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선교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선교하면 좋습니다.” 라는 주제는 “이렇게 인생을 살면 좋습니다.”라는 말과 같이 너무 광범위한 주제이다. 마치 세상 사는 사람들의 인생살이가 각 민족과 인종, 언어와 풍습에 따라 천차만별이듯이 선교 또한 선교 의식과 선교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교사의 관심과 재능에 따라 다를 수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다만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선교 정신을 다섯 가지로 압축하여 좋은 선교에 대하여 논하려고 한다.
(1) 선교의 주체가 나에서 하나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교한다는 생각에서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동참하는 것이라는 의식이다.
(2) 특정한 선교지로 가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이 선교지라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3) 특정한 곳에 복음 들고 나간 사람만이 선교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선교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선교사이다. 특정한 곳에 가 있다 할지라도 선교 마인드가 없이 살면 선교사라고 할 수 없다.
(4)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꿈이 아니라 현재부터 이루어져 가는 미래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후의 나라를 꿈꾸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부터 이루어지기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5) 선교의 목적이 외형적인 큰 업적에 있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과 한 영혼을 깊이 사랑하고 구원하는 데 있다.
이런 선교정신을 전제로 다음 다섯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1.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해야 한다.
선교는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이 주체가 되신다. 선교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신다. 우리는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맞추어 발을 맞추고 동참하면 좋은 선교가 된다. 요한 블라우스(Johannes Blauw)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The Missionary Nature of the Church)에서 선교가 본질상 일차적으로 교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파송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원심적인 존재이다. 선교 이해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성서적 배경이며 성서에서의 최초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고, 최초의 선교사는 예수이시다. 선교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하나님의 활동이며 인간을 향하여 행하신 그 활동에 감동하여 동참코자 하는 인간의 행위인 것이다. 버려진 돌이 하나님의 나라 모퉁이 돌로 순종하므로 쓰임 받으면 좋은 선교가 된다.
2. 우리 모두가 선교사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내실 때, 자기 나라와 친척을 떠나 위대한 미지의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다(창세기 12:1-3). 또한,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로 보내고 기근 시에 땅 위의 경건한 그루터기를 보존하게 하셨다(창세기 45:4-8). 그 후에 하나님은 이집트의 압박 밑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모세를 보내시며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 3:10)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고 자기 백성에게 경고와 약속을 말씀하셨고 때가 차매 그 아들을 보내셨다(갈라디아서 4:4-6). 선교 중에서도 아들의 선교는 핵심이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의 사역 완성이고 성령의 파송을 내포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그의 기도 속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한복음 17:18)라고 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는 다락방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한복음 20:21)고 하셨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름을 받았든지 간접적인 부름을 받았든지 아니면 급진적인 소명의식을 가졌든지 점진적인 소명의식을 가졌든지 외국에 선교사로 일하든지 국내의 사역자로 일하든지 지역과 관계없이 우리는 지금 세상에 선교사로 살고 있다는 정체성을 가지며 살 때 우리는 좋은 선교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도 선교사로 살고 있다는 정체성이 곧 좋은 선교이다. 외국에 나가서 전도해야만 선교가 아니라 내가 거하는 가정, 내가 사는 지역으로 보내심을 받아 우리는 가정 선교사, 직장 선교사, 지역 선교사로 살고 있다. 결국, 선교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 좋은 선교이다.
3.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완전’에서 신앙과 인격의 일치는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이며 특히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이며 삶의 모델이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선교적 사명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속의 은총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소망을 품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승리함을 믿으며 행동하며 더불어 사는 삶이 곧 선교이다. 진정한 선교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셔서 더불어 사신 것처럼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1:1; 3:16-17).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진 성령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으로 표현하였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에베소서 4:4-6) 오늘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라고 하신 명령을 지키며 서로 신뢰하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 더불어 살아간다면 좋은 선교를 한다고 믿는다. 세상 속 현장을 예수의 안경으로 바라보며 예수의 마음으로 살며 예수의 심장으로 느끼며 예수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살면 좋은 선교이다.
4.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분명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 세상은 바로 나에게 선교지이다.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이고 한국이나 미국, 중국이나 유럽 등 어느 나라든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고 있고 체험하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이 곧 선교지이다. 또한, 이 현장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우리 목적이다. 세상은 동물왕국(kingdom of animal), 인간왕국(kingdom of man), 하나님 왕국(kingdom of God)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바울은 사람도 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누구든지 욕망과 쾌락을 위해서만 살고 있다면 육에 속한 사람, 즉 동물 수준으로 동물왕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성과 철학과 법에만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면 육신에 속한 사람, 즉 인간 왕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사랑, 평화, 정의를 위해 살면 영에 속한 사람, 즉 하나님 왕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 14:17)고 하였다. 시기와 질투와 싸움과 전쟁이 그치지 않는 이곳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며 날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새 생명을 경험하면 좋은 선교이다.
5. 우리는 한 영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시대가 원시시대보다 많이 발전하고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역사가는 “옛날보다 지금이 나아진 것은 없고, 있다면 한 사람을 죽이던 과학기술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과학기술로 발전한 것뿐이다”라고 말하였다. 현시대의 관심은 외형적인 기계, 과학, 물질문명이다. 이런 시대에 한 영혼을 위하여 오시고 온 천하보다도 한 인격체를 귀히 여기신 예수님 사랑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은 선교이다. 인간이 주인공인 세상에서 우리가 만든 과학문명이 우리를 지구의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 슬픈 현실 앞에서 소외되어가는 인권과 자유와 정의를 찾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선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아들 예수의 제자로 살기를 원하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사는 것이 선교이다. 바울은 우리를 빚진 자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자연과 우주에 민족에게 나아가서 수많은 분에게 빚진 자이다. 우리가 빚을 갚는 마음으로 자연과 우주를 대하고 민족을 대하고 사람을 대하고 살면 좋은 선교를 하는 것이다.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거저 주는 자로 사는 것이 선교이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는 선교 마인드를 가지고 살면 좋은 선교가 된다.
/ 글쓴이: 조영철 목사 (choyoungc@hotmail.com), 연합감리교회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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