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 2016

사순절 묵상 / 정용섭 목사

사순절 묵상 / 정용섭 목사

마 27: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오늘이 내일 부활절을 하루 앞둔 사순절 마지막 날이다. 예수는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빌라도는 예수를 태형에 처하고 풀어줄 생각도 있었지만 대제사장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만약 빌라도가 자신의 처음 생각을 그대로 밀어붙였으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예수 스스로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않고 갈릴리 지역에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서 모든 가정은 무의미하다. 예수는 결국 로마 형법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아침 아홉 시에 십자가에 달려서 여섯 시간 동안 고통 받다가 오후 세 시에 숨을 거두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사형수의 시체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아 놓는다. 일벌백계의 의미다. 그런데 예수의 경우는 달랐다. 네 복음서가 예수 시체의 처리 과정을 똑같이 전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이 장면에 등장한다. 마태복음 기자는 그가 부자였으며, 더 나가서 예수의 제자라고 했다. 그는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다.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행동이다.

요셉은 시체를 세마포로 싸서 자신의 가족 묘지에 안장한다. 금요일 오후 세 시에 숨을 거두었다면 시체를 처리할 시간이 촉박하다. 곧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체를 씻고 향유를 바르는 최소한의 절차도 생략한 채 세마포로 싸기만 했을 것이다. 마 27:61절에 따르면 그 장면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가에서 보고 있었다.

제자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마태복음의 설명대로 요셉도 예수의 제자라고 한다면, 비록 열두 제자 명단에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다른 제자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은 있었지 않겠는가. 유다는 자기의 행위를 뉘우치고 대제사장들과의 계약을 취소하려다가 거절당하자 자살했다고 한다(마 27:1-10). 베드로도 역시 예수와의 관계를 세 번에 걸쳐서 부인한 일로 인해서 자책에 빠졌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제자들은 가까이 오지 못했다. 십자가 처형은 공개적으로 집행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가까이 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마태복음은 제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 그 현장에 있었다고 전한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 27:56).

이들 여자들 중의 두 사람은 예수의 시체가 안장되는 현장에까지 따라왔다. 제자들보다 낫다.

이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토요일이다. 본격적인 안식일이다. 예수 제거에 성공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래도 뭔가 불안했던 것 같다.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제안한다. 어제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라는 자가 살아 있을 때 말하기를 자기가 죽은 다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큰 소리를, 헛소리지만, 쳤다. 혹시라도 그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빼돌리고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면 문제가 복잡해질 터이니, 이를 사전 방지하기 위해서 무덤 경비를 좀더 철저하게 조치해 달라.

빌라도는 그렇지 않아도 예수 처형의 책임을 이스라엘에게 돌리면서도 마음 한편이 찜찜했었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당신들도 경비병들이 있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을 돌렸다. 반쯤 허락을 받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부리고 있는 경비병들을 그곳에 배치하고 무덤의 돌문을 아예 봉인해버렸다. 자신들의 불안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려고 했다. 완전범죄의 시도다. 참으로 꼼꼼한 수작이다. 이런 건 오히려 악의 허약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고난주간의 토요일은 예수가 무덤에 묻혀 있는 날이다. 실제로는 금요일부터 무덤에 묻혔으나 온전한 하루를 묻힌 날은 토요일이다. 악이 완전히 승리한 날이다. 하나님이 침묵한 날이다. 그러나 이런 날은 하루로 족하다. 날짜 숫자로만은 사흘로 충분하다. 아무리 경비병을 세우고 돌을 인봉한다고 해도 예수를 계속 무덤에 가둬둘 수는 없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힘으로도 하나님의 통치를,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막을 수는 없다. 하루 이틀 꽃샘추위가 찾아온다고 해서 봄을 막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예수가 무덤에 묻혀 있던, 즉 하나님이 침묵하는 듯이 보였던 토요일의 순간인지 모르겠다. 기독교인은 그런 순간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믿는다. 그리고 희망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침묵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삼일만에 다시 살아 나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던 여인들만이 그 십자가 처형의 현장을 지켰던 것처럼, 예수의 다시오심 곧 재림을 진실하게 믿고 기다리는 기독교인만이 현재의 모든 고난과 삶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다.

성령이 도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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