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회개와 가룟 유다 죽음
/ 김경진 교수 <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베드로의 부인(否認)을 배교(背敎)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배교란 문자 그대로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신앙을 회복한 베드로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만일 베드로의 부인이 배교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개인적 혹은 인격적 친분을 부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마 26:72, 74).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가룟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 사이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유다나 베드로나 모두 배신 후 회개한 것은 동일하지만, 그 정도 역시 다르다. 베드로는 “심히 통곡”하였으나(마 26:75), 유다는 단지 “뉘우쳤을” 뿐이다(마 27:3). 여기서 ‘뉘우치다’(metamelomai)란 단어는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회개하다’(metanoeo)라는 단어 보다 약한 뜻을 지니고 있다.
유다의 죽음 이야기(마 27:3-10)에서 우리는 유대 당국자들의 자기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유다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 후 자신이 받은 돈을 성소에 던져버리자, 그것이 무죄한 사람의 피 값임을 알고는 성전 금고에 넣기를 그들이 꺼려했다는 것은(마 27:6)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판결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처사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참고, 마 23:24), 그런 이들의 모함과 시기로 인해 구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다.
유다의 죽음을 기록하면서도 마태는 그 모든 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강조한다(마 27:9-10; 렘 18:2-3; 19:11; 32:8-9; 슥 11:12-13).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이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 아래 진행되었음을 밝히면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이뤄졌으며, 또한 그 모든 것이 이미 태초부터 전부 예정되었던 것이니, 그를 더 이상 부정적 안목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악으로 사람을 이끌지 않으신다.
유다의 배신은 재물 및 세상에 대한 그의 욕망의 결과로 빚어진 것이지(요 12:4-5), 순진무구한 사람을 억지로 배신하도록 하나님이 인도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뿐만아니라 유다는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구약에서 분명히 예언되었던 참 메시야에 대한 인식이나 믿음을 전혀 갖지 못했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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