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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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한 절 묵상(01152019)

🎯에베소서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 to the praise of his glorious grace, which he has freely given us in the One he loves.

📍말씀 주석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방법으로 제시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되었음을 시사한다.
'사랑하시는 자'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 메시야적 칭호였다(Lincoln).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양자로 삼으시기 위함이지만 보다 더 궁극적인 목적은 죄인인 인간의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Hendriksen).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시는 행위의 원리이다(2:5, 8). 이 은혜를 통한 구속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셔서 양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 

📍말씀 이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을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시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자녀가 된 성도들이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게 하셨다'고 선언합니다.

1.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주석이 설명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혹은 아들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언제나 아들 예수 구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시며 전하셨습니다.

이를 요한복음 5:19-2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Jesus gave them this answer: "I tell you the truth, the Son can do nothing by himself; he can do only what he sees his Father doing, because whatever the Father does the Son also does.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 For the Father loves the Son and shows him all he does. Yes, to your amazement he will show him even greater things than these."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께 모든 것을 알리셨고,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2.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는 아무런 댓가없이 '거져 주시는 바
(freely given us)'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고 율법을 지킴으로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자 했던 당시 유대인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거져 (값 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 곧 은혜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24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고 말씀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행위나 노력이 없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수도께서 흘리셨던 십자가 보혈의 죄사함(redemption)으로 구원을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신이 직접 인간에게 찾아 오셔서 계시하시며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가 바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입니다. (기독은 그리스도의 한자 표기입니다.)

3. 바울은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댓가 없이 구원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기쁘게 찬양할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믿는 개혁주의 신앙 (Reformed Theology or Belief)의 핵심을 잘 정리해 놓은 '웨스트민스트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과 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질문 1)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무엇인가?

대답1)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과 영원토록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함이다.

성도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할 때에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 곧 창조의 목적이 성취됩니다.

📍말씀 적용

엡 1:6을 묵상하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어떤 노력을 요구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결국 그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여 영화롭게 하기 위함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최조의 인간 아담과 아와는 죄가 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즐거워하며 그분 안에서 모든 소망을 두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은 강요된 기쁨이 아니라 죄가 없는 곧 하나님과 분리되어 서로 관계가 깨어지지 않았던 완전한 상태의 인간이 누렸던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오면서 몹시 자기 중심적이고 스스로의 유익과 즐거움을 찾으며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복음은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 본래 인간에게 주어졌던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소망을 회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진심로 하나님만을 즐거워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합니다. 구원을 받아 법적으로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마음에서 뿜어내는 악한 죄로 실족합니다. 여전히 죄가 마음에 남아서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은 바로 이러한 죄된 상태를 밀어내고 말씀으로 채워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첫 출발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일입니다. 받은 은혜의 깊이 만큼 그 사랑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절감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이미 충분히 그리고 완전히 영화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화로우셨고 그로 말미암아 창조된 그 어떤 것도 이미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성도가 그의 영광을 반사하여 드러내어서 세상에 비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죄된 속성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려는 믿음 사이의 부단한 영적 그리고 실질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시작해서 지속되는 하나님의 은혜로 끝이 나지만, 그 여정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자유로 주신 의지를 드려서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하는 특권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주님을 뵙는 그날까지 부단히 진행될 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비록 미약하고 매우 부분적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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