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6, 2018

사도의 감사(1): 믿음, 사랑, 소망 

사도의 감사(1): 믿음, 사랑, 소망 

* 본문/골 1:3-8


감옥에서 사랑하는 제자 에바브라의 방문을 받고, 그가 섬기는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들은 바울은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은 에바브라를 통하여 참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교회의 상황을 듣고 디모데와 함께 생각한 바를 글로 써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편지는 제자인 에바브라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먼저 바울은 당시의 편지 형식에 따라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다음에 수신자인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인사합니다. 그는 그들에게 2절에서 보듯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은 기도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3-8절에 걸쳐서 바울은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전달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그는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사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마다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에“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정말로, 기도할 때 감사하다는 생각 속에서 하는 기도! 얼마나 행복한 기도일까요?


흔히, 기도란 어려울 때, 힘들 때, 어떤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 등등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어 상황으로 인하여 겪는 어려움들을 생각하면 힘이 빠지고 눈물이 나고 마음 한 구석에 깊은 아픔을 느끼며 힘들게 기도하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지금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기쁘고 즐겁고‘참으로 감사합니다!’하는 느낌과 생각이 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기도일까요!


여러분들의 기도는 어떠하십니까? 이런 깊은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우리의 기도 상황이 이런 행복하고 감사가 넘치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갈라디아 교회와 같지 않고(갈 1:7- 복음을 변하게 하고, 혼잡하게 하는 교회), 사도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소아시아 교회들(벧전 4:17-복음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교회)과 같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교회는 마치 데살로니까 교회와 비슷하였던 것 같습니다.


* 살후 1:3-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이제 바울은 4-5절에서 기도하기 전 갖게 되는 이 감사가 어떤 조건과 이유 때문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시간과 다음 시간에 걸쳐 기도하는 바울의 감사의 조건들을 살피며, 그 속에서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구원의 진리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 골 1:4-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바울은 이 감사에 대하여 세 가지의 중요한 단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이 세 가지 단어가 자주 함께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전13:13일 것입니다.


*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바울은 교회의 설립자인 에바브라로 부터 복음을 듣고 형성된 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표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갖고 있는 바 온전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신앙의 덕목을 갖고 있을 때 바른 교인의 모습이 될까요?


1. 바른 믿음의 삶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예수 안에서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예수 안 en Christou" 란 말은 믿음의 제한성을 말합니다. 어원상, ‘믿음(pistis)’은 '순종(peitou)' 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이는 순종은 믿음에 따른 결과입니다. 즉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개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시며 친히 모범을 보여주시며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히 5:8-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에 따라 사도 베드로는 이 순종하는 믿음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며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 벧전 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이렇듯 믿음은 막연한 기대와 바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바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구원의 도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살펴본 대로, 히브리서는 가장 기초적인 구원의 도리인 믿음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 것입니다.


*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즉 믿음이란 바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뢰요, 보지 못한 것이나 그 확실함에 의심하지 않는 그 어떤 순종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마치 산길을 운전할 때 굽은 곡선의 도로에서 앞이 보이지 않지만, 전혀 의심하지 않고 앞을 향하여 운전하듯이,이름있는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을 때, 의심하지 않고 맛있게 먹듯이 믿음이란 알고 믿은 바에 대하여 의심없이, 그리고 그 진리가 제시하고 있는 바에 대해 신뢰를 갖고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신하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얻는 믿음(saving faith)란 어떤 것일까?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즉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하여 회개(고백)하고, 그 구원도리에 대한 깊은 감사로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구원은 말씀을 듣고, 고백하고, 순종하여, 헌신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아무리 선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허더라도 그 선행이 그를 구원해 주지는 못합니다.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는 이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


* Martin Luther, "선행이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이 선행을 합니다. “


 

2. 사랑의 삶


사도 바울은 4절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실천하는 모든 성도들을 위한 사랑의 삶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된 성도란 자기만 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변 성도들과 얼마나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교인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변화된 성도는 자연스럽게 참된 영적 생명의 회복됨을 고백하며 자신 속에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깊은 감격과 감사로 옆에 있는 이웃에 대한 깊은 긍휼과 애정과 간절함으로 대하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이러한 믿음을 갖고 주변 성도들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특별한 사랑입니다.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은 도저히 사랑할 수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깊은 마음의 변화를 갖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한 유언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그리고 주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하라는 자신의 말씀을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까지 실천하셨습니다.


* 마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눅 23:34a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3. 소망의 삶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감사는 그들이 갖고 있는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이 소망은 성도가 복음으로 인하여 얻게 되는 귀한 덕목 중에서 최고의 덕목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을 수없는 미래에 대한 믿음, 사모함 얼마나 귀한 믿음의 결과입니까!


그러나 이 소망이 믿음과 사랑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 롬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그렇습니다. 바른 성도들은 내세에 주어질 영광스러움을 확신함으로 현세에 주어진 삶의 현장 속에서 진실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골로새 교인들이 누리는 아름다운 성도로서의 삶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들은 현재의 교제가 장차 누릴 그 영광스러운 영원한 교제의 연습이요 훈련이요, 모형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사람들은 내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장차 주어질 그 영광스러운 구원의 완성에 대하여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 어느 교훈과 진리에서도 확실하게 다루고 있지 못하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바울은 이 소망은 “하늘에 쌓아둔 것” 이라고 말합니다. apokkeimai란 단어는 쌓아두는 것(in store) 보관하여 두는 것(reserved)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소망은 바로 하늘에 쌓아두는 믿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이 진리를 설명하였습니다.


* 벧전 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영원한 소망을 주십니다.히브리서 기자는 이 소망의 믿음을 “영혼의 닻과 같은 것”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히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John MacArthur, " 성도가 갖는 소망의 믿음은 영혼의 닻이요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된 끈이다.“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담대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소망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의 소망을 완성시키십니다.


* 요일 3: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러기에 이 소망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깨끗한 삶을 살면서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이 진리에 투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과의 차이점일 것입니다.


성도들은 분명히 세상과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현세를 살아갑니다. 이 독특한 관점(perspective), 인생관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그 영광됨을 확신하고 그 순간과 그 영원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서의 만족과 안락함과 영광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관점입니다.


그 예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성도의 배표 주자로서 구약의 모세를 듭니다.


* 히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의 소망을 무엇입니까? 이 믿음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의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까? 사도 바울의 설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 롬 8:16-18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이 귀한 고백과 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세상의 온갖 죄를 극복하며, 그것들과 타협하지 않고, 고난과 환란을 감수하며 이겨나갑니다. 그 이유는 장차 주어질 그 영광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소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귀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Jim Elliot(Auca Indian 선교사, 순교자), “선교사란 얻고 지킬 수 없는 것이나, 또한 잃어버리고 내다버릴 수밖에 없는 하찮은 것을 주는 바보들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영원히 누릴 보배를 전달해 주는 영원의 전달자들입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결론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갖게 된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하여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바르게 들으면 어느 누구에게나 나타나게 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고생과 수고가 다 지난 후, 광명한 천국에 편히 쉴 때


주님을 모시고 나 살리니, 영원히 빛나는 영광일세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뵈옵나니 지극한 영광 내 영광일세


바라기는 찬송 289장의 찬송이 여러분의 매일의 삶속에서, 여러분의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장차 우리 주님 앞에서 힘차게 불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음의 효과 가운데 바른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아멘

(주일설교, 9-1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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