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해석학 / 정익찬
(출처 KCM)
제1장 성경 해석학의 필요성
성경을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힘겹고도 때때로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러기에 성경을 해석하는데는 잘 숙고되고 정리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 부분이 해석학이 관여되는 부분이다. 본질상 해석학이란 해석하거나 설명하는 일을 포함한다. 해석학은 사람들이 어떤 메시지가 전달하려는 바를 이해하고자 사용하는 원리들을 기술한다.
왜 해석학이 필요한가?
해석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해에 대한 체계화된 해석 방법이나 수단 없이, 우리는 그 어느 것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어떤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성령의 역할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이 언어전달의 원리에 따라 성경 본문을 해석해야할 필요성을 대치시키지는 않는다. 수세기에 걸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올바른 해석의 원리와 방법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해석학은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획득하는 일에 필요한 이러한 지침과 방법론을 제공한다.
해석학의 정의
해석학은 우리로 하여금 저자나 화자가 전달하려고 의도한 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전략을 제공한다. 이러한 해석학의 과업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의미가 어디에 놓여 있는가-본문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독자의 마음에 있는가, 아니면 이 양자의 조합에 놓여 있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해석자의 역할
해석적인 절차상에서 해석자는 무슨 역할을 감당하는가? 사람들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했던 바들을 기초로 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한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시대의 사람들로부터 시,공간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메시지를 오해할 수 밖에 없다는 가능성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해석하도록 안내해 줄 도구를 우리가 공부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해석하는 일에 부여하는 우리의 전제와 선입견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해석자들은 그들 자신의 전제와 의제를 갖고 있으며 이것이 해석자들이 이끌어 내는 결론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저자나 혹은 화자 역시 일종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 본문을 어떻게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는가? 그 답은 가변적이고 주관적인, 인간적인 요소들 속을 항해하는 동안에 우리를 인도해 줄 만한 규범과 기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건전한 해석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다.
메시지의 의미
모든 형태의 구전이나 문서를 통한 의사 전달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의미의 표현을 담고 있다.
(1) 화자나 저자가 자신이 말한 바에 의해서 의미했던 것
(2)수신자가 실제로 진술된 바를 통해서 이해했던 것
(3) 좀 추상적인 의미에서, 의미가 실제적으로 본문이나 말 자체 속에 기호화된 것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본문 자체 뿐이기에 우리는 저자가 의도했을 만한 최선의 의미와 원래의 수신자들이 이해했을 만한 최선의 의미를 재구성 할 수 있을 뿐이다.
본문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는 의미의 일부는 저자가 자신의 저작 가운데 사용했던 형식들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분석하는 본문들로부터 추상적인 명제들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만을 행한다면 상당 부분의 의의를 놓쳐버릴 위험이 있다.
저자와 독자들
성경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본문의 의미를 왜곡시킬지도 모르는 우리의 모든 선입견과 선이해를 철저하게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우리가 보고 읽는 것을 해석하는 일에 표준으로 삼고자 하는 성향을 피해야 한다. 해석의 모든 방법론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중요한 차원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1) 본문이 무엇에 관계된 것인가를 해독하는 데 필요한 분석적 방법론
(2) 해석 작업에 참여함에 따라서 우리의 현 상황을 평가하고 설명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도구와 수단.
성경 해석의 몇몇 도전들
시간의 간격
성경에 기록된 저작들이나 사건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있으며, 더구나 성경의 마지막 책이 기록된 이후로 1,900년이 흘러갔다. 간단히 말해 세상은 성경의 구성 과정 중에 그리고 성경의 완성 이래로 실질적인 측면들에서 변화되어 왔다. 시간상 우리와 너무도 떨어져 있는 역사적인 것들 이면에 있는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성경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간과 이 사건들이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본문 속에 기록된 시간 사이에 존재했던 시간의 간격이다.
문화적 간격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는 관습들, 신앙 체계들 그리고 관행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가치와 우선 순위라는 척도가 무심코 우리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서는 안되며, 이것들로 인해 본문에 있지도 않은 의미를 만들어 내서도 안된다.
지리적 간격
성경에서 언급되고 있는 장소들을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우리는 특정한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와줄 어떤 요소를 결여하는 셈이다.
언어의 간격
성경저자들은 그 당시의 언어 즉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언어로 성경ㅇㄹ 기록했다. 우리는 성경 언어들과 이들의 문학적 기법들을 우리의 모국어로 번역하는데 숙련된 성경학자들에게 의존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필연적으로 해석적일 수밖에 없다. 성경 당시의 세계들과 이 당시의 저자들이 성경에 기록한 바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객관적인 역사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영원한 진리- 신적인 요소
지금까지 성경은 여러 점에서 다른 책들과 똑같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이것이 어떤 식으로든 신적인 책으로서의 성경의 특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정황들과 사건들을 모체로 해서, 또한 다양한 종류의 문학장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 저자들을 영감하사 자신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한 성경을 구성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해석은 본문의 의미를 추구하며, 동시에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추구하는 일이다. 비록 우리가 참되지 않은 바를 믿는 것을 결코 용인 할 수는 없지만 이성적인 학문 연구만이 성경 속에 있는 진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해석학의 목표
해석학의 목표는 성경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일을 포함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성경의 참된 해석은 결코 고대 역사에 대한 단순한 연구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 삶에 미치는 성경 본문의 영향의 실재를 생각지 않고서는 그 본문이 무엇을 의미했는가를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정말로, 어떤 본문이 원래의 독자들에게 의미했던 바를 참되게 이해하려면 그 본래적 효과의 실재를 우리 자신이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결 론
우리는 성경을 체계적이고도 주의 깊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1. 하나님의 메시지를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2. 성경에 관한 그릇된 생각이나 잘못된 시각들과 결론들을 피하거나
일소하기 위해서이다.
