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3, 2019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송명선 목사)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함께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방패를 자랑하며 이 방패는 단단해서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창을 자랑하며 이 창은 날카로워서 어떤 방패라도 뚫는다고 말했다.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으면 어떻게 되겠소?”

세상에 이런 방패와 창은 함께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경우를 ‘모순’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상반되는 공의와 사랑의 두가지 속성이 모두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 혼란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는 공의와 사랑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공의와 사랑이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마치 동전에 안과 밖이라는 양면이 있으나 동시에 한 동전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은 양면을 가지고 있으나 동시에 ‘하나’라는 동일성을 분명히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 그렇치 못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사랑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말씀속에서 죄를 책망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공의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은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함으로 여전히 율법아래 묶여있게 된다.

하나님의 두가지 속성인, 공의와 사랑의 양면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죄인된 인간을 사랑하셔서 용서하시길 원하시는,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죄때문에 사망이라는 심판을 내리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딜레마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속성의 어느 한 쪽도 거스려서 행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만일 어느 한 쪽만 택할 수 있으셨다면 왜 하나님께서 굳이 예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대신 죽이셔야 했겠는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양면적인 두 속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속성과 동시에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의 속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죄인은 사랑하시나 우리의 죄는 반드시 심판하셔야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속성때문에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대신에 심판을 받으셔야만 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공의만 알면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또 반면에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고 사랑만 알면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렇게 어느 한 쪽만 선택해 온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이자, 또한 교회의 역사인 것이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16:6)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용납할 수 없는 ‘거룩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fear of God)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또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랑과 은혜의 메세지가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적인 차원의 사랑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죄인은 용서하시나, 죄는 결단코 용서하지 않으시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하나님의 속성의 양면성과 동일성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순종할때 우리는 진실로 주 안에서 자유와 안식을 누릴수 있다. 그래서 진리는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다.

하나님의 속성이 양면성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하나’라는 동일성을 이해하게 될때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서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받은 죄사함으로 인해 주안에서 안식을 누리지만, 또 동시에 하나님의 엄위하심 (sternness)을 생각하고 두려움을 가짐으로써 죄악으로부터 떠나게 된다. (롬11:22)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시2:11)라고 말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잘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셨다. 우리도 호세아 선지의 외침처럼 이런 하나님을 알기를 힘써야겠다. (호6:3)

하나님은 선지자 미가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신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을 알기 위해 전심으로 주앞에 나오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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