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16, 2018

자유의지(바이블나라)

Question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을 의미 하는지,그 개념과 내용과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알고 싶읍니다.
 

Answer.

1. 자유의지의 의미
  (창 1:26-27)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견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 기사를 보면 다른 짐승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생물이 갖지 못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여러 가지 다양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 중에서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이성
  우리는 보통 이것을 "생각하는 능력"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이성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법칙과, 고유한 특성을 파악하여,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학문을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논리적, 조직적,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성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성적인 능력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종교심
  동물은 신을 섬기거나 신에게 기도하고 신을 찬양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동물들이 신을 섬기기 위해 제단이나, 사원, 또는 교회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며 경배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종교심"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분을 섬길 수 있는 종교심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부족이나 민족에도 종교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는 종교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이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3) 양심과 자유 의지
  인간이 동물들과 다른 또 하나는 "양심"과 "자유 의지"입니다. 짐승들은 본능에 의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물론 짐승들도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연 법칙 안에서 일종의 자유를 누립니다. 짐승들도 일찍 일어나거나 늦게 일어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어떤 풀이나 짐승을 먹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인간에게 있는 도덕적인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들은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이 선한 것이고(사람으로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인지(인간으로 피해야 할 일)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양심"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롬 2:14-15).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선과 악을 선택해서 행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지를 "자유 의지"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유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로보트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유롭게 판단하며 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그들의 선택한 일에 대해서 공의롭게 심판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의"라고 부릅니다.

2. 자유 의지의 한계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선한 분이어서 온전히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해서 항상 선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선택이나 행동에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를 가리켜서 "절대적인 자유"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범위 안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상대적인 자유"라고 부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동산의 모든 실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한 기사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 모든 짐승들보다 탁월한 위치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자유를 주심으로 인간이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3. 양심과 율법

 1) 양심
  그러면 인간의 행동을 제한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양심의 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 안에 사람이 마땅히 행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양심의 법 안에서 그들이 행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양심의 법이 옳다고 인정하는 일을 행할 때에만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양심이 선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하면, 그의 양심은 그를 잘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해 줍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양심이 정죄하는 일을 하면, 그의 양심은 그를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진 양심의 능력은 온전했기 때문에 아담은 그 법을 따라서 산 경우에 영생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금하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만물 관리자의 역할을해야하고, 선악과의 열매를 먹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스스로 양심이 악하다고 판단하는 일(선악과를 먹은 일)을 선택하였으며, 그 일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에덴에서 쫒겨 났으며, 그의 양심의 판단력은 무뎌지고, 왜곡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양심의 판단력은 절대적으로 온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은 여전히 우리가 행할 일와 피해야 할 일에 대해 예리한 판단을 내리고, 우리의 행동에 대해 격려하거나 정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이러한 양심의 법이 악하다고 하는 일을 스스로 행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2) 율법
  인간의 양심이 무디어 지게 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특별한 민족에게만 주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특별 계시"라고 부릅니다. 이에 반해 "양심"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일반 계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인간이 마땅히 행할 일과 피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디어진 인간의 양심으로 인해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의지의 타락과 하나님의 대책
  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아담의 타락 이후에 연약해져서 양심이(율법이) 선하다고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양심이 악하다고 판단다는 일만 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에 그것이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그 일이 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면서도(양심의 정죄를 받아가면서) 그 일을 중단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의지의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종의 영적 질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바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죽게 해서 죄인들의 모든 죄 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렘 31:31-34). 하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무조건 용서해 주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서 병든 인간의 의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병든 의지는 선하다고 판단한 일을 하지 못하고, 악하다고 판단한 일을 좆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양심과(율법)이 선하다고 판단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의지를 인간에게 제공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좆는 사람(성령충만)은 죄를 이기고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겔 36:26-27).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며, 또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 안에는 부패한 의지와 성령의 의지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은 부패한 의지를 좆던 우리가 점점 더 성령의 의지를 좆아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갈 5:16-18). 성경은 우리의 부패한 의지를 가리켜 "육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우리가 육신을 좆을 때에 맺는 열매들을 "육신의 열매"라고 부르고(갈 5:19-21), 성령을 좆을 때에 맺는 열매를 성령의 열매라고 부릅니다(갈 5:22-23). 

  우리가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 열매를 함께 맺고 있지만, 주님의 재림으로 인해 우리 몸이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때에는 온전히 성령의 의지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는 아담이 누르지 못했던 영생의 축복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http://biblenara.org/q&a/Q48.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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