꕚꗡ ‘레헤라페’) 수 없게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남은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을 파하시기로 하셨으며(렘 19:11)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주전 586년).

이스라엘의 상처 즉 예루살렘 성의 파괴와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결과로 온 것이며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었다(렘 30:12-16; 33:4-5; 호 7:1).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고 치료하는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왕, 선지자, 제사장)조차 거짓을 행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 그 백성의 이미 시작된 상처를 제대로 고쳐주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잘못된 현실에 만족하도록 한 것도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킨 요인들 중 하나였다(렘 6:14; 8:11; 겔 34:2-4). 

📍이스라엘의 치유와 구원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고통스러운 상처와 절망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15:18);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8:21-22. 8:15; 14:19 참고).

그러나 그는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14:20) 하나님의 구원의 치료를 간구한다(17: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상처를 치료하시는 분이라는 확신과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은 이 밖에도 구약성경에 여러 번 반복하여 언급된다(사 30:26; 렘 30:17; 33:6; 호 6:1 등). 하나님의 치료에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죄악 즉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행하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으로부터 돌이키시는 일이 동반된다(사 57:17-19; 렘 3:22; 호 14:4. 대하 7:14 참고). 

📍메시야의 고난을 통한 치유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을 떠난 데서 시작되었고 그들이 받은 상처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징계였다. 그러나 ‘범죄(하나님을 떠남)-징계(상처)-부르짖음(기도)-구원(치유와 회복)’의 사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예비하신 비밀스러운 치료 방법이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예고에 나타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여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절).

이것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죄인들이 받아야 할 징계와 상처를 대신 받으심으로(11-12절) 죄인들의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택하신 치료 방법이며(10절), 물리적으로나 화학적인 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에 속한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실 정도로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죄의 속성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다시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는(요 3:16) 말씀 속에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치유 받은 우리의 영혼은 우리와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시 107:8,15,21,31)하게 된다. 

4. 맺는 말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개인적 혹은 민족적으로 닥친 질병이나 고통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유일신 신앙의 거울에 비추어 이해한다.

병에 걸린 개인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치유를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잘 아시고 도우신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하여 받은 징계로 고통을 당할 때도 그들을 치료하시는 분은 그들을 택하시고 그들이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질병과 고통의 문제는 구약성서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것만이 아니고 현대 의학이 발달된 시대를 사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는 병상에서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게 되며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깨닫고 겸손하게 된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에 너무나 부족하고 불안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리며 우리 영혼의 건강까지도 간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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