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 소그룹 구조와 기능의 실천신학적 의의 / 김 순 성 교수
최근 한국교회 목회현장에 셀목회에 대한 비상한 관심과 함께 가정교회 열풍이 불고 있다. 교파를 막론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이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목회현장에 적용을 시도하고 있거나 상당수 교회들이 이미 정착단계에 있다. 8-90년대 한국교회를 풍미했던 성경공부 중심의 ‘제자훈련’의 한계를 극복한 이상적인 목회모델로 인식되면서 현재 이 운동이 한국교회 전체에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침례교 배경의 재미 한인교회인 휴스턴 서울교회(담임: 최영기 목사)에서 시작된 가정교회 운동이 지금 한국의 장로교회에서 가장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1) 가정교회가 이처럼 수많은 목회자들, 특별히 장로교 목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정교회 운동을 이 시대의 바람직한 목회의 대안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전통교회, 특별히 장로교회 교회론과 정치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운동으로 볼 것인가?
본고에서는 가정교회 사역의 핵심인 ‘목장’ 모임에 초점을 맞추어 소그룹 측면에서 그 구조와 기능을 고찰하고 그것의 목회론적 의의 및 장로교 직분론과의 연관성을 실천신학적 입장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I. 공동체 중심의 다기능적 소그룹으로서의 가정교회
1. 가정교회란?
가정교회는 한 마디로 교회의 공동체성을 지향하는 다기능적 소그룹 교회운동이다. 종래의 소그룹 운동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구조적인 면에서 개인중심이 아니라, 공동체 중심이며, 기능적인 면에서 복합적이고 종합적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가정교회는 셀교회가 주창하는 셀그룹의 구조와 기능면에서 일치하며 넓은 의미에서 가정교회는 셀교회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다.2) 이 점에서 가정교회 사역의 중심 장(場)인 ‘목장’ 소그룹 모임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동체 중심의 사역의 장(場)이다.
가정교회 소그룹이 지닌 가장 중요한 특성은 공동체성이다. 여기서 공동체는 관계성이 기초된 6-12명의 소그룹 공동체를 의미하며 공동체는 가정교회가 지향하는 교회본질 회복의 핵심가치의 하나다. 최영기 목사는 그의 저서 <가정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에서 현 세대에 불어오는 성령의 바람을 세 단어로 표현하면서 ‘평신도’, ‘기도’와 함께 ‘공동체’를 들고 있다.3) 그에 의하면 이 세 가지는 이 시대에 성령이 역사하는 통로다. 그는 “가정교회는 공동체 운동”이며, “가정교회 사역의 목표중 하나는 구성원끼리 확대 가족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한다.4) 전통교회 구조로는 이 목표를 이룰 수 없으며 관계성이 기초된 가정교회 소그룹 구조를 통해서만 확대 가족과 같은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둘째, 평신도 중심의 사역의 장(場)이다.
가정교회 목장의 모임장소는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터전인 가정이며, 모임의 지도자 역시 신학훈련을 받은 교역자가 아니라, 평신도(부부)이다. 이들(목자, 목녀로 지칭)은 매주 자기 가정을 개방하여 그룹원(목원으로 지칭)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교제를 나눈다. 여기서 평신도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역은 제도적인 직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자발적인 헌신과 섬김의 삶을 통해서 발휘된다. 목자라는 직책은 단지 사역을 위해 주어진 것이며 사역에서 물러나면 그 호칭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그룹원들 역시 피동적인 참여자가 아니다. 가정교회 목장 모임에서는 각자가 받은 은사를 활용하여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서로 섬기며 봉사하도록 기회가 부여된다.
셋째, 목양기능을 지닌 사역의 장(場)이다.