3. 성경의 메시지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제 2장 해석학의 역사
성경 해석의 역사를 개관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성경 해석과 관련한 핵심적인 이슈들을 알게 하여, 다시 해석자로 하여금 우리가 제시하고 있는 이들 이슈들에 대한 접근 방식을 이해하도록 준비시킨다.
둘째, 성경의 가르침들을 상황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상황화의 위험들을 극소화할 수 있는 성경해석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방식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해석의 과정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촉진시켜 준다.
유대인들의 해석
실명으로 알려진 최초의 해석자들은 학사 에스라를 도왔던 레위인들이다. 이들 은 군중들에게 에스라가 읽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이들의 설명에는 성경본문을 아람어로 번역하는 일과 본문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 일이 새로운 제도인 탈굼(번역-해석)을 낳게 했다.
유대의 서기관과 랍비들은 특히 히브리 성경을 당대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일상 생활의 이슈들에 적용하려 노력하였고 후기 중간사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 제국에 의한 이스라엘 지배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연구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규명하고 보존하도록 만들었다.
랍비계 유대교
이들은 토라에 대한 순종을 고양시켰다. 이들의 두가지 해석방법 중 할라카는 특별히 구약의 율법자료들로부터 기인한 인간의 행동을 위한 연역적인 원리들과 규범들을 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가다는 성경본문을 예증하고 독자들을 계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구약이 제공하는 이야기들과 잠언들에 의존하고 있다.
랍비계의 유대교의 성경해석은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첫째, 랍비들의 해석전통에 크게 의존해 있다. 둘째, 보통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다른 한편 랍비들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구절의 교차 참조(관주법)라는 방법론을 만들어 낸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헬라계 유대교
이 유대교는 주전 200년 경에 칠십인역이라는 역본을 만들어 내었다.
이 해석학파의 주요한 독특성은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으로 이 방법론은 그 뿌리를 플라톤 철학에 두고 있다. 당시 필로의 해석법은 인간의 언어가 지닌 한계를 올바로 인식했으며, 성경의 사상을 당시의 지배적인 철학의 사상과 조화되게 함으로 성경적인 믿음을 당대의 문화와 관련지으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다른 한편, 필로의 방법론은 주관성, 임의성 그리고 인위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필로는 성경의 사상과 헬라철학의 사상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점들을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쿰란 공동체
이들은 자신들을 성경의 예언이 말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로 보았다. 그럼으로 히브리 성경의 해석이 쿰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공동체는 페숴라 불리는 해석 방법론을 사용했다. 1) 본문독법 - 해석자가 어떠한 해석을 지지하고자 성경본문의 실질적인 변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2) 예언을 동시대화 하기도 했다. 3) 원자화 방법론 - 본문을 분절된 구로 나눈 뒤에, 각각의 구를 문맥에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해석한다.
사도시대(주후 약 30-100년)
구약예언에 대한 예수의 문자적 성취가 사도들의 근본적인 해석 원리였다. 사도들은 문자적 해석에 자신들을 국한시키지 않고 모형론적 해석방법, 문자적-문맥적 해석방법, 원리/적용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계속해서, 그리스-로마의 영향이 유대의 영향을 제치고, 그리스도인의 성경 해석을 주도하게 되었다.
교부시대(주후 약100-590년)
사도적 교부들(주후 약100-150년)
이들의 저작들은 믿는 자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일과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의 변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들은 때때로 모형론과 미드라쉬적 해석 방법론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방법론은 알레고리 방법론이다. 이교들의 공격 때문에 교회내에 전통적인 해석이란 새로운 해석학적 원리가 생겨나게 된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주후 약150-400년)
알렉산드리아는 풍유적 방법론을 증진시키는 센터의 역할을 해 왔고 안디옥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문법적 이해를 가르쳤다. 이들은 데오리아(통찰력)을 통해 본문의 문자적인 역사적 사실들과 이 사실들이 지시하고 있는 영적인 실체 모두를 인식하려 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풍유적 해석의 접경에 서있는 일종의 모형론을 사용했다.
교회 회의 시대(주후 약 400-590년)
당시의 견해들을 어거스틴은 세가지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1)해석자는 "믿음의 법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교회의 권위"나 혹은 본문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을 참고하여야 한다. (3) 보다 평이한 본문과 교회의 전통이 불분명한 구절들의 문맥보다 우선한다. 교부시대가 끝날 무렵 제롬의 벌게이트가 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 됨으로 원어로 이루어진 성경의 연구는 중단되었다.
중세시대(주후 약 590-1500년)
당시의 해석방법론은 1) 전통적인 해석으로 수세기에 걸쳐서 내려온 교부들의 견해들에 크게 의존했다. 2) 풍유적인 해석이 가장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3) 역사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나 이성의 사용에 대한 스콜라주의의 강조로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의 우위가 서서히 종막을 고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시대(주후 1500-1650년)
종교개혁은 이전에 시행되었던 성경해석의 원리들과 완전한 단절을 의미했다. 종교개혁은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의존했다.
