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이란 어떤 상태인가?
/ 배본철 교수(성결신학대학교)
Q) 성경에 보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어떨 때 기도를 많이 하고 나면 성령 충만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걸 말하는 건가요? 정확히 어떤 상태가 성령 충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A) 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말은 정말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그 의미가 무언지에 대해서는 딱 꼬집어 말하기가 곤란한 모호한 면이 있는 듯합니다.
사실 성령 충만의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성령의 은사나 기적 행함 또는 열광적인 기도의 몰입이나 황홀경의 체험 등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령 충만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배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이끌리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성령 충만의 원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단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상태만 가지고는 우리를 충만히 다스리지 못하십니다. 우리들 자신의 욕망과 편견 등으로 가득 찬 영혼으로는 결코 성령 충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성령께 온전히 우리의 영혼이 붙잡히게 될 때 성령 충만의 상태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성령에 충만할 때 우리의 삶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찬송과 감사와 복종의 영으로 넘치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8-21).
성령 충만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뜻으로 늘 영혼이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가 곧 성령 충만의 상태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대개의 크리스천들이 관념상으로는 성령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생활 속에서 성령께 인격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이 비록 성령 충만을 구하고 있지만 이를 얻지 못하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많은 기도를 드렸을지라도, 실제로 그들의 삶 속에서 성령께 인격적인 복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성령 충만을 구하고 계시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는 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과연 내가 성령께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온전한 복종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시다면 이제는 마음의 태도를 회개하여 주님께 대한 복종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때 성령 충만을 받았으나 현재는 충만한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자주 쓰러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과연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성령께 복종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그 부분을 새롭게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난 이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히 우리의 영혼을 통치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 신자의 삶이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그 분은 인격을 지니고 인격적인 관계를 우리와 맺기 원하십니다.
또한 성령 충만이란 <성령과 친밀히 교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피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8-10).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멀리 했던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온 것은 죄악과 수치와 두려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한 인간의 영혼은 부패한 죄성을 유전(遺傳)으로 온 인류에게 이어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어진 교제의 다리를 다시 잇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죄인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신앙의 경륜이 오랜 분들만이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초신자라 할지라도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 나누기를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성령 충만한 상태를 맞이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회복이란 바로 주님과의 끊어진 교제를 다시 잇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