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자적인 의미
영생이란 단어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요한복음입니다. 헬라어로 "영생"은 "조에(life) 아이오니오스(eternal)"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에서만 이 말이 17회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조에"(생명)라는 말과 "아이오니오스"(영원한)라는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영생"이라는말은 문자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이것은 첫째로 시간적으로 "끝없이 지속되는 생명"을 의미하고, 2) 둘째로 질적으로 "인간의 삶과는 다른 신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말에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삶이란 의미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신적인 삶이란 의미를 둘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성경적인 의미
1) 구약에서
원래 구약에서 "생명"이란 말은 "영원한 삶"이나 "죽은 후의 삶"보다는 지상에서의 완전한 복지를 의미했습니다. 구약에서 생명을 누리는 것은 장수(시 시 91:16), 가족의 축복(전9:9), 번영(신 28:1-), 안전(신 8:1),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시 16:11, 신 8:3, 렘 2:13 등)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축복과 선물을 누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구약에서 이러한 생명을 누리는 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신 30:15-20).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불멸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누리는 축복은 죽음도 초월할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영생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려 주실 것이라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19)"
특히 (단 12:2)에서는 직접 "영생"이라는 단어가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영생"의 의미는 "죽은 자들이 부활 후에 경험하게 될 생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2) 공관복음에서
공관복음에서 "영생"의 의미는 주로 "내세에서 누릴 신적 생명이나 영적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주님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헌신한 사람들은 내세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0:30) 또한 주님은 장차 악인들은 "영벌"에 들어가고, 의인은 "영생"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 25:46). 이와 같이 공관복음에서 "영생"은 이 세상이 아니라, 내세에서 누릴 생명과 축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3) 요한복음에서
가. 내세에서 누리는 영생
요한복음에서도 "영생"의 의미는 공관복음처럼 "내세에서 누릴 영원한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나, 이 세상에서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2:25).
나. 현실에서 누리는 영생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영생은 "내세보다" "현재"에 누리는 축복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며, 그 축복을 주님 안에서 현실 속에서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자신에 세상에 오신 것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이 현실 속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10). 주님은 세상에서 굶주리고 갈증을 느끼는 자들을 만족시켜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요 6:35). 이러한 생명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요 12:49-50).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산 떡"이며(요 6:51-), "생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요 4:10,14).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은 그 생명을 아들에게 주셨으며, 이로 인해 주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요 5:26, 11:25). 이러한 점에서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요 11:25-26, 14:6). 여기에서 주님은 주님을 믿는 자는 죽은 후에라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살아도 주님을 믿는 자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은 내세와 현실을 하나로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생의 본질: 하나님을 아는 지식
또한 요한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영생"을 가리켜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요 17:3). 여기에 "영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중보자이신 "아들"을 아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안다"는 말은 지식적인 앎을 넘어서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전인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서 누리는 축복에 있습니다. 이러한 영생의 축복은 이미 주님을 믿은 성도들에게 현실 속에서 시작되었으며, 죽음을 넘어서서 내세에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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