종교개혁 이후 시대(주후 1650-1800년)
종교개혁이후 경건주의 운동이 생겨났다. 이들중 에드워드는 모형론을 말했고 르네상스 정신은 이성주의를 낳았다. 닐의 말에 따르면 이성주의는 "기독교와 반대되는 신앙의 체계는 아니지만 종교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이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철학과 신학의 단절을 증진시켜 나갔다.
현대시대(주후 1800-현재)
19세기
역사적-비평 방법론으로 알려진 해석방법이 생겨났다. 이 방법론은 이성의 사용과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다. 또한 모든 역사는 발전이란 진화적 과정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었다. 이러한 전제들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자료비평과 함께 성경의 역사적 발전을 재추적하려 하였다.
20세기
두 개의 해석방법론이 꽃을 피우게 되는데 1) 종교-역사 방법론 : 후에 비교원리라는 새로운 해석원리를 굳건히 세웠다. 2) 양식비평 : 성경의 문헌 자료들의 기원을 이룬다고 주장되는 구전자료들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시기
두명의 위대한 인물들이 초두를 장식했는데 칼바르트와 불트만이었다. 불트만은 양식비평을 복음서 연구에 적용했고, 성경의 비신화화를 시도했다. 불트만의 방법론에 따르면 성경은 실존주의자의 해석 원리로 읽혀져야 한다. 바르트와 불트만의 신학사상은 신정통주의라는 새로운 신학운동을 태동시켰다. 이들의 기본적인 가정은 1) 하나님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다. 2) 초월적인 성경의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놓여져 있다. 3) 진리는 본질상 궁극적으로 역설적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기
성경 신학에 대한 관심이 부활되었다. 1950년대 중반에 편집비평이 양식비평에 대한 보완적인 비평방법으로 부상하였고 또 다른 해석학적 발전으로 1)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탐구" 2) 신해석학으로 이는 성경본문은 읽혀질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독자를 직면함으로써 독자를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전후의 성경신학 운동은 정경비평이라는 방법론을 낳았다. 이는 성경 책들의 정경적 모습과 형태를 분석함으로써 이들 책들의 신학적인 의미를 발키고자 한다. 20세기는 새로운 해석의 방법론들과 해석절차의 성격에 관한 철저한 철학적 성찰이 부상했던 시기이다.
제 4장 해석자
해석에 있어서 정확한 방법론 이외에도 성경의 성격에 관한 해석자의 확신들이나 전제들이 해석자의 해석 작업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기에 해석자가 갖추어야 될 자격요건과 해석자들의 전제들이라는 두 요소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에 해석자의 자격요건과 전제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해석자의 자격 요건
믿음 - 성경의 완전한 이해를 위한 본질적인 자격 요건은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일이다. 성경은 이를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를 나타내고 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만이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 바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다.
순종 - 믿음에 뒤따라 나오는 필요조건은 본문 밑에 자신을 가까이 두겠다는 생각과 자신의 의지를 본문을 듣는 일에 두겠다는 마음 그리고 본문의 저자에 순종하겠다는 자발적인 마음의 자세이다. 본문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은 본문이 본래적으로 의미했던 바를 듣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조명 - 비록 학자들이 성경 본문의 의미를 해독하는데 필요한 방법론과 기술들의 저장 창고를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성령의 조명이 없는 성경해석은 해석이 담고 있는 참된 잠재력을 결여하게 된다.
교회의 구성원이 됨 - 성경해석자들은 개인주의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게 된다면, 이 의미는 그리스도의 몸된 보편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갖게된다.
적절한 방법론 - 해석작업에는 적절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해석 작업에는 부지런함과 헌신된 마음, 열심 그리고 훈련된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해석작업에는 성경 연구에 관련된 모든 분야들(언어, 역사, 문화, 신학)에 있어서 탁월성과 학문성의 추구가 필요하다.
올바른 해석을 위한 전제들
아무도 어느 정도의 기본 가정이나 전제 없이는 그 어느 것도 해석할 수 없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선이해나 전제를 갖고 이 일을 행한다. 이제 성경의 정확한 번역을 위한 가정들이나 전제들을 제시하려 한다.
성경의 성격에 대한 전제들
영감된 계시 - 성경은 초자연적인 책이며 영감이란 과정에 의해서 준비되고 선택된 대변인들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이다.
권위가 있는 참된 지식 - 성경은 권위 있고 참되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궁극적인 권능을 갖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인간의 모든 믿음과 행위에 대한 척도를 이루고 있다. 성경의 신뢰성이라는 우리의 전제 때문에 우리는 성경은 오류가 있다는 입장을 배격하며 대신 이러한 오류가 나타날 경우에 우리는 자료들이나 우리의 지식, 혹은 증거를 설명하는 우리의 이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문헌 - 성경은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가치와 삶을 바꾸는 능력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성경은 우리의 사고에 방향을 제시하며, 우리의 삶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특징 - 성경은 하나의 단일체이나 동시에 다양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저작권이 성경에 본래적인 통일성 내지는 일관성을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있는 문헌 - 우리는 성경이 이해할 수 있으며 접근이 가능한 책이라고 확신한다.
