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에 대한 치료
/ 존 파이퍼 목사 (견고한 기쁨에서...)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야고보서 4:13-16)
사람이 지혜나 힘이나 재물 등에 있어서 자기를 의존하면, 이제 교만의 궁극적인 형태인 무신론으로 향하는 강한 유인이 생기게 됩니다. 인간은 그의 마음 속에서 자기가 최고의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기 위해서, 자기 위에 있는 것은 무엇이라도 부인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이 남을 낮추어 보는 데 열중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다른 것들 혹은 다른 사람들을 낮추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낮추어 보고 있을 때는 자기 위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다"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하지만, 위에는 쳐다볼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선포하는 것이 교만을 유지하는 더 간단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악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편 10:4). 궁극적으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자신을 설득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삶의 모든 세부적인 부분에 압도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삶의 일상적인 것들을 꾸려 나가는 데 있어서조차 하나님의 긴밀한 개입을 견디지 못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주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주권적인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은 없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며, "크리스마스에 디즈니 팍까지 차를 몰고 갈 거야"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야고보는, "미래를 너무 확신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대신에 "주의 뜻이면, 그 때까지 살 수 있을 것이고,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디즈니 팍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핵심은, 우리가 디즈니까지 도착할 건지, 그리고 우리가 이 묵상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을 건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교만의 자기 충족성 사상을 가진 자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생각입니다. 뇌졸증을 일으키지 않고 묵상의 시간을 끝낼 수 있을지조차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생각은 교만한 자에게 있어 매우 불쾌합니다.
야고보서는 말씀하길, 미래의 세부적인 것들을 관장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는 것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이 교만과 싸우는 방법은 삶의 모든 세부적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굴복하고, 그의 약속 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고(역대하 16:9), 우리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따르며(시편 23:6),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행하시며(이사야 64:4), 그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으로 온전하게 하신다는(히브리서 13:21)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만에 대한 치료책은 하나님의 미래의 은혜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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