가정교회가 지닌, 종래의 소그룹과 근본적으로 차별적인 기능이 있다면 평신도 목자에게 목양사역의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성도가 성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최영기 목사에 의하면, “가정교회 사역은 평신도 사역입니다. 평신도들이 10여명 되는 인원을 맡아서 목양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목회자에게만 넘겨주었던 사역을 되찾아서 에베소서 4장 11-12절 말씀대로 봉사활동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5) 바로 이 점이 친교중심의 전통교회 구역모임과 다른 점이며, 성경공부 중심의 제자훈련 순모임과도 다른 점이다. 가정교회는 전통교회 소그룹이 가진 한두 가지 기능만 아니라, 예배, 교육, 친교(상담, 심방), 전도, 선교 등 지역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모두 감당한다.6) 목장 소그룹을 ‘가정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며 이 점에서 가정교회는 개척교회와 같다고 최목사는 설명한다.7) 그렇다면 가정교회 체제에서 전임 교역자의 기능은 무엇인가? 사역을 분담하여 평신도 목자들을 훈련시키며 교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다. 최목사는 엡 4:11-12에서 성격적인 사역분담의 원리를 찾고 목사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하고 교회의 모든 봉사활동 및 교회를 세우는 일은 평신도들이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8) 이처럼 가정교회 체제에서는 전통교회에서 목사가 담당했던 많은 사역을 평신도들이 분담하게 되며 평신도 목자들은 영혼 섬김을 통해 목회자의 심정을 함께 나누며 목회자와 진정한 동역자 의식을 갖게 된다.9)
넷째, 삶의 나눔을 통한 친교와 치유사역의 장(場)이다.
목장 소그룹의 핵심 기능이 바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도 상호간의 친교이다. 특별히 여기서는 전통교회의 구역모임과 달리 예배의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룹원들의 삶의 나눔이 강조된다. 이 시간에 그룹원들은 돌아가면서 한 주간의 삶을 나누는데 솔직한 자기 노출을 통해 내적치유가 일어나고 그룹원들 간에 가족과 같은 연대감과 소속감을 심어준다. 최목사는 내적치유가 가정교회의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치유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관계성에 기초한 목장모임 그 자체가 치유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분석한다.10) 즉, 목장 소그룹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제시된 문제를 사랑을 가지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치유가 이루어질 때까지 의지가 되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영혼구원 중심의 전도와 선교사역의 장(場)이다.
영혼구원은 가정교회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요, 핵심가치이다. 가정교회 사명선언에 따르면 교회성장 보다 영혼 구원이 우선순위이다.11) 불신자에게 전도하여 제자를 만드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이다. 가정교회 소그룹은 종래의 전통적인 전도방식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이상적인 전도의 매체로 제공된다. 이것은 관계성에 기초한 전도(relational evangelism)로서 불신자를 교회당이 아닌, 목장 모임으로 인도하여 사랑의 공동체의 맛을 경험하게 한 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어 결국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한다.12) 가정교회 목장모임을 통한 전도의 특징을 최목사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한 가지는 필요를 채워주는 전도요, 다른 하나는 분업화된 전도이다.13) 전자는 일방적 선포식이 아닌, 상대방의 영적 정신적 삶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의 전도를 말하며, 후자는 불신자를 목장모임에 인도하는 일은 목원이 맡고, 인도가 되면 목원들 전체가 돌보아 주고, 기초 성경공부와 복음제시는 목사가 맡아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전도에 대한 부담이 덜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모두가 힘을 합쳐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어 목원, 목자, 목사 모두가 기쁨과 보람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교회마다 선교사를 한 명씩 정하여 기도와 헌금으로 후원함으로써 선교에 대한 관심을 고양하고 교회 전체적으로 선교의식을 높이도록 한다.14)
여섯째, 성경적인 제자훈련의 장(場)이다.
가정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15) 가정교회 목장 소그룹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자훈련 방식을 따르고 실천하도록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구조와 장(場)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다. 최목사는 제자훈련의 중요원리로서 ‘듣고’ 배우는 방식이 아닌, ‘보고’ 배우는 방식을 강조한다.16) 즉, 지식전달보다는 능력배양, 교실 강의보다는 현장 실습, 말보다는 삶의 나눔과 본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훈련이 가능한데 가정교회 목장 소그룹이 바로 이런 훈련의 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가정교회는 자기들 끼리만의 사교모임이 되지 않고 제자를 만드는 모임이 되기 위해 각 목장마다 매년에 한 가정 이상 불신자를 전도하여 세례를 받게 하여 제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된 여섯 가지 가정교회 목장 소그룹의 특징은 공동체로서의 구조를 지니면서 미국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담임인 맥아더 목사가 제시한 셀그룹의 6가지 기능(FLOCKS)과 거의 일치한다; 교제(Fellowship), 지도력 개발(Leadership), 전도(Outreach), 돌봄(Caring), 성경공부(Knowledge), 섬김(Salt).17) 양무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FLOCKS로 요약되는 이 여섯 가지 기능은 관계성에 기초한 소그룹 공동체의 포괄적 특성으로서 셀그룹이 지닌 목양적 기능, 즉 가정교회가 강조하는 작은 교회로서의 기능을 잘 나타내고 있다.