정경의 형성 - 우리는 정경 66권을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성경 기록으로 받아들인다.
해석자의 성격에 관한 전제들
해석하는 일은 언제나 개인적인 틀로부터 운용된다. 해석자들의 전제와 이들의 개인적인 혹은 전문가적인 관심이 이 뼈대를 구체화한다. 그럼으로 해석이라는 가계의 갈라섬은 성경의 신뢰성 여부에 대한 태도의 단계에서 일어남을 보게된다. 우리는 복음주의자들의 전제를 받아들인다.
방법론에 관한 전제들
우리는 정확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모든 방법론들을 기꺼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한 방법론일지라도 이 방법론이 우리의 성경관과 일치하지 않는 어떤 기본 입장이나 전체를 고수한다면, 우리는 이 방법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해석학의 목표에 관한 전제들
우리의 해석학의 목표는 성경저자나 편집자들이 자신들의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하기를 의도했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해석자의 선이해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이전 경험, 교육 그리고 사고를 토대로 한 세상에 대한 추론과 가정들을 갖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러한 우리의 선이해들에 의해서 형성되어 왔다. 우리는 탐구의 대상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선이해의 정의
선이해란 용어는 해석자가 해석의 작업으로 이끌어 들이는 그 무엇을 가리킨다. 선이해는 이해를 위한 기본적이고도 준비적인 출발점이다.
선이해의 역할
선이해는 해석 과정 중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선이해는 해석자들이 성경을 해석할 때 발견하고자 기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이해를 깨닫고 이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선이해로서의 해석 철학
사람들이 다양한 선이해를 성경에 이끌어 들이고 또한 성경을 다양한 목적들을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오직 하나의 해석방법이 적법하다든가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해석자에게 상대주의라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케 만든다. 또한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철학적인 입장을 채택해서 이를 통해 해석 작업을 수행해 나가기도 한다.
선이해들을 검증하는 일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선이해들이 진리와 일치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겠는가? 루이스는 "전제들은 올바르게 검증되고 확증 될 때까지는 잠정적인 권위만을 갖는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선이해들에 대한 하나의 검증은 이들 선이해들이 성경적 자료들과 일치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우리는 성경의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증거와 가장 일치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기독교적 선이해
우리가 항상 우리의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권위인 성경의 가르침에 복종하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실제적인 선이해가 우리의 성경 해석을 인도하고 지도한다. 또한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헌신은 성경의 진정성에 대한 우리의 이전 확신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이해를 형성하고 있는 성경의 독특한 양상들은 무엇일까?
1. 첫째로, 우리는 "영적인 요소"를 인정해야 한다. 성경의 온전한 목적은 마음을 조명하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진정성을 증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2. 성경 전체(공인된 정경)가 우리의 영감된 본문이며 연구의 대상이다.
3. 하나님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진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계시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성겨에 나타난 그의 계시를 통하여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를볼 수 있어야 한다.
4. 성경 전체가 성경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가장 잘 해석해 준다. 동시에 우리는 반드시 부분들에 대한 주의깊은 연구로부터 성경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출해 내야 한다. 이는 성경이 성경 자체의 가장 좋은 해석자임을 말한다.
5. 성경의 의미는 분명하고 평이하다.
6. 초자연적인 것들이 성경 속에서 확언되고 있다.
7. 성경은 신학적인 책이다. 그리스도인 해석자는 단순히 본문의 역사적 의미만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나아가 오늘날의 사람들을 위한 본문의 신학적인 의의와 함축성들을 이끌어 내는 데도 관심을 갖는다.
선이해는 이해와 함께 변한다.
모든 해석자는 나름대로의 선이해를 갖고 시작한다. 성경본문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본문 역시 해석자에게 어떤 일을 실행케 된다. 이것은 점진적인 발전의 나선이다. 우리는 성경연구를 통해 우리가 더 많이 배워감에 따라 우리의 선이해를 바꾸고 넓혀간다.
해석에 있어서 선이해와 객관성
그렇다면 이러한 선이해는 우리가 해석하는데 있어 주관성에 빠져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객관적인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는 없겠는가? 우리의 목표가 본문이 기록될 당시에 전달하려 했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해석들을 옳다 인정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기준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제5장 해석 목표
문헌을 통한 의사 전달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잠재적인 의미의 측면들을 이야기한다. 1) 저자가 전달하려고 의도한 의미 2) 독자가 이해한 의미 3) 지면에 쓰여진 단어들의 문법적이고도 본문상의 의미. 성경해석에 있어 특별히 연구의 대상으로 오직 기록된 개개의 본문만을 갖고 있는 경우, 우리의 목표는 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의미를 본문 안에 기호화해 놓았으며 우리의 해석목표는 우리가 본문 안에 있는 의미를 재발굴해 낼 수 있는 한도내에서 이 의미를 발견하는데 있다.
현대의 해석자들은 본문에 대해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성경본문을 대함에 있어서 복음주의적 해석자로서 우리의 해석목표는 무엇인가? 이를 위한 정확한 해석방법론을 설정하기 위해 우리는 본문의 의미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질문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의미의 계층들
본문은 하나의 고착된 의미를 갖는가, 아니면 여러계층의 의미를 갖는가?
