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장기려의 역지사지
/ 김경재 교수 (한신대)
간암 수술의 명의 장기려(1909~1995) 박사가 타계한 지 내년이면 20년이 된다. 그의 인격의 향기가 세월을 넘어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의 아호는 성산(聖山)이요, 평생 맑고 인자한 맘과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살고 간 한국의 슈바이처다. 1950년 12월 한국전쟁이 중공군 참전으로 다시 치열해지던 때, 모친과 아내와 다섯 자녀를 남겨둔 채 평양에서 야전병원 구급차를 빌려 타고 중학생 둘째 아들과 남하한 지 45년 만에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타계하셨다.
인술을 베푼 의사로서의 봉사활동, 한국 최초 의료보험조합 창설, 고신대복음병원 설립, 여러 의과대학에서 외과교수로 후진 양성 등 초인적인 봉사의 삶을 기려서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1979)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 모든 공적과 명예 훈장들도, 역지사지하는 그의 고운 맘이 드러나는 다음의 실화 앞에선 모두 빛을 잃고 우리들의 양심은 숙연해진다.
그의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품성은 우리 모든 신앙인들에게 믿음의 귀감이된다. 그는 북에 남기고 온 가족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재회의 날을 기다렸던 그는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라고 보낼 길 없는 편지에서 여든살 순정을 밝힌 순애보적 남편이었다.
북한에서 심각한 식량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쌀 15만t을 동포애로써 전달하던 김영삼 정부 때 있었던 작은 가족사 이야기다. 경직되어 왔던 남북 관계가 노태우 정부 시절에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1990)함으로써 남북 긴장관계가 다소 풀려가려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이산가족 상봉 사업은 아직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다.
장기려님의 제자들 중 미국에 이민 간 많은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은사님의 북한 가족 상봉 기회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부산에 계신 은사님에게 미국의 제자들은 준비된 평양 방문 기획을 전달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기려님의 응답은 보통사람들이 납득하기엔 쉽지 않은 것이었다.
“1000만 이산가족 모두의 아픔이 나만 못지않을 텐데 어찌 나만 가족 재회의 기쁨을 맛보겠다고 북행을 신청할 수 있겠는가?”라는 답신이 미국 제자들에게 갔다. 스승의 의외의 응답에 백방 노력하고 준비한 제자들은 놀라고 한편 서운했지만, 은사의 성품과 인격을 잘 아는지라 고뇌 끝에 내렸을 스승의 결단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장기려님은 생전엔 끝내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 상봉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5년 후 아들 장가용 교수가 이산가족 자원봉사 의료요원 자격으로 2000년 8월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내 아들은 평양에서 어머니(당시 89)를 상봉하고 생전에 전달 못했던 아버지의 절절한 순애보 편지와 유품을 전했다.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젖가슴을 만진 뒤에야 어머니를 만났음을 실감했다”고 환갑도 훨씬 넘은 아들의 모자 상봉 소감의 인터뷰 기사는 신문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위 실화는 이산가족 중에서 발생한 가족사의 한 작은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성산 장기려님이 보여준 숭고한 역지사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실천해야한다.
장기려님인들 꿈에도 그리는 아내와 가족을 어찌 만나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저명한 인사라는 사회적 신분 덕에 미국 제자들의 호의와 특혜를 받아 북한 가족을 만나고 오면 그렇지 못한 처지와 형편에 있는 수많은 이산가족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어 그들의 슬픔이 배가되고 고통스러워할 것을 염려했다.
그들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느낀 것이다. 그 맘이 바로 입장을 바꾸어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하는 마음이다.
아예 입장을 바꾸어서 상대편의 자리와 처지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는 것은 인격적 성숙 단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역지사지의 능력은 사람이 높은 학력을 가졌다거나, 사회적 신분이 높다거나, 교육자라고 해서 당연하게 가능한 인간 능력이 아니다.
진정한 역지사지는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받아 그 사랑으로 성숙한 인격을 소유한 신앙인만이 맺을 수 있는 성령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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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
(바꿀 역, 처지 (땅) 지, 생각할 사, 이 지)
뜻: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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