2. 가정교회의 목표와 비전
최영기 목사에 의하면 가정교회 운동은 단지 하나의 목회 방법론이 아니다. 신약교회의 회복이라는 본질적 사명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가정교회 사명은 “온 세계의 교회가 성서적인 교회모습을 회복하도록 돕는다”로 명시되어 있고 여기에 구체적인 비전이 다섯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18) “가정교회가 발전해 가는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지 아니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인지”에 대해서는 고려의 여지가 있음을 최목사는 인정한다.19) 그리고 “가정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유일한 교회조직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정교회가 신약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적어도 이 시대의 대안모델이라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그의 저서와 사역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20) 그 실례로 가정교회 운동의 확산을 위해 ‘가정교회사역원’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계적인 정보망을 형성하며 활동하고 있는데, 회원 주소록에 등재될 수 있는 자, 그리고 가정교회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주최하기 위해서는 최목사가 발전시킨 가정교회, 목장, 목자 호칭을 그대로 수용한 자와 교회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21) 최목사는 그의 가정교회운동이 “초대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이며, 휴스턴 서울교회의 가정교회가 성경적인 모습과는 아직 거리가 있지만 적어도 올바른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자평한다.22)
I. 가정교회 운동의 목회 상황적 요인: 새 포도주와 낡은 부대
그렇다면 가정교회 운동이 새삼 이 시대에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수많은 목회자들, 특별히 장로교 목회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이것은 한 마디로 전통목회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종래의 목회 패러다임에 대한 이 시대 목회자들의 위기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교회의 구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1. 제도화된 전통교회
목회란 변치 않는 복음을 변하는 상황 속에 적용하는 실천적 기술(art)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구원의 능력이다. 이것은 불변하며 언제나 새 것이다. 하지만 그 복음이 선포되고 적용되는 방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포도주와 부대’에 비유한다면, 전자는 포도주요, 후자는 그것을 담는 부대(負袋)라 할 수 있다. 복음의 새 포도주는 언제나 새 부대를 요구한다. 낡은 전통, 구태의연한 제도와 관습이라는 낡은 부대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 오늘날 목회현장이 맞고 있는 위기는 이런 의미에서 낡은 부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현장이 직면하고 있는 낡은 부대의 근본 정체는 무엇인가? 교회갱신론의 대가(大家) 하워드 스나이더는 성령을 소멸시키는 구조로서 건물 중심의 제도화된 교회구조와 목사중심의 목회구조를 지적한다.23) 그는 건물 중심의 오늘날의 교회가 자신의 부동성(immobility), 비융통성(inflexibility), 친교(親交)결여(lack of fellowship), 자만심(pride), 계급의식(class division)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24) 뿐만 아니라, 목회성공을 지향하는 유능한 목사(superstar) 중심의 교회구조에서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몸(body)이 아니라, 청중(audience)일 뿐이라고 비판한다.25) 이와 함께 스나이더는 성령의 코이노니아26)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지적하면서 이 친교가 가능한 ‘새 부대(負袋)’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성령의 친교와 교회구조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면서 이 코이노니아의 본질이 교회 형태를 위한 몇 가지 암시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교회가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1)성도들이 상호 육체적으로 가까이(physical proximity) 함께 모여야 할 장소가 있어야 하고 (2)상호 의사소통이 활발히 진행되며 (3)성령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충분히 비형식적이고 친근한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며 (4)공동체적 삶 속에서 성경연구가 가능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조건과 기준을 충족시키는 교회구조가 바로 소그룹 형태라고 제언한다.27) 뿐만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28)는 회중이 되어 정기적으로 함께 모이는 대그룹 구조가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은 언약적 의미를 지닌 정기적인 축제로서, 예배를 통해 (1)하나님의 행위를 기념하며 경축하고 (2)회개와 재헌신을 다짐하며 언약을 갱신하며 (3)삶을 평가하고 정의(定義)를 내리며 (4)미래에 대한 비전을 갱신한다.29)