허쉬는 의미를 저자의 의도의 한 기능으로 이해한다. 또 다른 이들은 의미란 저자가 아니라 독자들의 한 기능이며, 모든 본문의 의미는 본문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몰간은 해석은 임의적인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 역사, 주해, 그리고 다른 합리적인 통제 수단들에 의해 제공되는 점검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며 다른 한편으로 "본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재한다면" 권위있는 성경은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성경 본문에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본문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을 유지함으로써 보수적인 입장에 서 있고자 한다. 그렇다면 성경의 한 본문 내에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없는가?
1) 저자는 한 본문에 대해서 오직 하나의 의미만을 의도했다.
그러기에 원래적이고도 역사적인 의미만이 석의의 적합한 대상이다. 그러나 사실 신약저자들이 구약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구약 본문에서 발견해 낸 경우들이 있다.
2) 저자는 본문이 여러 가지 의미나 혹은 여러 계층의 의미를 전달하도록 의도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저자들이 한 본문에 대해서 여러 의미들을 의도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한 그들이 그랬다고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러 적용들 혹의 의의들이 본문에 있을 수 있고 존재한다는 사실과 저자가 전달하려고 의도한 바와는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3) 후대의 독자가 원래의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를 고안해 내거나 새로운 의미로 성경 본문을 읽어갈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역사적 의미를 무시하고 본문에 대한 우리가 좋아하는 바만을 행해서는 안 된다.
4) 인간 저자가 의도했던 문자적인 의미와 함께 참 저자이신 성령은 인간 저자에 의해 알려지거나 구상되지 않은 숨겨진 의미를 본문 안에 넣어 놓는다. 하나님이 성경 짜들을 영감하셨을 때 하나님은 인간 저자들이 생각했고 의도했던 의미와 동떨어진 다른 의미를 인도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5) 마지막 선택 사항으로 성경 저자는 한 본문으로 하여금 오직 하나만의 의미를 갖도록 의도했는데 보다 후대의 성경 저자가 그 본문 속에서 부가적인 의미를 발견해 낸다.
이들 중 어느 하나가 더 나은 선택 사항이겠는가?
본문의 의미
본문의 의미가 해석의 유일한 목표인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래의 본문이 지닌 원래의 의미를 추구한다.
본문의 의미의 정의
본문의 의미란 본문의 단어와 문법적인 구조들이 저자나 편집자의 의도에 관해서, 또한 원래 독자들의 이해에 관해서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 본문의 의미란 본문의 단어가 저자에 의해 기록될 당시에 독자들에게 전달했던 의미를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인간 저자의 책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 역시 이러한 영감된 책 속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중심의 해석의 도전
자신들의 필요와 자신들에게 내재된 선이해를 기초로 해서 독자들과 해석자들은 본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원래의 저자와 독자들이 의도했고 이해했던 의미를 우리의 일차적인 의미로 삼을 때만이 우리는 해석상의 통제권들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문학적 접근 방식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적인 접근 방식과 역사적인 접근 방식을 상호보완적으로 이끌어 가야한다.
역사성의 문제
중요한 것은 원래의 저자와 독자들은 그 사선 기사를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사실적인 요소와 창조적인 요소를 결정지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본문의 상징들을 해독하는 일로서 이 일은 본문의 언어가 정상적으로 가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해독은 본문의 상징들에 내재해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적법한 독자 - 반응 해석
우리가 적법한 독자 - 반응 해석을 이루어 낼 수 있겠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고백하는 해석자들은 해석의 다양성의 범주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의미의 영역을 무한대로 열어놓을 수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여타 독자-반응 비평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해석자들이 단순히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본문을 읽어 가는 그러한 입장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일종의 독자-반응 해석방법론을 갖고있음을 부인하진 못한다. 새로운 신선한 의미는 반드시 본문의 의미와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의미가 꼭 원래의 의미에 제한될 필요는 없다.
우리의 해석을 인준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해석을 옳다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해석을 인준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두가지 형태의 증거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본문의 가장 개연성 있는 해석은 당시의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본문이 속한 장르의 글을 쓰고 이해했던 방식들의 언어와 일치하는 해석이다.
둘째, 해석자 자신들로서 해석자 자신의 인간적인 요소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스와틀리는 해석을 옳다고 인준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두 개의 다른 절차로 첫째, 해석은 "믿음의 실제 문맥"을 통해 인준되어야 하며 둘째, 믿음의 공동체의 분별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음을 들고 있다.
해석자들이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을 때는 첫째로, 차이점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개개의 해석자로 하여금 다른 견해에 이르게 한 연구 과정 중의 요소들을 조목별로 항목화해야 한다. 셋째, 어느 해석이 보다 창조적인 부연이나 수정을 행하지 않고 본문의 역사적 의미에 가장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를 측정해야한다. 역사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 해석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창조적인 해석도 다음과 같은 사항을 충족시킨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① 정통 기독교 신학을 표현하거나 이와 일치하는가 ② 역사적으로 해석된 성경의 사건들 가운데 분명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전형적인 행위나 진리와 일치하고 있는가 ③ 그리스도인으로서 모진 시련을 경험하면서도 통용될 수 있는가 ④ 정통 신앙의 공동체내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영역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두 개의 다른 해석에 이르게 될 때 두 견해가 모두 가능한 견해라고 인정하고 "의견을 달리 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아야"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해야 한다.
