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5, 2017

신앙과 인격의 조화를 위하여 / 서정호 목사

🌻신앙과 인격의 조화를 위하여
/ 서정호 목사(서울 영암교회)

교회에서는 은혜로 버팁니다. 그러나 삶을 살다보면, 삶 속에서는 인격으로 버팁니다. 또한, 예배 때에는 영이 드러나지만,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육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교회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한결 같은 성도가 진짜 성도입니다.

은혜가 인격을 대신할 수 없을 때가 많고 인격이 은혜를 대신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는 영을 드러내고 생활 속에서는 육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인격과 은혜의 조화, 영과 육의 균형은 참으로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교회에서는 성령충만하던 사람도, 일상적인 삶을 살다보면 은혜가 바닥나고 육과 미숙한 인격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자신도 힘들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감정의 조절능력이 상실된 사람입니다.

은혜는 충전은 빨리 되지만 지속 시간이 지극히 짧습니다. 한 시간도 못 버티고 육이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한결같은 착함과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복 주신다고 했습니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아니라, 한결같은 봄날이 좋습니다.

일을 해보면 참으로 더 많이 함께 하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일을 해보면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습니다.  은혜가 중요하지만 일을 해보면, 은혜를 담고 있는 그릇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은혜 없는 육은, 무익한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고 착해도 은혜 없는 착함은, 자기 의와 합리화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없는 육도 문제이지만, 미숙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의 은혜는 더 큰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미숙한 인격의 소유자라 함은, 이기적이며 신실치 못함을 말합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는 온 열성을 바쳐 주의 일에 힘쓰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교회조차 오기 싫어합니다. 반대로 일은 잘하는데, 은혜로 하지 않음으로 인정받으려 함도 위험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집사들을 세울 때 성령충만하고 착한 사람들을 세우라 했습니다. ‘성령충만으로’만은 안 됩니다. 착해야 합니다. 이 말은 인격과 은혜의 하모니를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을 때는 착함으로 버티고, 인격이 미숙할 때는 은혜로 버티면 됩니다. 은혜는 변합니다. 감정도 변합니다. 열정도 변합니다. 상황도 변합니다. 그러나 인격은 잘 안 변합니다. 그러므로 본성이 착한 사람들이 은혜 받으면 금상첨화입니다.

은혜 받을 때 충성하는 것은,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은혜 없을 때도 충성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았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바닥났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은혜가 충만할 때 기도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하나도 없을 때 기도하러 교회 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게 이익이 될 때 열심을 내는 것,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손해가 날 때도 열심을 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므로 성장이란, 모든 면에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의지의 어른, 감정 조절의 어른, 인내의 어른, 희생의 어른, 믿음의 어른...

누구나 신앙이 초보일 때와 인격이 미성숙할 때는 감정에 뿌리를 두고 삽니다. 기도도 봉사도 헌신도 감사도 아멘도..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고 인격이 완숙해지면 말씀과 의지에 뿌리를 두고 삽니다. 뿐만 아니라 나보다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마음이 항상 한결같습니다.

주의 일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와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함께 성숙한 인격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반죽될 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기차의 레일 같아서 하나라도 빠지면 기차가 전복하듯 우리의 삶도 신앙도 전복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거나 교회가 서로 성처를 주고 받으며 분열되는 이유는, 은혜의 부족이 아닙니다. 인격이 충실한 교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실하지 못한 교인들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교인들 때문입니다. 애 같은 어른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은 주관적인 은혜를 성숙한 인격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말끝마다 은혜를 달고 사는데 성숙하지 못한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적이라는데 약속을 못 지키는 교인들로 인해 세상의 전도의 문은 점점 닫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착하고 순한 교인들을 찾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사악하고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들을 물리치십니다. 그 마음이 언제나 그 마음인 사람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순수함과 순박함이 무기입니다. 착함(심지가 견고함)이 성령충만을 담을 그릇입니다. 은혜가 좀 모자라도, 그리 성령충만하지 않아도 성숙한 인격으로 교회와 이웃과 교우들을 변함없이 섬겼으면 좋겠습니다.

한결같은 성품, 변함없는 마음, 흔들림 없는 믿음,
그것은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무장해야 할 첨단무기입니다. 착함과 믿음은 군인에게 있어서 포기할 수 없는 창과 칼입니다. 더 많이 착해 집시다.

목까지 차오르는 은혜를 더 많이 받읍시다. 은혜를 받지 말고 은혜에 잠겨 삽시다. 은혜로 옷을 입읍시다. 그리고 순둥이가 됩시다.

은혜는 많은데 인격은 미달이고, 인격은 훌륭한데 은혜가 바닥이면, 그것은 향기 없는 꽃이며, 열매 없는 나무 입니다. 거룩한 순둥이, 사도행전적 은혜파! 이 두 가지는 우리가 평생을 두고 꿈꾸어야할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당신은 은혜로 삽니까? 아니면 인격으로 버팁니까?

아니면 둘 다 부족하여 죽을 지경입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얼른 장성한 용량의 어른이 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아이 같은 어른으로 사는 것, 그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애들의 특징은 항상 징~징 거리는 것입니다. 잘 삐지는(상처)것이며,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잘 삐지고, 잘 참지를 못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어른 아이"일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처 받지 않았던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다면 당신은 진정 어른 신앙을 소유한 믿음의 부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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