같은 맥락에서 셀목회 주창자인 랄프네이버는 프로그램 중심(Program Base Design)의 전통교회 구조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다섯 가지 비효율적 측면을 분석한다. (1)교회건물이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을 제외하면 텅 빈 채로 방치된다는 점 (2)전문목사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계발하기 위해 교인들을 섬긴다는 점 (3)프로그램 중심 교회에서 봉사하는 교인들은 전체교인의 8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 (4)소망을 잃은 채 봉사활동에 태만한 교인들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점 (5)온 교회가 전도 대상인 불신 공동체와는 사실상 접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30) 이런 분석의 대상이 주로 미국교회 상황이겠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상황과 그대로 일치한다. 또한 데이비드 핀넬 역시 오늘날의 전통적 교회를 성경적 교회와 비교하면서 여섯 가지 유사한 항목을 열거하고 있는데 특별히 성직자 중심의 교회구조와 현대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자기 필요와 성장에 집착하고 있다는 그의 진단과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사람중심이 아닌 프로그램 중심 (2)가정(공동체) 중심이 아닌 건물중심 (3)교회 밖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자체를 위한 교회 (4)삶을 중심으로 전도하는 교회가 아니라, 설명을 중심으로 전도하는 교회 (5)이웃사랑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성장을 위한 교회 (6)만인사제의 교회가 아니라, 성직자 중심의 교회. 이상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요지는 분명하다. 오늘날의 제도화된 전통교회 구조로는 복음의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의 코이노니아가 가능한 새 부대로서 새로운 교회구조, 즉 소그룹(셀그룹)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최영기 목사의 가정교회 소그룹 운동 역시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이 시대의 목회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2. 한국 장로교회 장로직의 세속화
교회구조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직분구조, 특별히 장로교회의 장로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목회상황에서 직면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칼빈 전통의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증거와 그의 몸인 교회건설을 위해 직분을 세우셨다는 직분관을 가지고 있다. 목사와 함께 장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신 섬김의 자세로 교인들을 다스리고 돌봄으로써 교회를 세우는데 중심적인 직분이다. 장로의 직무와 관련하여 고신교단 헌법 교회정치 제 6장 제 47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31)
(1)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 (2)교회의 영적 관계를 살피는 일 (3)교인을 심방, 위로, 교훈하는 일, 4. 교인을 권면하는 일 (5)교인들이 설교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여부를 살피는 일 (6)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 (7)교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 (8)목회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목사에게 알리는 일.
중요한 것은 이상의 8가지 중 적어도 6가지가 목양과 관련된 직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 장로직의 현실은 어떠한가? 목양직무보다는 당회를 중심으로 의사결정 등 주로 행정업무에 치중하며, 자세에 있어서는 교인들을 섬기기보다는 교인의 대표로서 대접받고 군림하려 하며, 목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협력자의 모습보다는 견제자 혹은 대립자로서 많은 경우 갈등관계로 계급화 내지 권력화된 모습이 오늘날 세속화된 장로상이 아닌가? 물론 여기에는 목사직이 올바로 수행되지 못한 책임도 간과될 수 없다. 목사가 가르침의 직무를 소홀히 하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처럼 권력을 독점하거나, 모든 사역을 독점함으로써 장로직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뿐만 아니라, 목사 자신 스스로도 과도한 목회업무로 인해 목회 사역이 구조적으로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목회의 한계와 위기를 스스로 느끼고 그 돌파구와 대안으로서 가정교회와 셀교회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가정교회와 셀교회는 전통 직분중심의 구조가 아니라, 목장 소그룹을 중심한 사역중심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영기 목사가 주창하는 가정교회 중심의 평신도 목회론도 자신이 교회의 장로로시무하며 그 구조 속에서 겪은 전통교회 직분의 한계와 부정적인 문제점, 그리고 평신도로서 자신이 이끈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평신도 사역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32)
III. 가정교회 소그룹에 대한 실천신학적 평가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가정교회 운동은 우리 시대 교회가 구조적으로 당면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안 내지 새로운 목회전략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교회 소그룹의 구조와 기능을 실천신학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긍정적인 면은 무엇이며 문제점은 없는 것인가? 다음의 네 가지 관점에서 평가를 시도하고자 한다.
