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은혜'(Holliness By Grace) 중에서)
서 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19:2)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 거룩한 분을 따라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하기를 3)"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벧전 1:15-16)
1. 참으로 하나님은 그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기를 바라시는가? 하나님은 무한히 순결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연약한 인간에 불구하다. 그렇다면 ‘거룩하라’ 는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연약성을 무시한 것이거나, 아니면 좌절감만을 잔뜩 안겨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2. 이 명령이 의미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 혹은 낙심 가득한 마음으로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고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다.
3.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라’ 는 명령을 복종할 수 있게 하시는가? 천로역정에 나타나는 거울, 뒷면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는 거울, 거울 전면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흠과 상처투성이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게 되지만, 뒷면에 자신을 비추어보면 하나님 아들의 영광스러운 모습만 보인다.
4. 성화의 삶이란 우리 스스로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이다. 은혜란 거룩하신 아들 예수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5.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르는 온갖 연약함과 잘못을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한, 거룩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마치 우리가 전혀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사랑으로 대해 주신다.
6.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춘 이는 그리스도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도 그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기 때문이다.
7. 선한 구석이란 전혀 없는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은 우리 영혼에 큰 기쁨을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뒤의 삶, 곧 성화의 삶에 대한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8.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뒤에는 선을 행해야만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들은 그분의 사랑을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선을 행하고자 끊없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스스로의 선행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그들을 지배한다.
9. 부모나 배우자, 기타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발전되어 온 이와 같은 심리 상태가 신앙 생활에도 영향을 끼쳐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10.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항상 은혜로 우리를 바라보신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의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항상 우리를 자녀로 여기신다.
11.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힘을 주시며 사랑과 지혜로 끊임없이 격려하신다. 비록 우리가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 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은혜로 대하신다.
12.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의롭다 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격려의 수단이며, 솟아나는 기쁨으로 그분을 섬기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13. 우리는 은혜를 통해 기쁨과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를 확실히 알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사느냐, 아니면 낙심과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사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 하늘의 관점에서 생각할 것인가, 땅의 관점에서 생각할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14. 은혜를 강조한다고 해서 행위에 대한 관심을 무조건 도외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행위를 무시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세속적인 위험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려는 생각 없이 무작정 은혜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15.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강조하면 율법폐기론/방임주의에 빠지고, 그 반대로 하면 잘못 주장하면 율법주의에 빠진다.
16. 율법주의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행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반면, 방임주의는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믿게 만든다.
17. 우리가 복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종이 없이는 그분의 사랑이 주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리스도는 복종을 요구하신다. 복종을 무시하는 은혜가 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그런 은혜를 통해서는 그리스도를 알 수도 없고 그분과 친교를 나눌 수도 없다.
18.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한다고 해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어 그러한 책임을 이행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면, 자연히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분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선행을 하더라도 개인적인 의가 아닌 참된 의를 추구하는 겸손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진정 거룩한 삶이다.
19. 우리 자신의 욕심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게 될 때에 우리는 점차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욕심에서가 아니라,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복종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더 거룩해 질 수 있다.
20. 성화란 신자가 점차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행위로 하나님의 은혜를 살 수 있다든지, 혹은 행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면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두 가지 잘못을 모두 시정해 준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을 가져다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복종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21.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그분의 사랑에 압도된다. 그 순간부터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우러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곧 우리 자신의 생각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분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자연히 그분의 영광을 구하게 되고, 그분을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알게 된다. 참된 은혜는 기쁨을 갖게 하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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