제 6 장 해석학의 일반 법칙들
산문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인간 언어로 표현했다. 따라서 우리의 의무는 언어 전달의 체계와 관례들에 따라 메시지를 올바로 해석하는 일이다.
문학적 문맥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개개 구절들을 인용해서 성경 구절들을 잘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1. 문학적 문맥의 중요성
성경 해석학의 기본 원리는 본문이 의도한 의미는 본문이 속한 문맥의 의미와 일치하는 의미라는 사실이다. 모든 구절들이 그 문맥에 일치되게 해석되어야 할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문맥은 사고의 흐름을 제공한다 - 본문을 문맥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은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위반하는 것이다.
2) 문맥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제공한다 - 해석학자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에 대해 자신들이 선택한 아무 의미나 자유롭게 채용할 수 없다. 각각의 용어들은 문학적 문맥 속에 피력된 다른 사상들과 일관된 의미에 따라서 이해되어야 한다.
3) 문맥이 단락들 내에서 올바른 관계를 보여 준다 - 어떤 해석이 본문의 의도된 의미로서 적합하려면, 반드시 그 해석은 인접 문맥과 본문이 속한 성경 문맥의 전체 사상과 일치해야 한다.
2. 문맥과 관련한 해석학의 원리들
1) 각각의 진술은 진술이 속해 있는 문학적 문맥내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의미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
2) 문맥을 떠난 본문 해석은 본문을 빙자하는 행위이다.
3) 연구할 본문이 짧으면 짧을수록 오역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3. 문맥 연구의 범주들
1) 인접 문맥 - 인접 문맥은 특정한 본문의 의미에 대해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2) 책 전체의 문학적 문맥 - 본문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본문이 속해 있는 책 전체에 비추어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성경 전체의 문맥 - 병행 구절에 대한 조심스러운 사용은 한 주제에 대한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대해 본문이 기여하고 있는 바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역사적 - 문화적 배경
어떤 성경 구절의 올바른 해석은 그 구절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일치하는 해석이다.
1. 역사적-문화적 배경의 중요성
1) 시각
해석자는 원래의 저자와 수신자들의 시각에서 성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 저자들은 우리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각에서 성경을 기록했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시각으로부터 그들의 자작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2) 사고 방식
일단 성경 구절이 의미했던 바를 이해하고 나면, 그 의미를 오늘날의 문화적 가치에 비추어서 적용함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충격과 정서적인 효과를 갖도록 할 수 있다.
3) 상황화
성경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세계에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에 그 초점을 둔다. 상황화란 단어가 바로 이러한 시각을 담고 있다. 상황화 과정은 성경 구절에 제시된 사상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표현함으로써 이 사상이 현대의 청중들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도록 한 다.
2. 역사적-문화적 해석을 위한 윈리들
1) 원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 - 어떤 해석이 본문의 의도된 의미로 받아들여지려면, 그 해석은 본문의 원래의 저작 상황과 수신자의 독해 상황하에서 가장 그럴 듯한 의미여야만 한다.
2) 본래적인 충격 - 우리는 성경의 메시지가 원래의 배경내에서 갖고 있었던 충격이나 효과를 결정해야 한다. 이 원리는 사고 방식이란 요소를 포함한다. 해석자는 가능한 곳에서라면, 원래의 독자들이 기록된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올바른 표현 - 해석자는 성경의 진리를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되, 성경의 문화적 배경 내에 있는 사상과 가장 밀접하게 부합되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즉 역사적-문화적 배경의 세부 사항들은 본문의 내용에 대한 보조적 요소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3. 역사적-문화적 배경의 재구성
1) 책의 일반적인 배경을 탐구함 - 특정한 성경 본문을 연구하기에 앞서 해석자는 본문이 속해 있는 책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에 친숙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자 혹은 편집자, 수신자들, 저작 시기, 책의 목적 등과 관련된 사실들이 포함된다. 배경적 지식을 알고 있지 못한 사람은 성경 개관서나 입문서, 혹은 주석서나 성경 사전 그리고 성경 백과사전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2) 특정한 본문의 역사적-문화적 요소들을 연구함 - 저자가 본문을 통해 특정한 정황 속에 있었던 독자들에게 의도했던 바와 자연스럽게 일치하도록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해석자는 본문에 나타나는 여러 양상들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며, 동시에 이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양상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세계관, 사회 구조, 물리적인 양상들, 경제 구조, 행동 양식, 종교적 관행, 권력의 중심부, 신념들, 예식들, 조직의 관계들)
단어의 의미
언어 전달은 그 성격상 단어를 사용한다. 즉 성경의 올바를 해석은 단어가 속해 있는 문맥 가운데서 그 단어의 정상적인 의미가 요구되는 의미이다.