1. 교회됨의 본질적 구조로서의 공동체적 관점
가정교회 소그룹 운동의 가장 큰 기여가 있다면 교회됨의 본질적 구조로서의 공동체성의 재발견이다. 여기서 공동체란 상호의존, 상호책임에 기초한 ‘너와 나’의 관계성이 이루어지는 모임을 말한다. 본 회퍼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너와 나’의 관계성이 하나님의 계시가 경험되며, ‘나와 너’의 정체성이 발견되면서 인간됨이 형성되는 구조적 형태라고 했다.33) 나아가 거룩한 공회(sanctorum communio)로서의 교회는 세상에서 공동인격 즉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고 했다.34) 중요한 것은 그에게 기독교 공동체란 사회적 실체, 즉 구체적인 상황 속에 존재하는 경험적인 공동체라는 점이며, 바로 그 공동체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는 것이다. 6-12명이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교회 소그룹은 이 점에서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인 환경과 틀을 제공한다. 특별히 이 소그룹이 모이는 장소가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의 구체적인 현장인 가정이라는 점이 그 역동성을 강화시킨다. 스나이더는 이런 소그룹이 가지는 이점을 8가지로 요약한다: (1)유연성이 있다 (2)유동성이 있다 (3)포괄적이다 (4)인격적이다 (5)분할에 의해 성장할 수 있다 (6)전도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7)최소한의 전문적인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8)제도적 교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35) 이런 공동체적 구조의 발견은 교회됨의 본질과 직결되며 특별히 관계성이 파괴되고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오늘날의 목회상황에 교회본질 회복을 향한 큰 도전과 의미를 부여한다. 문제는 이 틀 자체가 성령의 코이노니아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틀 속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게 된다. 만약 이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깊이 있고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는다면 비록 성령이 역사하는 외적 구조와 형태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 모임은 자기들끼리의 인간적인 사교모임 수준에 머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영기 목사가 주도하는 가정교회가 역동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단지 외적인 가정교회 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목사의 깊은 영성, 즉 말씀의 깊이와 탁월한 가르침의 은사, 그리고 그의 깊은 기도생활이 그 배경에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36)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이런 소그룹 공동체를 과연 ‘교회’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여전히 개혁주의 교회론 입장에서 신학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나아가 목장 소그룹이 목자의 독자적인 리더십이나 혹은 그룹원들 전체의 뜻에 의해 교회를 이탈하는 최악의 경우도 얼마든지 예상해 볼 수 있다.
2. 실천신학적 교회론의 관점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교회론은 참된 교회가 지녀야 할 네 가지 속성으로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언급한다. 다니엘 로우(Daniël Louw)는 실천신학적 교회론을 제안하면서 신학적 정체성으로서 이 네 가지 속성과 함께 기능적 차원에서 교회가 실천적 신앙행위로 세상 속에서 나타내 보여야 할 네 가지 요소로 경축(doksa), 증거(marturia), 섬김(diakonia), 친교(koinonia)를 들고 있다.37) 경축(doksa)은 예배 감사 찬양 등의 신앙행위를 말하며, 증거(marturia)는 말씀선포, 신앙고백, 전도와 선교 등의 실천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섬김(diakonia)은 긍휼, 사랑 등 제사장적 봉사를 뜻하며, 친교(koinonia)는 성도 상호간 위로와 돌봄의 실천 행위를 의미한다. 이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가정교회 소그룹의 기능을 평가해 볼 때 목장 소그룹 모임이 앞서 살펴본 바대로 이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경축(doksa)의 기능은 그룹원들이 함께 모여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하는 것을 통해 표현된다. 증거(marturia)의 기능은 가정교회가 교회의 존재 목적으로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38). 물론 그 모임에서 목자가 직접 설교를 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신자를 그 모임에 초대하여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여 기초 성경공부와 복음 영접까지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 그리고 그룹원 전체가 선교를 위해 기도와 헌금으로 동참하는 것을 통해 가정교회 소그룹은 증거(marturia)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한다. 