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과 성령내재와의 차이
성령의 사역은 매우 다양하다. 사람으로 하여금 중생하도록 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며 믿음을 가진 성도를 의롭다 칭의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게 하고 성화시키시며 또한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하여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이 다양한 만큼 성도들이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성령 체험에 대해 오해하기도 한다.
성령은 중생한 성도에게 내주하시며 성령은 신자에게서 떠나지 않으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내재 사역이다. 성령 충만과 성령 내재의 문제는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문제가 성도의 구원에 대한 확신과 거룩한 삶에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에 강조점을 두는 오순절 계통의 사람들은 중생을 통하여 성령이 내주하지만 성령 세례와 충만은 그 이후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령 충만은 방언과 신령한 은사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령 내주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되는것도 아니다. 구원의 서정이 순서대로 시간을 두고 진행되기도 하고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는것 처럼 성령의 내재와 동시에 충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오순절 사건때 제자들은 이미 성령이 내재한 상태이었으며 (예수님이 부활하신후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부어주셨다!) 오순절날에 세례와 충만과 은사를 체험하였고, 오순절 사건은 성령을 만인에게 내재와 세례와 충만과 은사를 동시에 물붓듯이 부어주시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단회적인 사건이고 성령 충만의 첫번째 사건이었다. 이것은 매우 특수한 사건이며 성령의 역사는 항상 이와 똑 같은 모습은 아닌것이다.
성령의 내주는 구원받는 순간에 단번에 일어나는 영원한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충만은 내재와는 달리 성도의 간구와 성령의 특별사역으로 주어지는것이다. 성령 충만은 인격과 관계되어있고 은사와는 별개이다. 충만하면 반드시 은사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의 구속 사역을 믿는 사람들 속에만 거하신다(롬8:9,11).
성령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그 안에 모시지 못한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믿기는 믿었지만, 성령이 내재 하였지만, 범죄하여 불완전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 가운데 거하셨다(고전6:19).
예수를 메시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면 구원의 확신을 가져도 좋다.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된것이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내주하는 자들에게만 임한다. 만일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는 사람이 성령이 충만하여 은사를 경험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었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며 마귀가 주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과 내주가 구별되는 첫째 표식은 인식의 차이에 있다.
토레이(R.A.Torrey)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 가운데 거하시지만 몇몇 사람들에게서는 그들의 감추어진 성전 안에, 그 사람이 성령께서 계시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 채 거하신다"고 말하였다.
사람이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느끼지 못할 만큼 성령은 은밀한 가운데 거하신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그 사람 안에서 영생하도록 언제나 솟아나는 샘물이다(요4:14). 본인의 성령 내재 인식의 여부와 관계없이 예수를 믿는자에게 계시지만 충만한자와는 같지 않다.
성령 충만은 내주와는 달리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성도는 충만을 인식하면서 자신을 제어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된다(엡5:8). 이 충만함을 통하여 성령의 내주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고전6:19) 충만과 내주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지만 차이가 있는것이다. 성령은 성도들의 부활을 보증하시며(고전12:3; 3:16; 엡4:30; 살전5:19), 하나님의 양자됨을 보증하는 사역을 하신다. 성령의 내주는 현재의 생활과 미래의 부활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하면서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롬8:11).
성령 충만은 내재와는 달리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한 삶을 살게 한다. 먼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교제하게 하며(엡5:9), 항상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게 하고(엡5:29), 서로가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엡5:21). 성령의 내주하심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변함없이 구원받은 자에게 함께 하시면서 견인 해주시는 것을 말하고 충만함은 계속적으로 받기 위해 구해야하고 힘쓰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현재 명령법으로 계속 충만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신자와 성령충만
성령 충만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방언을 하고 은사가 나타나는 사람이 반드시 성령 충만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령 충만은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능력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행67:3; 121:24), 주어지는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행13:52),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분명해지기 위하여 필요하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 신뢰를, 사람과 사랑을 가지는 열매가 맺히도록 역사하기 때문에 중생한 성도라 할지라도 늘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신자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항상 내주하신다. 그러나 신자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책망하시고, 근심하시지만, 떠나지는 않으신다(요14:16). 오순절을 경험한 예루살렘 교회는 충만함을 입었고 성령이 내주하셨으나 그들은 계속해서 충만함을 위해 기도하였다(행4:31). 또한 사마리아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은 받았으나 충만함을 받지 못하였다(행8:14). 성령은 신자 안에 내주하시지만 동시에 다시 오신다.
'오신다'라는 말은 바로 성령 충만을 가리킨다. 성령은 우주에 충만하시면서 우리안에 거하시는 분이므로 다시 오시기를 구한다는것은 충만을 구하는것으로 인식하여야 하는것이다. 신자는 복음 증거의 사명을 부여받았으므로,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내주하시는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내주하시는 성령을 인식하지 못하고 성령께서 다시 내주시도록 간구하는 실수를 한다. 성령은 이미 믿는 자에게 내주하시면서 떠나지 않으시고, 그가 구원을 얻도록 보증하신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혜를 끼치게 하신다. 성령의 충만과 내주의 차이는 인식의 차이이며 성령이 사역하시는 결과의 차이밖에 없다.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우리는 성령의 내주하심에 항상 감사하면서,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한다.
(박형룡 교수/총회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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