1. 단어의 성격에 관한 중요한 이슈들
1) 단어는 임의적인 표지이다 - 단어는 철자의 가장 작은 결합체로서 언어에 있어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더 정확히 정의를 내리자면, 단어는 의미론적 표지로 어떤 아이디어를 나타내 주는 상징과 소리의 결합체이다. 그래서 해석자는 어떤 본문이 속해 있는 문맥 속에서 원래의 단어들이 기록되었을 당시에 의미했던 바를 의식적으로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2) 단어는 의미영역을 갖는다 - 사실상 대부분의 단어는 의미 영역을 갖는다. 똑같은 철자를 갖고 있는 동일한 바로 그 단어가 여러 개의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해석자는 어느 의미가 그 문맥 속에서 가장 잘 통하는 의미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3) 단어의 의미는 중첩된다 - 한 단어의 개개 의미는 특정한 의미론적 분야나 영역의 일부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해석자는 이러한 차이를 앎으로써 해석자는 문맥속에서 이 둘 사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실마리들을 예의 주시할 수 있다.
4) 단어의 의미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한다 - 단어의 의미는 고정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다. 의미는 시간과 함께 변화한다. 단어의 사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게 되고, 이전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5) 단어는 내포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를 갖는다 - 단어는 자신의 명시적인 외연적 대상에 덧붙여서, 어떤 하나의 의의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 의의는 내포적 혹은 비유적 의미를 내포한다.
2. 단어 연구를 위한 단계들
1) 자세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단어를 선택한다 - 본문에 필수적이거나, 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들, 또한 단어의 의미가 본문의 전체적 의미에 핵심인 그런 단어들은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2) 단어에 대한 의미의 범주를 결정한다 - 단어가 저자에 의해 사용되었던 시기에 갖고 있었던 의미의 범주를 결정하려는 목적에서, 사전을 통해 하는 단어 연구이다.
3) 문맥에 가장 잘 맞는 의미를 선택한다 - 일단 해석자가 어떤 단어의 가능한 의미에 대한 적절한 느낌을 갖고 나면, 연구 대상인 본문 내에 가장 적합한 의미를 선택해야 한다. 이때에 가능한 의미의 어느 하나를 어떤 특정한 용례에 단순히, 그러면서도 부적합하게 부여하는 일이 없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법적-구조적 관계들
문법은 하나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서, 이에 따라 저자들은 그들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독자들도 이에 따라 단어로부터 의미를 해독하기 때문에, 문법적인 분석은 올바른 해석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1. 문법적인 관계의 중요성
어떤 진술이라도 그 의미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단어와 구 그리고 문장과 더 큰 단락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또한 문법 연구는 올바른 해석을 위한 전략적인 중요성을 지니는데, 이는 성경 언어들은 때로는 번역으로는 나타내기 어려운 뉘앙스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모든 해석자는 성경 언어를 알아야 한다. 많은 문법적 양상들은 오직 원어에서만 나타난다. 성경 원어를 앎으로써 해석자는 문맥상의 증거 자료들을 평가하여 본문에 적합한 문법적인 설명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2. 구조적 관계를 발견하기 위한 단계들
1) 자연적인 구분들 - 해석자는 연구 대상인 단락의 자연스런 구분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2) 사고의 흐름 - 보통 해석자는 최소한 한번에 하나의 본문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음 단계는 연구 대상인 본문 내에 있는 사고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을 생각하고자 한다.
3) 동사 - 한 본문에 대한 문법상의 연구의 다음 단계는 동사가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이다. 성경 언어의 복잡한 동사 체계는 문장의 의미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동사의 문맥과 관련하여 이해할 때, 동사는 표현되고 있는 법, 시상, 시간, 종류 그리고 태 등을 나타내 준다.
4) 연결사 - 중요한 문법적 요소에 대한 논의에는 연결사에 관한 논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연결사는 문장의 서두에 와서 자신의 문장과 그 문장 앞에 오는 것을 연결하거나, 문장 속에서 어떤 사고를 전달해 주고 있는 단어나, 구 그리고 절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 보여 준다.
5) 형용사와 부사 - 형용사와 부사와 같은 문법적 항목들에 대해서도 주의 깊은 해석자라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형용사와 부사 같은 수식어는 명사 혹은 동사의 의미를 상당한 정도로 조정시킨다.
6) 대명사 - 해석자는 외견상 판에 박힌 몇몇 문법적 요소들 - 대명사의 용례와 명사와 대명사가 단수인가 복수인가 하는 점 - 의 의의를 절대로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명사가 무엇을 혹은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알고자 하면 대명사의 선행사가 무엇인가를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
해석자는 언제나 자신 가까이에 원문이 지닌 문법의 뉘앙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일정량의 좋은 번역본들과 중요한 성경 주석들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제10장 오늘날의 성경 사용
성경은 현대의 과학적 세상에서도 적법한 역할을 갖고 있는가? 이러한 고대의 책이 적절하고도 타당성 있게 오늘날 세상 속의 다양한 삶의 이슈들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러하다. 특별히 건전하고도 정확한 성경해석의 원리들에 기초해서 성경이 적용될 때 그렇다. 그러나 해석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다. 해석의 원리들을 공부한 이후에도 해석자는 "그러나 이해의 한도 너머로 성경을 이해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열심을 다해서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이에 반응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본 장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사용하는 몇 가지 방법들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정보와 이해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라고 믿는다. 신학자들은 이를 특별계시라고 말한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정보들을 전달하신다는 전제를 갖고 시작한다. 이러한 계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성경 기사들을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 그러기에 해석학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이 성경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결정한다. 올바른 해석학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가 갖기 원하시는 지식과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이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유래하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백성들은 성경 속에서 예배에 대한 이유와 기회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적합한 방식들로 반응토록 고무시킨다. 구약 시대부터 또한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여타 많은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읽는 성경말씀에 대해 독특하고도 즉각적인 예배를 통한 반응을 보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믿는 자들을 감동하여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한다.