섬김(diakonia)의 기능은 주로 목자의 리더십과 삶의 모습을 통해 표현된다.39) 목자 부부는 매주 빠짐없이 그룹원들을 위해 가정을 개방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헌신과 희생을 감당함으로써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룹원들을 섬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필요시 그룹원들을 직접 심방하고 상담하는 일을 통해 섬김의 도를 실천한다. 물론 섬김(diankonia)의 일차적 대상이 그룹원들이지만 그 범위를 가까운 이웃과 지역사회로 확대하여 독거노인, 장애자, 소년소녀 가장 등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친교(koinonia)는 가정교회 소그룹이 지닌 가장 강력한 기능 중 하나이다. 여기서 그룹원들은 “서로의 부족함을 솔직히 나누고, 죄와 허물을 고백하며, 서로의 짐을 져 주고, 피차 격려하며,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며, 서로 중보기도를 해 줌으로써”40) 공동체적 삶을 나눈다. 굳이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여기서 삶을 나누는 친교에서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위적인 자기 노출은 자칫 예기치 않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41)
3. 교회성장학적 관점
교회성장학적 관점에서도 가정교회 소그룹은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셀그룹의 ‘번식’처럼 가정교회 목장 소그룹은 ‘분가’를 통해 양적으로 계속 늘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정교회 체제를 도입하여 정착한 교회는 대부분 양적 성장을 경험하고 있음을 고백한다.42) 그렇다면 질적 성장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크리스티안 슈바르츠는 <자연적 교회성장>이라는 책에서 전 세계에 산재한 1,000개 교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성장하는 교회의 8가지 질적 특성을 발견했다.43) (1)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2)은사중심적 사역 (3)열정적 영성 (4)기능적 조직 (5)영감있는 예배 (6)전인적 소그룹 (7)필요중심적 전도 (8)사랑의 관계. 가정교회 소그룹은 이 기준에도 대부분 부합한다. (1), (4), (5)번 항목은 교역자와 대그룹에 적용될 수 있는 항목이고 나머지는 가정교회 소그룹에 그대로 적용된다.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슈바르츠는 자신의 연구의 세 가지 중요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1)평균적으로 볼 때 성장하는 교회들은 눈에 띄게 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2)예외적으로 양적으로는 성장하지만 평균이하의 질적 지수를 갖는 교회들도 있다는 점이다 (3)한 교회도 예외없이 적용된 하나의 법칙은 여덟 가지 특성에 있어서 그 질적 지수가 65나 그 이상인 교회는 모두 다 성장하는 교회다. 기본적으로 목회자에게 말씀과 기도가 살아 있고 지도력이 있다면 가정교회 소그룹 체제를 가진 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성장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4. 장로교회 정치와 직분론의 관점
그렇다면 가정교회 체제가 장로교회 정치와 직분론의 관점에서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정교회 운동은 평신도 목회를 지향하는 운동이며 이 사역의 핵심에는 목자(목녀)라는 직책이 있다. 이 직책은 사역을 위해서 주어진 것일 뿐 공적인 직분이 아니다. 좋은 목자의 자질에 대하여 랄프네이버는 다음의 일곱 가지로 요약한다.44) (1)주님의 본을 따르는 목자 (2)안내자로서의 목자 (3)자기를 높이지 않는 목자 (4)양육하는 목자 (5)보호하는 목자 (6)양들의 필요를 돌보는 목자 (7)제사장들을 훈련시키는 목자 (8)모든 자원들을 머리되시는 예수님께 의지하는 목자. 이상에서 제시된 목자의 자질 및 기능과 역할은 전통교회에서 거의 목사와 장로에 준하는 수준의 내용들이다. 하지만 최영기 목사가 시무하는 휴스턴 서울교회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침례교회이기 때문에 장로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가 주창하는 가정교회는 직분중심 체제가 아니라 철저히 목자중심 체제이다. 따라서 가정교회 체제를 장로교회에 그대로 이식하거나 접목할 때 장로교 정치체제와 필연적으로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장로 직분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장로직이 있는 대부분의 전통교회가 가정교회 체제의 도입을 원하면서도 주저하거나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45) 장로교 정치체제에서 볼 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정교회가 초대교회의 원형을 꿈꾸는 이상은 좋지만 단지 가정에서 목양기능을 가진 평신도 중심의 소그룹 형태로 모인다고 해서 오순절 성령이 부어진 1세기 초대교회 공동체와 그대로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다시 말해서 가정교회 소그룹을 항상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교회는 끊임없이 사탄의 공격을 받는 영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정교회 내에도 언제든지 시험과 유혹이 찾아올 수 있음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 교회 내에 치리와 권징의 제도적 필요성과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가정교회는 치리와 권징 면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예기치 않은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특별히 가정교회 지도자인 목자가 그 핵심에 연루될 경우, 그 가정 소그룹은 치명타를 입게 되고 십중팔구 와해되거나 교회에서 이탈될 가능성이 높다.
