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9, 2018

폴 워셔 비판에 대한 반론

폴 워셔 비판에 대한 반론

/ 김병혁 목사

위의 영문 자료 출처는 

http://www.jesus-is-savior.com/Wolves/paul_washer.htm

입니다.

이 글은 www.jesus-is-savior.com 이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David J. Stewart라는 사람이 쓴 것이지요. 한 주에 7만명 이상이 접속할만큼 꽤 유명한 사이트이긴 하지만, 이 사람 개인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신앙적 관심사가 워낙 방대하고 조잡해서 한 마디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의 글을 보면 대부분 비평과 비난조의 글인데, 유익한 내용도 많지만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독선적인 내용도 많습니다.

그는 현재의 기독교(특히 미국 기독교)와 기독 유명 인사들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고 있지만, 정작 자신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신비주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을 파악하려면 그가 쓴 글로 밖에 확인할 수 없는데, 차제에 그의 사이트에 올려진 글들을 살펴보니, 신학적으로 위험한 요소가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신학적 사고의 연원을 정리한다면, 제세례주의와 세대주의가 절충된 극단적 근본주의(Radical Fundamentalism)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하여 그의 주장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대 기독교의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기독교의 구원의 유일성을 일관되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개혁신학과는 커다란 간격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그는 역사적 칼빈주의 혹은 칼빈신학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칼빈주의의 5대 교리(TULIP교리)를 '이단적인 가르침'이라고 단정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영문 글을 유심히 읽어보신 분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글대로라면 Paul Washer 목사가 행위구원론을 강조하는 것 같고, 자신은 전통적인 개혁교회가 부르짖는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을 주장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자는 알미니안 전통에 속한 반면, 후자는 칼빈주의 전통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David J. Stewart는 칼빈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에, Paul Washer 목사의 설교에 대해 이 사람이 비판하는 내용은 그리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세대주의 권에서 줄곧 지속되어 오는 '주되심 교리'(The Lordship Salvation Doctrine) 논쟁의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David J. Stewart는 '주 되심 교리'를 반대하는 전형적인 주장입니다. 이 사람이 Paul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Paul 목사가 구원을 말할 때에, 은혜로만 얻어지는 구원이 아니라 행위를 조건으로 삼는 구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Paul 목사가 그의 설교에서 구원 받기 위해서 죄에서 떠나야 한다거나 회개해야 한다거나 순종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행위 구원론을 조장하는 내용이므로 복음을 왜곡한 비성경적인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언뜻 들어 보면 맞는 말 같이 들리지만, 이는 성경적 구원에 대한 일방적인 오해로부터 야기된 것입니다. 건전한 주되심 교리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믿음으로 이끄는 복음의 부르심은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권위(주되심)에 복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여기서 말하는 회개와 복종을 마치 인간 편에서 구원을 이루기 위한 조건처럼 이해하기 때문에 주되심 교리를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믿음과 행위를 상치된 개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설명하자면, (인간의 노력이나 수고없이) 오직 믿음으로서 얻는 칭의는 반드시 거룩과 경건을 도모하는 성화의 과정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되거나 분리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래서 칼빈 역시 믿음을 늘 경건과 관련해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믿음의 경건의 원인이며, 경건은 믿음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David Stewart가 바로 이 점에서 Paul Washer의 설교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Paul 목사를 두둔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일전에 지금 David Stewart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한창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얼떨결에 듣게 된 설교여서, 그 한편으로 Paul 목사의 신학 사상 전체를 평가하기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평소 지향하는 신학이나 그가 존경하는 신학자들의 면모를 볼 때, 그를 가리켜 복음의 배교자, 이단적 복음을 전하는자, 행위구원론자라고 부르는 David Stewart의 견해는 얼토당토한 생각입니다. 

어떤 점에서 Paul 목사의 설교는 청자와 의도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있는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말로는 주를 찾지만 구원의 좁은 길에 서기를 반대하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고민과 도전을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다보니 구원의 칭의적 관점보다는 성화적 관점에서 보다 강하게 어필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도의 참된 믿음에 관하여서 뿐만 아니라 참된 행위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은 언급이 있습니다. 구원의 원인으로서는 믿음이 강조되지만, 구원의 열매로서 행위가 강조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도 바울은 서신서들의 첫 부분에서 늘 자신의 소명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된 예정을 언급하지만, 후반부에서는 성도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삶의 본분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교훈들을 언급합니다. 믿음과 행위, 칭의와 성화는 구원론에서 바늘과 실과 같이 다루어져야 할 주제입니다. 

고로, David Stewart의 글은 Paul 목사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서, 그 자체로 성경적인 구원론에 대한 매우 편협적인 사고에서 기인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지적한다면, Paul 목사가 속한 교단의 상황이나 그가 교제하는 사람을 근거로 그를 거짓 선생으로 단정하는 태도는 참된 신앙을 추구하는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정보만 더 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David Stewart가 자신의 주장에 각주를 달듯 소개하는 Dr. John R. Rice 와 Dr. Harry Ironside는 세대주의 신학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되심 논쟁'에 관해서는 J. MacArthur 목사의 'The Gospel According to the Apostles'라는 책을 참조하세요. 다행히 이 책은 '구원이란 무엇인가'(부흥과 개혁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출처: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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