예배 의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기독교 예배 의식이 언제나 성경 본문을 반영해 왔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경은 교회의 의식 요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교회의 예배 의식 가운데 성경 본문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예배자들이 성경구절이나 성경의 암시들을 이해하고 있는 한 성경은 우리의 예배를 도우며 적절한 예배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성경은 어떠한 마술적인 주문들을 담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성경의 메시지로부터 유익을 얻으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학을 형성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신앙 체계나 세계관을 기초로 하여 사고하고 행동한다. 또한 신학을 형성하려면 자신의 신앙체계를 유신론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체계적으로 진술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신학 이해는 정통의 경계선을 설정해 왔다. 그리고 교회가 자신의 신학 이해에 있어서 성경적이라고 주장할 때마다 성경이 중심부에 있어야 하며 성경이 교회의 신학적 사고의 원천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신학과 조직 신학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성경신학은 성경 자체가 담고 있는 신학을 제시한다. 에릭슨은 조직신학을 "기독교 신앙의 교리들을, 문화의 문맥 속에 놓여있으며 당대의 관용 어구들로 기록된 그리고 이슈들과 관련된, 성경에 일차적으로 기초하여 연관되게 진술하려는 신학분야"로 정의하고 있다. 비록 조직 신학 역시 성경적이라는 주장을 표방할 수 있지만 그 목적은 성경의 신학을 보여주는데 있다.
복음주의 학자들은 성경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성경의 통일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진리의 두 양면성은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모두에 대한 토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성경은 신학에 도움을 주는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들은 어떻게 성경의 신학을 형성하고 있는가? 우리는 스스로 세워진 신학, 즉 신학 자체를 충족시키는 의제를 양산해 내는 그러한 신학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1) 적절한 신학화는 올바른 성경 본문에 대한 건전한 주해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
(2) 신학은 몇 가지 특정한 본문이나 단편적인 본문에 기초해서는 안 되며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그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한다.
(3) 적법한 신학은 성경 자체의 강조점들을 고려하고 이것들을 표현한다.
(4) 신학자들은 오늘날의 교회의 삶과 사역에 대한 신학적인 요점들의 의의를 설명하고 조명할 수 있는 방식들로 이들 요점들을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5) 신학은 어떠한 통찰력을 갖고 있든 지에 상관없이 사람이 자신의 사고를 통해 만들어 낸 것에 기초를 두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6) 현대 신학자들은 마치 진공 상태에서 행하듯 또한 자신들 이전에는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이 이슈들을 생각지 않았던 듯이, 그렇게 신학작업들을 행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설교하기 위하여
정확한 해석은 하나님의 메시지의 공적인 선포를 계도하고 이를 통제한다. 그리스도인의 설교는 언제나 성경적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들에게 계시하신 말씀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듣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성경의 메시지를 선포하고자 한다. 성경적 설교라고 주장하는 모든 설교는 반드시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거나 혹은 분명하게 시사하는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건전한 해석하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하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고려 사항이다.
참된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초청하며, 자신들을 대시한 하나님의 구속 행위에 반응하도록 초청한다. 성경은 이러한 뜻과 이러한 구속행위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이기에, 성경의 메시지에 대한 신실된 선포만이 설교자의 사명을 이룰 수 있다.
가르치기 위하여
우리는 설교와 가르침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좋은 가르침은 언제나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어떠한 반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우리의 의제를 얻도록 해야 한다. 좋은 해석학은 자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정말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우리의 탐구를 인도해 준다. 퍼거슨은 이렇게 말한다. "교사는 성경의 의도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과 성경으로 하여금 현금의 이슈들과 문제들에 대한 시각과 안내를 주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목회 상담을 제공하기 위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위로와 권면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긍정적인 지침의 원천이었다. 성경은 사랑의 조력자들이 고통 당하는 자들을 위한 도움을 마련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주요 원천이다. 성경은 위로와 치유를 증진시키거나 소망과 지침을 주는 그러한 가치들과 원리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 훈련을 위하여
성경은 영적 삶을 증진시켜 나가도록 도와준다. 성경의 가르침들과 이들의 함축된 의미와의 지지한 씨름 속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사람들이 되는 데 필요한 주요 원천과 자료를 갖고 있다. 정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주의 깊게 경청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성경을 정확하게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분명히 우리는 우리의 해석을 지도하며 해석의 객관성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해석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미적인 즐거움을 위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즐겁게 한다. 성경은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책이다. 비록 우리가 성경의 가치를 단순히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제한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문학으로서의 성경"이란 측면을 올바로 인정하고 있으며, 성경의 문학적인 탁월성을 해설하고 상술하고 있다. 성경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기쁨의 노래로 영광을 돌린다.
요약
성경의 메시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우리 자신의 의미를 성경에 부여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우리가 취해야 할 타당한 선택 사항이 아니다. 오직 책임성 있는 해석학의 체계만이 우리에게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해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성경 메시지를 먼저 알아야만 그 의미가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바를 성취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최선의 결과는 가장 정확한 해석들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하며, 성경의 경우 이 결과들은 바로 성경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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