IV. 장로교회에 적합한 가정 소그룹 모델의 필요성
앞선 평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정교회 소그룹은 전통교회가 갖지 못한 공동체로서의 본질적인 교회구조와 참교회로서의 실천적 기능 그리고 교회성장학적 잠재력을 지닌 이 시대의 매력적인 목회전략이요, 방법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중교회 체제인 침례교에서 시작된 가정교회는 용어 자체에서부터 개혁교회론과 장로교 정치체제 및 직분론과는 상호 부합되지 않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가정교회 소그룹은 장로교 직제에는 접목이 불가능한 목회방법론인가? 아니면 장로교 직제와 충돌되지 않으면서도 병행이 가능한 목회모델인가?
목회자의 신학적 소양과 리더십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병행이 가능하며, 나아가 장로교 직제에 부합하는 가정 소그룹 모델을 통해 장로교회 목회자들이 이 시대 교회갱신 운동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이유 내지 근거를 제시한다면, 하나는 가정교회 소그룹 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오늘날 교회의 본질적 구조의 회복과 직결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교회 소그룹 목자의 직무가 오늘날 다시 회복되어야 할 장로교회 장로의 목양 직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로교 직제에 부합하는 가정 소그룹 모델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바람직한가?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장로가 목자직을 맡아서 그 직무를 수행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목회현장에 적용할 때 문제가 간단치 않다. 소그룹의 적정 규모가 6-12명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교인에게 확대 적용하려면 엄청난 수의 장로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리집사나 안수집사 또는 권사와 동일 선장에서 장로가 목자직을 수행할 경우, 원칙적으로 장로직제의 질서와 권위가 무너지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목자직을 안수집사 또는 권사가 맡게 하고 몇 개의 목장 소그룹을 묶어서 장로가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가정교회에서 제안하는 조직에 의하면 ‘목장’ 몇 개를 묶은 연합체를 ‘초원’이라 부르며 초원의 지도자를 ‘초원지기’라고 부른다46). 사실 이런 조직은 현재 가정교회 제도를 도입한 여러 장로교회들이 이미 적용하고 있다.47) 이렇게 할 경우 목장 소그룹이 늘어난 만큼 장로수를 증원해야 하는데 목자직을 훌륭하게 잘 수행한 사람을 중심으로 장로를 선출하면 된다.48) 문제는 기존의 장로에게 단지 목자직무를 맡긴다고 해서 가정 소그룹의 역동성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로의 체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기존의 의사결정 중심의 행정체질에서 가정 소그룹이 요구하는 목양기능의 핵심인 섬김과 희생 중심의 사역체질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굳이 가정교회가 시행하는 목장, 목자, 목녀라는 명칭을 그대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교회에 따라 창의적인 용어로 바꾸어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물론 가정 소그룹 체제를 도입하고자 할 때 지역교회들의 다양한 특성을 신중히 고려해서 접목해야 한다. 특별히 전통교회를 가정교회 체재로 전환할 때 목회자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가정 소그룹 제도를 도입하여 장로들이 목양직무를 수행할 경우, 몇 가지 유익을 예상할 수 있다. (1)사회적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목양직무 수행을 통해 삶과 인격이 검증된 적격자가 장로가 될 수 있고 (2)목양직무 수행에 따르는 엄청난 헌신과 희생으로 인해 장로들이 자원하여 임기제를 실시하려 할 것이며 (3)그 결과 장로직분이 계급화, 권력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V. 나가는 말
21세기의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목회현장이 점점 더 험난해지고 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과 사명을 망각한 채 시류에 떠밀려 표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가정교회 소그룹 운동은 오늘날 제도화된 전통교회에 대한 신선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 시대에 복음의 새 포도주를 담는 새 부대로서 가정교회 소그룹은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목회의 방법론적 틀을 제공한다. 교회됨의 본질인 교회의 공동체성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본연의 구조를 회복하도록 도전한다. 평신도 사역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일깨우면서 목사와 장로가 잃어버린 본연의 직무로 돌아가도록 촉구한다.
가정교회 소그룹 운동의 도전 앞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잡는 일이다. 침례교에서 비롯된 목회방법론이라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장로교의 정체성을 전혀 도외시한 채 무분별하게 수용해서도 안 된다. 신학적 뿌리를 깊이 유념하면서 장로교 직제와 부합되는 방법으로 지혜롭게 접목해야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새 부대가 새 포도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 포도주가 새 부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가정교회 소그룹은 새 부대이지 그 자체가 새 포도주는 아니다. 그러므로 그 부대에 무엇을 담는가는 여전히 목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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